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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ra Seed Aug 01. 2023

벌써, 이년

결혼 십년차 부부가 부다페스트로 유학을 왔습니다. 

"벌써 이년이 지났다니 자기 믿겨?"


"그러게, 이 년 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다. 그렇지?"




지난 주말 남편과 함께 집 앞에 있는 부다페스트 시민공원을 산책하면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비가 와서 선선한 여름날씨에 감사하며, 남편의 손을 잡고 푸릇푸릇한 공원을 걷고 있자니 지난 이년의 나날들이 휘릭 지나갔다.

2021년 8월 6일, 결혼 십 년을 맞았던 43살의 우리 부부는 제2의 인생을 살겠노라며 서울에서 부다페스트로 유학을 왔다. 그땐 정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랐고, 그냥 잘 헤쳐나가리란 무식하고 용감한 믿음만 있을 뿐이었다. 뭐에 홀려, 미국이나 캐나다도 아닌 생판 아무도 모르는 헝가리로 우리는 유학을 왔단 말인가!


지금 생각해 보니, 20년 만에 다시 학생으로 돌아가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인데 무슨 배짱으로 동유럽에서 공부를 한다고 했을까? 사실, 학교 시스템이 다 거기서 거기 일 줄 알았다. 미국식, 한국식 교육 시스템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인터넷을 아무리 뒤져봐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의 유학생활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는 없었다(의대를 제외하고는). 1년 정도 교환학생을 온 학생들이 블로그나 유튜브에 남긴 부다페스트에서의 쇼핑과 맛집 소개 등이 전부였다. 헝가리에서 나의 모교(지난 7월 18일에 졸업을 했으므로!)는  Eötvös Loránd University (ELTE) 은 1635년에 세워진 헝가리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다. 나는 부다페스트의 시내 한 폭 판아스토리아에 위치한 ELTE의 BTK (인문대학)에서 수업을 받았다. 큰 규모의 학교라서 대학원 수업에 대한 정보가 많을 줄로 예상했지만, 교수들의 수업스타일에 대한 정보, 과제나 시험의 정도, 한 학기에 몇 학점 정도를 들어야 제때 졸업을 할 수 있는지 등등 구체적인 정보는 찾을 수 없었다. 수강신청에서 수업 자료와 과제를 제출하는 사이트에서부터 지도교수 선정과 논문지도 신청에 이르기까지,  정말 맨땅에 헤딩하면서 130학점을 듣고 석사학위 논문을 쓰고 최종 시험에 합격해 4학기 만에 졸업을 할 수 있었다.


학교 생활만이 문제는 아니었다. 외국인으로 타지에 거주하려면 꼭 거쳐야 하는 이민국 업무에서 부터 은행계좌 개설, 핸드폰 개통, 집 구하기 등등 정착을 위한 일들이 산더미처럼 적재해 있었다. 대부분 우리 나이에 외국 생활을 시작하는 경우, 한국 회사의 주재원으로 오는 경우가 많아 회사의 도움을 많이 받아서 정착을 한다. 20대 학생들의 경우 기숙사나 셰어하우스 등에서 거주하는 경우가 많아 우리처럼 타지에서 '내 집마련'에 골머리를 썩지 않아도 된다. 이곳으로 이주하고 1년 만에 현지 공인중개사와 현지변호사를 거쳐 우리는 보금자리를 찾아 이사를 하는 엄청난 일을 해결했다. 가구 구입, 인터넷 설치, 주방 수리 등등 하나부터 열까지 손이 안 가는 곳이 없었다. 헝가리어를 갓난아기 보다 못하는 우리와 영어를 헝가리 식으로 하는 현지인들과의 소통은 정말로 구글 번역기를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부다페스트가 워낙 국제적인 관광도시여서 도시의 상점이나 음식점에서 영어로 소통하는 것은 전혀 어렵지 않다. 그런데, 이게 막상 생활로 접어들면 이건 완전 다른 세상이다. 보일러가 고장 나서 수리를 하려고 해도, 전화로 일단 "헬로"하면  전화를 끊는다. 다시 말해, 외국인은 상대 안 하다는 것이다. 인종차별 이런 것까지는 아니다. 그냥 영어를 못해서 자기들이 도와줄 수 없다는 것이다. 열 번 중 한 명이 전화를 받아주면, 진짜 안 되는 헝가리어로 사정사정하면 간신히 도움을 받는다. 엄청난 바가지를 씌운다는 것을 전제로. 부글부글 끓는 마음은 기본값이고 이십 대에도 안 하던 욕이 나오지만 막상 도움이 필요한 것은 우리 쪽이니 참을 인자를 새기며 사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역시, 타지에서 산다는 것은 엄청난 고생을 전제로 한다. 그렇게 우리는 다 늙은 나이에 20대들과 함께 엄청나게  힘든 학교를 다니

면서, 부다페스트에 정착하기 위해 엄청난 생활 관련 업무들과 매일 저글링 하면서 2년을 보냈다.

 

이렇게 평화로운 주말을 맞이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던가? 물론 아직 안심을 하기에는 이르다.  

우리는 졸업하고 이곳을 떠나지 않고 정착할 생각이다. 마흔 중반에 유학을 결심한 것은 미래 정착을 위한 수단이었다. 나보다 1년 늦게 석사과정을 시작한 남편이 내년에 졸업을 하고 현지에서 취업을 도전할 예정이고,  나는 올해 말에 있을 헝가리 정부 장학금 지원을 통해 박사학위에 지원할 예정이다. 지금 어쩌면 아주 잠시의 평화로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2년이 되니 현지 생활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어느 정도 알았고, 남편도 이제 학교 생활에 익숙해져서 일 년만 더 다니면 졸업을 하고 나 역시 올 겨울 장학금 지원까지는 기간한정 백수이니 이것보다 더 평화로울 수 있을까?




p.s. 기간한정 백수기간에 혹여나 저희 부부처럼 중년에 유럽에서 제2의 인생을 꿈꾸고 계신 분들을 위해 저희가 겪었던 일들, 학사 정보에서 정착을 위한 이민국 문제에서 현지 생활, 문화 정보까지 조금씩 브런치에 써 나갈 예정입니다. 물론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의 삶이 중심이 되겠지만, 제2의 인생을 시작하기 위한 마음가짐은 나라를 불문하고 동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아직 중년의 재취업이라는 큰 관문이 남아있지만,  또 이렇게 시간은 가고 불안했던 미래가 좋은 거가 되어 회상하는 날이 오리라 믿어 의심치 않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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