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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중년수험생 jcobwhy Dec 28. 2022

‘미국에서 맞는 첫 크리스마스’의 악몽 (1)

D+144 (dec 23rd 2022)

크리스마스. 미국에서 가장 큰 명절. 누구나 손꼽아 기다리는 명절이다. 캐럴이 울려 퍼지고, 서로 선물을 주고받고, 산타의 방문을 기다리는. 더군다나 미국에서 처음 맞는 크리스마스다. 가을이 되고 릴레이처럼 이어지는 명절 시즌의 피날레라고 할 수 있다. 마치 핼러윈이나 추수감사절이 마치 크리스마스를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그 크리스마스가 바로 이번 주말이다.


한 달 전부터 크리스마스 준비를 시작했고, 큰 트리와 베란다 장식도 했다. 아직도 산타할아버지의 존재를 믿는(혹은 믿는다고 우리에게 말하는) 딸아이는 산타할아버지에게 선고 싶은 선물을 적은 편지도 썼다. 우리는 아이 몰래 선물 준비도 다 마쳤다. 며칠 전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눈도 뿌려주고 해서,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느낄 수 있단 생각에 설레는 마음이 가득했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한파가 몰려온다는 소식에 걱정은 되었지만, 영하 9~10도를 잘 보냈기 때문에 괜찮을 거란 생각이 있었다.


어제 주변 사람들 선물도 좀 사고 아이 크리스마스 선물 포장도 살 겸 해서 아이가 학교에 간 사이 코스트코를 다녀왔는데, 사람이 너무 많았다. 아직 크리스마스가 좀 남았는데 장을 보는 사람들도 많길래, 여긴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굉장히 길게 가나보다 생각했다. 아이 내복을 보고 있는데 학교에서 안내 전화가 왔다. 오늘 학교가 휴교란다. 원래 오늘 학교에서 크리스마스 파티도 하고 이것저것 행사가 많았는데, 한파 특보 때문에 학교를 휴교한단다. 한파에 휴교까지? 폭설이면 몰라도, 한파라고 휴교를 하는 건 과하지 않나 생각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기온이 영하 5도다. 춥지만 한파라고 할 정도는 아니었다. 이곳은 보통 강원도 날씨를 생각하면 되는데, 영하 10도 정도는 우습게 내려가니까, 영하 5도가 춥기는 해도 견딜 만한 수준이다. 아이 아침밥을 챙겨주고 날씨를 챙기는데, 이번엔 영하 9도다. 응? 아침이고 해도 뜨고 기온 확인한 지 불과 1시간도 안 됐는데, 4~5도가 뚝 떨어졌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점심이 지나자 영하 12도, 오후엔 영하 18도가 되었다.


한파도 한파지만, 기온이 너무 갑작스럽게 떨어졌다. 일기예보를 확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역 뉴스를 틀고 일기예보를 확인한다. 미국 일기예보에는 온도가 화씨로 나오기 때문에 느낌이 바로바로 오지 않는데, 이번에는 느낌이 확 왔다. 화씨온도로 영하를 처음 봤기 때문이다. 영하 4도, 5도, 측 영하 20도까지 떨어진단 소리다.


다행히도 한파에 어제 장 보는 사람들이 워낙 많길래 나도 덩달아 먹을 걸 평소보다 더 사두었는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크리스마스는 교회 가는 것 빼고는 집에 있어야겠구나 생각했다. 집이 웃풍이 있고 하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마음만 먹으면 (전기세, 가스비만 포기하면) 따뜻하게 보낼 수 있으니까.


그런데 오후부터 문제가 생겼다!


히터가 계속 돌아가고 있는데, 집이 계속 조금씩 추워지고 있는 게 아닌가. 밖이 영하 18도까지 떨어지다 보니 난방 효율이 떨어지나 보다 생각했다. 히터 벤트가 다 천정에 붙어 있는데, 아무래도 꼭대기층이다 보니, 히터 공기 덕트가 외부 공기에 영향을 받을 수도 있겠지 생각했다. (미안하다 문과다)


‘이거 히터에서 찬바람 나오는 거 아냐?’


‘잘 모르겠는데? 이거 꺼야 하는 거 아냐?’


‘그래도 끄면 안 되지 않아?’


잘 모르겠다. 어떡하지?


‘그러고 보니 뜨거운 물도 안 나오는 거 같은데?’


‘뭐?’


아, 이렇게 추운데, 히터도 잘 안 되고, 뜨거운 물도 안 나오다니. 큰일이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사실 고장 났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저 너무 추워서 효율이 떨어지고 있구나, 웃풍이 너무 심하다 보니 히터를 세게 틀어도 방안 온도가 계속 떨어지는구나 생각했다.


‘똑똑’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뭐지?


핀홀로 보니 아랫집 사람이다. 그 집도 초등학생이 있어 아침 등교 때마다 봐서 안면이 있는 분이다.


‘안녕, 무슨 일이야?’


‘혹시 너네 집 옆집에 누구 사는지 알아?’


‘어, 내가 알기로는 집에 아무도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 얼마 전에 이사 나가고 새로 안 들어왔어.’


‘그래? 우리 그 아랫집인데, 윗집에서 물이 엄청 새네. 부엌이 엉망이 됐어.’


아이쿠야. 아무래도 동파가 의심된다.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게 없어서 안타까웠다. 이머전시 메인테넌스를 부르라고 얘기하고는 속으로 안심했다. 와, 저런 일을 우리가 겪지 않아서 다행이다 생각하면서.


하여튼 우리 집은 온도가 계속 떨어지고 있었다. 작은 방은 방안 온도가 10도 정도까지 떨어졌다. 거실도 15도 정도다. 밤은 깊어 가는데, 잠을 어떻게 잘 것인지 걱정이 되었다. 집에 설치되어 있는 히터를 제외하고는 라디에이터 히터 하나,   그리고 침대에 깔린 전기장판 정도만 가지고 있었다. 하는 수 없이 온 가족이 안방에 모여서 같이 자기로 했다. 라디에이터 히터를 풀 파워로 켜니까 그래도 안방 하나는 18~9도까지 올라갔다. 반려견 디디도 방 안으로 들여보내고, 바닥에 잘 자리를 마련해 줬다.


히터에선 계속 찬 바람만 나온다. 오히려 그 찬 바람 때문에 온도가 더 떨어지는 것 같았다. 자려고 눕기 전에 보니 거실은 10도, 작은 방은 6도 안팎이다. 이건 정상이 아니다. 일단 동파는 막아야겠다는 생각에 화장실과 부엌 수도를 다 틀어놓고, 히터는 아예 꺼 버렸다. 그리고 아침에 우리 집도 이머전시 메인테넌스를 불러야겠다고 생각하고 잠이 들었다. 


<계속>


Photo by Andre Hunter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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