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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중년수험생 jcobwhy Dec 20. 2022

초등학교 4학년생 인생 일대의 타협

D+134 (dec 13th 2022)

며칠 추운 날씨가 계속되더니 지난 주말 아이가 감기에 걸렸다. 다행히 인플루엔자나 코로나19는 아니었고, 단순 감기였다. 아이가 얼마 만에 감기에 걸렸나 싶다. 지난 몇 년간 팬데믹으로 열심히 마스크를 쓰고 위생에 신경 쓴 덕분에, 코로나에는 걸려도 감기는 모르고 살았다. 그런데 이번에 거의 4년 만에 감기에 걸렸다. 기침 약간 하고, 열도 제법 난다.


그런데 감기에 걸린 시기가 좋지 않았다. 아이가 기다리던 이벤트를 여러 개 앞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가 미국에 온 후 처음으로 동급생 친구에게 생일 파티 초대를 받았다. 주말에 트램펄린 파크에서 꽤 크게 하는 생일 파티여서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크리스마스 시즌을 앞두고 학교에서는 월요일에 진저브래드 하우스 콘테스트, 화요일엔 아이가 참여하는 합창단 콘서트가 기다리고 있었다. 미국에 와서 모두 처음 하는 학교 행사들이어서 아이가 무척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생일 파티를 가는 토요일 아침, 아이에게 열이 나기 시작했다. 아이도 아이였지만 나와 아내가 속이 많이 상했다. 아이가 생일 파티에 초대를 받았다는 건 이곳 생활에 잘 적응했다는 반증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열이 나거나 기침을 많이 하면 아무래도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 참여하게 하기가 어렵다. 가뜩이나 미국에서 기침을 하거나 열이 나면 학교/직장에 나가지 않도록 지도하는데, 팬데믹까지 있었으니 더 신경이 많이 쓰이는 부분이다.


'37도 약간 넘는데 가도 되지 않을까?’


‘그래도 열이 나는데, 안 가는 게 좋지 않겠어?’


아내는 워낙 아이가 손꼽아 기다리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생일 파티엔 꼭 보내고 싶었던 모양이다. 나는 제법 원칙주의자여서 열이 나면 아무 데도 안 가는 게 맞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도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다. 생일 파티에 못 가게 하자니 그렇게 기다리던 파티였기에 너무 크게 실망할 것 같았고, 그냥 보내자니 트램펄린 파크에 다녀오면 몸살이 날 것만 같았다. 그렇다면 뒤이어 열리는 학교의 이벤트는 모두 참석하지 못하지 않겠는가.


‘그래도 학교 이벤트보단 생일파티가 아이에게 더 인상적이지 않을까?’


그래서 아내와 나는 생일파티에서 짧게만 놀게 하고 돌아오는 쪽으로 마음을 조금씩 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의외로 아이가 선언했다.


‘나 생일 파티 안 가고 집에 있을래.’


응? 갑자기?


아이가 가지 않기로 결정한 생일 파티는 정말 우리가 영화에서나 보던 미국 어린이의 생일파티였다. 생일을 맞은 아이의 부모가 한 달 전부터 부모 연락처를 물어보고 초대장을 보냈다. 초대장을 받으면 RSVP(참여 여부 응답)를 하고 당일에 참석하는 그런 생일 파티. 생일 선물도 딸아이가 직접 준비했다. 동물 인형을 받고 싶다는 친구의 바람을 듣고는 직접 골라 선물 박스에 넣었고, 한국에서 가져온 전통 문양이 그려진 카드도 따로 준비했다. 그렇게까지 딸아이도 마음으로 준비한 생일파티를 가지 않기로 결정한 것이다. 


처음엔 ‘내색은 안 해도 그 정도로 아픈가’ 싶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아이는 다음 주 화요일에 있을 합창단 콘서트에 참여하지 못할까 봐 덜컥 겁이 난 것이었다. 꼭 콘서트에 참여하겠다는 생각에 푹 쉬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다른 것도 아니고 합창 콘서트? 아내와 나는 깜짝 놀랐다. 사실 합창단에 들어가긴 했어도 콘서트는 하고 싶지 않다고 전부터 말해왔던 딸아이였다. 생일 파티나 진저브래드 하우스 콘테스트는 모두 한국에서 경험해 보지 못했던 새로운 체험이기에 아내나 내 입장에선 더 우선순위에 뒀는데, 아이의 생각은 달랐다.


아이는 단순히 생일 파티에 참석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주말 내내 목소리도 전혀 내지 않고 생활할 정도로 목을 보호했다. 우리 딸아이가 얼마나 수다쟁이인지 안다면 정말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이다. 목이 안 아프려면 물을 많이 먹어야 한다고 했더니, 물도 정말 많이 먹었다.


학교 방침상 해열제를 먹지 않고 24시간 동안 열이 화씨 100도(섭씨 37.8도)를 넘지 않아야 학교에 출석할 수 있기 때문에, 월요일에는 학교를 빠져야 했다. 결국 진저브래드 하우스 콘테스트도 스킵했다. 주말에 열심히 만들었는데 아쉽지 않냐고 물어봐도 괜찮단다. 이미 콘서트에 온 정신이 집중되어 있어서 나머지는 신경도 안 쓰는 듯했다.


아이의 노력 덕분이었을까? 화요일엔 열도 완전히 내려서 학교에 출석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콘서트도 잘 참여했다!


아직도 기침은 조금 남아 있어서 마스크도 하고 기침약도 계속 먹어야 했지만, 그래도 잘 관리한 덕분에 콘서트는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계속 기침이 나오려고 하자 노래가 끝날 때까지 잘 참았다가 노래가 끝나고 입을 가리고 기침을 하는 아이의 모습이 대견했다. 


자신이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스스로를 통제하는 모습을 아이에게서 처음 보았다. 새삼 아이가 많이 자랐구나 느낀다.


Photo by Kelly Sikkema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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