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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중년수험생 jcobwhy Dec 12. 2022

거실을 울리는 서툰 우쿨렐레 소리

D+128 (dec 7th 2022)

우리 딸아이는 초등학교 4학년이다. 한국에서 초등학교 4학년 1학기를 마쳤는데, 미국에 와서는 다시 초등학교 4학년 1학기가 되었다. 만약 아이가 9월 전에 태어난 아이였으면 5학년이 되었겠지만, 9월에 태어나서 다행히도 4학년으로 들어갔다. 미국에 오자마자 신학기 시작. 한국에서 마음의 준비는 모두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모든 것이 갑작스럽고 모든 것이 낯설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나 아내 모두 올 한 학년은 아이에게 많은 것을 바라지 않기로 했다. 그저 바라는 건 단 한 가지, 미국 학교 생활에 잘 적응하는 것이다.


아내는 자신의 학교 생활 시작으로 정신이 없었고, 나는 미국으로 물리적 이동을 하는 것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기 때문에, 아이의 학교 생활에 대한 사전 정보를 충분히 얻지 못한 상태로 미국에 오게 됐다. 거기에 개학 전주 금요일까지 아이가 어느 학교에 가게 되는지도 몰라서 뭔가 준비를 하기가 쉽지 않았다.


흔히들 미국의 학교에서는 많은 과외 활동들을 하게 된다고 알고 있다. 첫 느낌은 한국에서의 방과 후 활동과 크게 다르지는 않은 것으로 보였다. 다만 미국에 온 지 한 달이 안 된 상태에서 너무 많은 영어로 된 정보가 쏟아지는 통에 무엇 하나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고 말았을 뿐이다. 결국 아이는 스스로 손 든 (그래서 스스로는 후회한) 합창단 활동을 제외하고 아무런 과외 활동을 신청하지 않았다. 그때도 아내와 나는 다소간의 불안감이 있었지만, 그래도 첫 학년은 일차 목표가 적응이라며, 괜찮을 거라며, 초조한 마음을 다스렸다.


어느덧 이곳 생활이 4개월을 넘어가고 주변에 아는 사람들도 조금씩 생겼다. 주재원이나 이민자들의 자녀 친구들도 제법 생겼다. 그런데 이렇게 조금씩 아는 사람들이 생기면서 초조한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아이 또래의 다른 친구들이 얼마나 많은 과외 활동을 하는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처음 알게 된 주재원 분의 딸은 매일 기계체조 방과 후 활동에 주말엔 축구 클럽에 나가고, 바이올린 레슨도 받는다고 한다. 다른 이민자 분의 딸은 학교 오케스트라에 열정적으로 참여한다. 딸아이의 가장 친한 남사친 T는 온 가족이 농구 가족인 특성상 방과 후에 농구 클럽에 참여한다. 학교 정규 수업을 제외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아이는 우리 아이밖에 없는 것처럼 보였다.


사실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않은 미국 생활이기에 학교가 제공하는 과외활동이 아닌 돈이 많이 드는 별도의 레슨이나 클럽 스포츠 활동은 부담이 많다. 한국의 학원과는 차원이 다르다. 거의 대부분 개인 교습에 가깝고, 비용도 비싸다. 학습과 관련한 과외 활동은 거의 없고, 대부분 체육, 음악과 관련한 활동을 많이 하는 편이다. 학습에만 치우치지 않는 과외활동은 좋지만, 경제적인 부담이 커서 학교 활동을 위주로 아이가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쪽으로 방향을 정했다.


그런데 얼마 전 새롭게 시작한 방과 후 수업마저 아무것도 신청하지 않은 채 넘어가 버리고 말았다. 아이는 이번 방과 후 활동 중에서 하고 싶은 게 있었던 모양인데, 실제로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용기를 내지 못한 모양이다. 그런 아이의 마음을 알게 된 나와 아내는 마음이 무척 아팠다. 아내와 나는 이번 학년은 적응이 최우선이니, 학교에 충실하고 내년엔 꼭 여러 가지 활동을 지원해 주기로 다짐했다.


우리 아이는 차라리 한국에서 다양한 학원을 다니면서 과외 활동을 했다. 수학, 영어 학원과 점핑 클럽, 수영 레슨을 다녔다. 교육열이 넘치는 모 지역의 아이만큼은 아니었지만, 매일 여섯 시에 스케줄이 끝나는 제법 바쁜 하루를 보냈다. 맞벌이 가정이라서 많이 챙겨주지 못하는 안타까움에 다양한 활동을 하도록 지원한 측면이 컸다. 하지만 오히려 다양한 활동이 가능한 미국에서 경험의 폭이 너무 좁아진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아이가 하고 싶었던 방과 후 활동은 우쿨렐레 연주반이었다. 아이는 전부터 배우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지만, 내 생각에는 우쿨렐레보다는 기타를 배우는 것이 더 쓸모가 있겠다 싶어서 한국에 있을 때부터 기타를 사주고 틈틈이 연습을 시키곤 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기타는 운지법도 어렵고 하다 보니 아이는 지속적으로 기타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나는 고민을 하다가, 아이가 하고 싶어 하는 것이 있으니 그걸 도와주는 것이 좋겠다 싶어, 우쿨렐레를 미리 사주고 연습을 시켜 다음 세션에 방과 후 수업에 참여할 수 있게 도와주기로 마음먹었다. 마침 추수감사절 블랙 프라이데이 때 아마존에서 기타와 우쿨렐레를 저렴하게 판매해서 미리 크리스마스 선물로 구매했다. 기타는 아내를 위해, 우쿨렐레는 아이를 위해.


아내와 아이는 내가 저녁 준비를 하는 시간에 둘이서 같은 노래 연주를 연습하기 시작했다. 하나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징글벨’, 또 다른 하나는 아이의 어렸을 적 자장가 ‘오버 더 레인보우’다. 처음에는 운지도 스트로크도 서툴더니, 일주일을 꼬박 연습하니 이제는 제법 연주 같아졌다. 우쿨렐레를 사주면서 금방 흥미를 잃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아직은 연주가 제법 즐거운 듯하다. 내 입장에서도 아이가 학교 다녀오면 숙제를 마치고는 티브이 보고 아이패드 게임하는 것이 전부였는데, 그것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게 된 것 같아 마음이 놓인다.


아이가 학습에만 치이는 것이 아닌,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고 미국에 온 만큼, 더 많은 활동에 참여했으면 좋겠다. 내가 숫기가 많고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이 아직은 많이 어색해서 아이가 다양한 활동을 할 기회를 제공해 주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안타깝다. 아이가 학교에서 적응하는 만큼, 나도 미국 초등학교 학부모로서 잘 적응해서 아이가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잘 지원해야 할 것 같다.


Photo by Hannah Busing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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