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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중년수험생 jcobwhy Jan 11. 2023

우리 집에 초대합니다

D+159 (jan 7th 2023)

누구든 새로운 장소에 적응하는 것은 쉽지 않다. 도에서 도를 이동, 아니 시에서 시로 이동만 하더라도 쓰레기 분리배출에서부터 사소한 행정 복지 시스템, 아파트 관리 규정들이 미세하게 달라서 은근히 불편함을 야기하곤 한다. 이웃과의 거리감이 점차 멀어지는 한국 사회의 특성상 모르는 것들을 이웃에게 물어보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짧지 않은 시간 불편함을 감수하거나, 심할 때는 약간의 손해를 감수하기도 한다.


한국 내에서 시에서 시, 도에서 도로 이동한다 할지라도 어려운 일이 많을 텐데, 나라에서 나라로 이주를 하는 입장에서 어려운 일들이 얼마나 많았으랴. 처음 이곳에 오고 나서 약 한 달 동안은 정말 잠도 잘 자지 못할 정도였다. 미국에서 살았던 경험이 있어도 온 가족이 함께 삶의 터전을 바꾼다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니더라. 예상한 만큼 역시나 어려운 부분도 많았고, 예상치 못한 장애물도 꽤나 많았다.


감사하게도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이곳에 와서도 우리 가족의 정착을 돕는 사람들이 있었다. 한인 교회의 목사님과 성도님들이 그랬고, 아이의 학교 친구 학부모들이 그랬다.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발 벗고 나서 먼저 의견을 주고 필요한 정보도 주신 덕에 여러 장애물들을 넘을 수 있었다.


여러 도움을 받았던 사람들 중, 정서적으로 많은 도움을 받았던 한 가정을 집으로 초대했다. 먼저 그 가정에서 우리를 초대해서 식사를 대접해 주었고, 집에 돌아올 땐 구하기도 어려운 북어나 잔멸치 등을 잔뜩 싸주기까지 했다. 우리보다 앞서 여러 일들을 경험해서 그런지 도움이 되는 이야기도 많이 해 주었다. 아내와 나는 감사한 마음을 답례하고자 집으로 그 가정을 초대하기로 했다.


집에 사람을 초대한다는 것,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집에 사람들을 초대한 기억이 거의 없다. 집에 사람을 들일 정도로 형편이 좋지도 못했고, 아내나 나 모두 많이 바빠서 집에 초대하느니, 밖에서 대접하는 것이 수월했다. 한국에 있는 9년간 우리 집에 왔던 사람을 손에 꼽는다. 하지만 이번에는 초대를 받아 그 집에 방문했었는데, 답례를 한다면서 집에 초대를 안 할 수는 없었다. 사실 미국에서 외식으로 대접한다는 것은 훨씬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미국의 일반 가정에 비해 아파트는 좁아서 사람들을 초대하기는 조금 부담스러웠다. 이제 이주한 지 반년도 안 되어서, 아직도 집은 어수선하다.


‘어떻게 하지?’


‘우리 아파트에 클럽 하우스가 있으니까, 거길 한 번 빌려볼까?’


그래. 미국의 아파트는 경우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몇 가지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는 경우가 많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시설은 낡고 오래됐지만, 클럽하우스와 수영장, 피트니스, 대여 자전거 등을 갖추고 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여름엔 수영장도 잘 사용했고, 아내와 나는 꾸준히 피트니스 시설도 사용 중이다. 클럽하우스는 관리사무소에 위치하고 있는데, 넓은 리셉션룸과 주방을 갖춘 제법 그럴듯한 공간이다. 그곳을 빌리면 잘 대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관리사무소에서 클럽하우스를 대여했다. 헐. 생각보다 대여비가 싸지 않았다. 시설 사용에 대한 보증금도 요구했다. 한 가정을 초대하기 위한 비용으로는 조금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이미 초대도 했고 다른 대안을 생각도 하지 않은 터라, 이번엔 그냥 이용하고 다음부턴 더 많은 사람을 모아 포트락 파티를 하거나 바비큐를 할 때 사용하기로 했다. 


이번엔 대접할 음식을 정해야 했다. 무얼 하는 것이 좋을까? 저번에 초대를 받았을 땐 등갈비 오븐 구이를 하셨었는데. 요리를 하는 게 부담스럽지는 않은 내 입장에선 뭘 해도 상관이 없기는 한데, 양을 얼마나 해야 할지가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우리 가족은 셋, 그쪽 가정은 넷이다. 사춘기 아들이 있고, 우리 딸아이 또래의 딸도 있다. 우리 딸은 워낙 입이 짧아서 거의 식사를 안 하는데, 그 집은 또 모른다. 처음엔 갈비찜이나 사태찜을 하면 좋겠다 싶었다. 코스트코에서 소고기를 구매하면 가격도 저렴하고 부담스럽지도 않다. 하지만 예닐곱 명이 먹을 찜을 할 큰 냄비가 없다. 그리고 갈비찜, 사태찜은 조금 뻔하다 싶기도 하다. 그 가정은 미국에 온 지 8년이 넘었다고 하니, 요즘 한국 음식을 하면 좋겠다 싶었다. 미국에서는 먹기도 하기도 쉽지 않은 음식. 매운 등갈비찜? 닭볶음탕? 이래저래 고민하다가 마침내 결론 난 것은 찜닭이었다. 닭볶음탕은 미국에 있는 한인들도 많이 해 먹는 편이지만, 찜닭은 잘 안 먹었겠다 싶었다. 찜닭, 좋은 아이템이다.


여전히 문제는 큰 냄비의 부재다. 사면되겠지만, 사실 우리 가족만 있으면 그렇게 큰 냄비는 쓸 일이 거의 없다. 고민하다가 일회용 오븐 용기를 이용해 찜닭을 오븐에 굽기로 했다. 그러면 불필요하게 냄비를 살 필요도 없고, 오븐에 구우면 더 맛있겠다 싶었다. 결국 준비하기로 한 음식은 쌀밥과 미역국, 찜닭을 메인 메뉴로 아이들을 위한 감자 옥수수 버터구이, 케첩 떡볶이, 반찬으로 파전과 김치전이다.


오전부터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대용량의 음식을 하자니 간장이나 참기름 같은 재료들도 조금씩 부족했다. 그래서 아침에 아시안 마켓에 갔는데, 아니 글쎄 한국 간장이 없는 게 아닌가? 가뜩이나 정신이 없는데, 원하는 간장이 없는 것을 깨닫고 거의 패닉 상태에 이르렀다. 물론 한국 간장과 일본, 중국 간장이 많이 다르지는 않지만, 한국 음식을 할 때는 미묘하게 다른 맛을 낸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가장 흔한 일본 브랜드의 간장을 구매했다. 사실 중국 브랜드의 간장은 먹어본 적이 없어서 모험을 할 수는 없었다. 다른 재료를 조금 더 구매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약속시간은 다섯 시. 오후 한 시부터 음식 준비를 시작했다. 아내는 집에서 파전과 김치전을 만들기로 하고, 나는 클럽하우스에서 감자 옥수수 버터 구이와 찜닭, 감자 옥수수 버터 구이를 만들기 시작했다. 대환장 파티였다. 음식재료는 클럽하우스로 다 가지고 왔는데 조리도구를 집에 놓고 오고, 밥솥은 챙겼는데 주걱은 두고 왔다. 힘들게 닭을 손질했는데, 기름 범벅이 된 손을 씻을 비누가 없었다. 할 수 없이 설거지 세제로 손을 씻어야 했다. 손이 뻣뻣해진다.


약속시간 한 시간 반전에 가까스로 오븐에 찜닭과 감자 옥수수 버터구이를 넣고 구울 수 있었다. 약속 시간이 다 되어서 가까스로 떡볶이 요리를 시작했는데, 그만 밥솥 취사 누르는 것을 잊었다. 초대한 가정이 오기 직전에야 취사를 눌렀고, 결국 손님들은 밥을 먹기 위해 삼십여 분을 기다려야 했다.


오븐에 구운 찜닭은 불안했다. 혹시 안 익었으면 어쩌나. 오븐에 고기를 익히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물론 통닭은 넣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워낙 양이 많았다. 한국 닭에 비해 미국 닭은 워낙 크기 때문이다. 요리를 이리저리 헤쳐보니 다행히도 안까지 잘 익었다.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쉰다.


음식은 성공적이었다. 어른들도 좋아해 주었고, 아이들도 잘 먹었다. 초대한 가정에서 여러 디저트를 준비해준 덕분에 식사 후에도 한참 담소를 나눌 수 있었다.


다른 가정을 초대한 우리 가정의 첫 홈파티는 열 시가 되어서야 끝났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내와 둘이 다짐했다. 다시는 사람 초대해 일방적으로 음식 대접하지 않기로. 우리가 잘 적응하도록 도와준 수많은 손길은 너무나 감사하지만, 고마운 마음은 다른 방법으로 표현하기로. 다 같이 함께 준비하는 파티는 몰라도 일방적으로 준비하고 대접하는 건 너무 힘들다. 


Photo by Maddi Bazzocco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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