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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국 방구석 주부 Feb 07. 2023

취학(의무교육) 유예자가 된 딸아이

와이프 따라 미국 가는 남편 2-14

우리나라의 초등, 중등 교육은 의무교육이다. 뭐, 너무 당연한 소리다. 모든 국민이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고, 국가는 이를 보장해야 한다. 의무 교육은 사실 이를 뛰어넘는 이야기다. 모든 국민은 초등, 중등 교육을 받을 의무가 있다. 이에 대한 예외 사항은 아주 제한적이다. 거의 백 퍼센트에 가까운 학령인구의 어린이들이 의무교육으로 학교에 다니고 있기에, 어린이 보호 법규와 제도 장치도 학교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위기 가정의 어린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점검도 학교를 통해 이루어지고, 가정 폭력도 학교를 통해 발견된다.


이런 사회적 장치가 문제가 있거나, 불편하거나, 예외적 상황이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너무나 식상한 단어라고나 할까? 그저 선언적인 내용이라고만 생각한 것이다. 도대체 누가 초등학교나 중학교를 다니지 않는단 말인가. 그런데, 이 식상하고도 식상한 의무 교육이 이번 미국 이주 과정에서 나를 아주 폭발하게 만들었다.


아내는 박사 유학으로 인해 미국으로 이주하는 우리 가정은 당연히 가족 구성원 전원이 미국으로 향한다. 경력 단절이 되건 직장인에서 학생으로 신분이 바뀌건, 어른들은 회사를 그만두고 미국에 가면 된다. 딸아이는? 한국의 초등학교를 그만 다니고 미국의 초등학교를 다니게 된다.


처음엔 그저 전학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미국과 한국의 학제가 같지는 않지만, 한국에서의 고등학교 졸업이 미국에서 같은 학력을 인정받고, 미국의 고등학교 졸업도 같은 인정을 받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 의무 교육이라는 것이 상황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한국은 초등, 중등 교육이 의무교육이기에 학교 자퇴가 불가능했다. 몇 가지 예외사항에 대해서만 취학(의무교육) 면제 신청이라는 과정을 통해 자퇴 비스름하게 할 수 있기는 했지만, 그 예외사항이라는 것이 굉장히 경계가 불분명했다. 특히 해외 이주에 대한 부분이 그랬는데, 이민 비자를 받은 경우에는 면제가 가능했지만, 비이민 비자에 대해서는 면제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또 비이민 비자 가운데서도 취업의 경우에는 면제가 되는데, 유학의 경우에는 면제가 되지 않았다. 이게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아무 생각 없이 취학(의무교육) 면제 신청서를 쓰러 갔다가 면제가 되지 않고 유예를 신청해야 하며 이를 매해 갱신해야 하는데, 통상적으로 그냥 첫 해에만 하면 되고, 부모와 연락이 안 될 경우 가정 폭력으로 고발이 될 수도 있지만, 그럴 일을 없다(?)라는 설명을 듣게 되자 터무니가 없었다. 유예. 즉 법을 지키지 않고 있지만 행정적으로 조치를 취하지 않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아이가 이제 초등학교 4학년이니까, 중학교 3학년이 지나는 거의 6년간 그런 상태가 되는 것이다. 즉 행정 조치가 유예된 범법자가 되는 상황이다.


도저히 이 상황을 납득할 수 없었던 나와 아내는 교육청과 학교 등에 연락을 취하며 정보를 수집했다. 하지만 결론은 달라지지 않았다. 부모 중 하나가 유학을 가는 것은 취업과 같이 필수 불가결한 사항이 아니라 선택사항이므로, 자녀가 의무 교육을 이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을 면제할 수 없다는 것이 결론이었다. 뭐, 이런…!!


정보 수집 중에 알게 된 사실은 사실 이런 제도가 다분히 의도적으로 짜여 있다는 사실이었다. 크게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무분별한 해외 조기 유학 방지다. 일부 교육열이 높은 사람들이 어린 나이부터 조기 유학을 보내기 위해 부모 중 한 명이 어학연수 등으로 유학 비자를 받고 기러기 생활을 하면서 유학을 하는 경우가 매우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를 방지하기 위해 유학 비자로 아이가 해외 이주를 할 경우에는 취학(의무교육) 면제를 해주지 않는다는 것. 다른 하나는 가정폭력을 방지하는 장치라는 것이다. 해외 이주나 유학을 핑계로 학교에 나오지 않게 되면 가정 폭력에 노출될 수 있으므로 이를 방지하겠다는 것.


너무나도 목적과 방향이 다른 두 가지 범죄, 혹은 편법을 방지하기 위해 한 가지 제도의 방지법을 몰아넣은 듯한 느낌이 드는 이 ‘취학(의무교육) 면제/유예’ 제도는 거의 유명무실한 상태로 보였다. 원래 제도대로라면 아이는 새 학년이 시작되면 반을 배정받고 학교를 결석하고, 일정 수업일수를 결석하면 학교에서 가정에 연락을 취하며, 나는 이 연락에 응해 해외 거주 증빙 서류와 함께 취학(의무교육) 유예를 신청해야 한다. 또 이를 6년간 반복해야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하지 않고 미리 작성한 신청서와 개인정보 동의서를 통해 출입국 기록을 확인하고 행정적으로 학교에서 알아서 처리를 해 놓는다고 한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법과 제도가 그렇게 되어 있지 않은데 융통성 있게 행정 처리한다.’


이 말은 누가 와서 법과 제도를 제대로 적용하면 순식간에 범법자가 되는 상황이다. 실제로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면 법대로 살지 않을 수 있는 상황이 상관없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게 싫다. 실제로는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고 해도, 범법 행위에 대한 임의적 행정 조치 유예로만 느껴진다. 마치 아내가 유학을 가고 우리 가족이 이로 인해 미국에 가는 것이 이런 범법행위처럼 느껴진다. 다른 방법이 없어 학교의 조치대로 취학(의무교육) 유예 신청서를 쓰고 끝냈지만, 찝찝한 마음은 끝내 사라지지 않았다.


늘 국민의 대다수’만’을 위한 제도’만’ 잘 갖추고 있는 우리나라임을 새삼 느낀다. 국민의 대다수 삶의 모양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아무런 법적인 보호도, 훌륭한 사회보장도 기대하기 어렵다. 그런 법과 제도마저 사람들에게 남들처럼 살라고 강요하는 것은 아닌지 고민하게 된다.


Photo by Ivan Aleksic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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