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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국 방구석 주부 Feb 14. 2023

미국 비자 인터뷰, 아는 게 더 무섭더라

와이프 따라 미국 가는 남편 2-15

어찌어찌 여러 준비 사항들을 하나씩 해결해 가고, 가슴 졸였던 각종 서류의 굴레에서도 벗어났지만, 우리 앞에 나타난 다음 관문은 비자 발급이었다. 관광이 아닌 목적으로 미국을 가본 사람들이라면 미국 비자 발급은 굉장히 긴장감을 주는 과정 중에 하나다. 팬데믹이 지속되면서 해외 출입국이 제한되는 상황이 지속되었기 때문에 비자 발급을 받는 절차도 과거와 차이를 보였다.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비자 인터뷰의 규모가 확 축소되었고, 이에 따라 미국 비자 인터뷰 잡기가 하늘의 별따기가 되었다. (물론 우편을 통한 인터뷰 면제 비자 신청 방법도 생겼지만, 여러 조건 상 우리는 그대로 인터뷰를 보기로 했다) 모든 서류를 모두 구비한 시점이 6월 초였는데 그때 예약할 수 있는 인터뷰 시점이 8월이었다. 이럴 수가. 비행기 티켓은 이미 8월 1일로 끊었는데, 이를 어쩐단 말인가. 들리는 말이 대사관 예약 페이지를 수시로 들어가다 보면 시간이 생기기도 하니까, 그때 당겨서 다시 예약을 하면 된다고 한다. 좀 로또와 같은 확률처럼 느껴진 이 방법은 의외로 굉장히 일반적이어서, 우리도 몇 번의 예약 페이지 확인으로 간신히(?) 출국 2주 전에 비자 인터뷰 일정을 다시 잡을 수 있었다. 


미국 비자 인터뷰는 신경 쓰이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준비해야 하는 서류도 많고, 수수료 납부도 일상적인 방법과는 다르다. 개인 서류뿐만 아니라, 인터뷰 예약 번호, 수수료 납부 영수증 등, 따로 챙겨야 할 것도 많다. 전의 글에서 언급했다시피, 비자 발급 관련 서류 외에도, 아내의 학교 서류, 정착 도우미 관련 서류 등으로 비슷한 듯 서로 다른 리스트가 많기 때문에 엄청 헷갈린다. 거기에 비자를 받는 아내와 나 모두 각각 준비해야 하는 서류가 많기 때문에 꼼꼼하게 챙겨야 한다. 둘이 합치면 서류가 거의 30여 종. 정말 정신이 하나도 없다. 그 모든 서류를 모두 접수하면서 보내는 것도 아니고, 인터뷰를 할 때 들고 가야 한다. 혹시 누락되거나 분실되면 일이 커지기 때문에 라벨지로 서류 하나하나에 표시까지 해 두며 인터뷰 날을 기다렸다.


어렸을 적 기억에, 학생 비자는 나이가 많을수록 발급받기가 어렵다는 말이 있었다. 아무래도 늦은 나이에 미국에 갈수록 현지에 정착하려는 시도가 많기 때문인데, 학생 비자는 비이민 비자이고, 비이민 비자를 발급받을 때는 현지에 정착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그런 면에서 나는 걱정이 많았는데, 우리는 부부가 모두 40대이기도 했고, 아이는 미국 시민권자이기 때문에 이민국에서, 혹은 대사관에서 보기에는 이민을 목표로 하는 사람들이라고 여길 수 있기 때문에 매우 까다롭게 심사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주 작은 부분에서도 책잡히거나 거리낄 것이 없도록 최선을 다해 준비했다.


드디어 비자 인터뷰 날이 되고, 우리 가족은 비자 인터뷰를 위해 광화문에 있는 대사관으로 향했다. 수도권의 끝에 살고 있는 우리들 입장에서는 대사관이 너무 멀디 멀다. 오후 12시 인터뷰가 잡혔는데, 아침 9시에 출발했다. 실제로 많이 멀어서 고속도로가 막히기라도 하면 얼마나 걸릴지 장담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직장인 시절 강북 홍대 부근에서 외근이라도 있을 때 운이 나쁘면 두 시간 반까지 걸리기도 했었다. 광화문이라면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세 식구가 모두 아침부터 분주하게 서울행이다.


다행히 일찍 도착했다. 11시. 아, 너무 일찍 도착했다. 가뜩이나 비자 인터뷰를 앞두고 긴장했는데, 한 시간이나 남았으니 긴장감이 더욱 고조됐다. 가까이에 있는 교보문고에 가서 아이가 지겹지 않도록 책도 구매하고 시간을 보냈는데, 내 심장이 너무 뛰는 통에 정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아, 오늘 비자 인터뷰가 꼬이면 어쩌지? 만약 거절되면? 우린 다시 미국에 못 가게 되겠지? 혹시 우리 서류를 의심스러워하면 어쩌지? 이때까지 그렇게 좋아했는데 일장춘몽이 되면 어쩌지?’


뭐 이런 생각 때문에 불안감이 커졌다. 처음 유학을 갈 때도 이렇게 긴장했던가? 그때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인터뷰를 봤던 것 같다. 당연히 비자가 나오겠지. 학교 등록을 했는데. 뭐 이런 생각? 비자 발급이 거절되고, 입국 심사에서 출국당하고, 미국에 들어가는 것이 생각보다 까다롭고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그 이후의 일이었다. 문제는 지금은 그런 일이 제법 많다는 것을 알게 된 상태에서 인터뷰를 본다는 점이었다. 괜히 안 좋은 일이 우리에게만 생길 것 같다는 불길함(?)이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얼추 시간이 되고 대사관으로 향했다. 비자 인터뷰 참석 인원은 그전(15년 전 미국에 처음 올 때) 보다 훨씬 엄격하게 관리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줄 서고 있는 사람이 굉장히 적었다. 하긴 내가 처음 비자를 받았을 때는 관광을 위해서도 비자를 발급받던 시절이다. (ESTA 시행 전) 인터뷰를 받는 방에 들어가면 정말 사람이 많았었는데, 이제는 (오래 기다리지 않아서) 앉아 있을 필요도 없었다. 순조롭게 입장을 완료하고 인터뷰가 진행되는 2층으로 올라갔다.


줄을 서 있으면 한국 직원들이 1차적으로 서류를 확인한다. 수많은 서류 중에 반드시 확인하는 서류와 선택적으로 보는 서류가 있기 때문에 이를 분류하기 위한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이들이 한 말이 아내의 속을 긁었다.


‘아빠만 계시면 돼요. 어머니랑 아이는 저쪽으로 가 계세요~’


우리는 아내가 비자 주 신청자다. 아내가 유학을 가는 거고 난 동반인 가족 비자를 받는 거다. 그런데 직원들이 단정적으로 마치 아내와 아이가 부수적인 대상인양 대하는 것이 아내의 속을 건드렸다.


‘제가 주신청자예요~!’


분노한 아내가 소심하게 쏘아붙인다.


‘(흠짓 하더니) 상관없어요.’


상관없기는. 비자 신청자 서류가 다 아내 건데 어떻게 상관이 없나. 그런데 그러는 와중에도 난 정신이 나가 있었다. 비자 인터뷰를 망치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에. 비자 인터뷰 전 영사가 서류를 확인하고 지문 채취를 하는 순서가 있는데, 아내가 순서를 잘 모르고 버벅대고 있었다. 나는 얼마나 정신이 나가 있었는지 아내의 손을 탁 치고 반대 손을 끌어다 센서에 올렸다. 그러자 아내는 어이가 없다는 듯 나를 노려본다. 그 시선조차 내 눈엔 들어오지 않았다.


그리고는 비자 인터뷰 시간. 마침내 우리의 순서가 되고 비자 인터뷰를 위해 영사 앞에 섰다. 무슨 질문을 할까? 어떻게 대답하면 되지? 영어 오랫동안 안 썼는데 잘 대답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으로 서서 질문을 기다리는데…


끝났다. 나에게는 질문이 없었다. 서류도 보지 않았다. 아내가 주. 신. 청. 자. 아내의 학교와 학과, 그리고 공부 일정, 장학금과 관련한 질문 몇 개가 다였다. 그렇지. 난 그저 동반인으로 가는 거니까. 앞선 그 모든 긴장이 무안해지는 순간이었다.


비자 신청이 허락됐다는 말과 함께 끝난 인터뷰. 서류를 주섬주섬 챙기고 1층으로 내려와 맡겼던 소지품을 받아 대사관을 나오고 나서야 마치 얼음땡 된 것처럼 정신이 서서히 돌아왔다. 사실 얼마나 정신이 나가 있었는지, 위에서 말한 아내의 손 스냅 사건은 아내가 이야기해 줘서 기억이 났을 정도였다. 사실, 그렇게 염려하거나 걱정할 일도 아닌데, 괜히 혼자 이상한 사례를 많이 알아서 지레짐작 걱정이 많았다.


다행히 비자는 무사히 발급받았다. 거짓말같이 다음날 아침에 택배로 집에 도착했다. 비자를 받아보고 나서야 진짜로 미국에 간다는 것이 실감 났다. 아니, 사실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머릿속에서는 ‘아직도 장애물이 많아. 비행기 탑승도 있고, 입국 심사도 있고…’ 얘야, 그 정도만 하자.


Photo by Chris Kursikowski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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