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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국 방구석 주부 Aug 19. 2022

미국 운전면허 교환기2: 지옥과 천당

D+17(2) (aug. 18th 2022)

난 오른쪽 눈이 매우 안 좋다. 정확한 사유는 알지 못한다. 스무 살 이후로 계속 나빠졌고, 나중엔 교정이 거의 불가능해졌다. 안경을 끼면 선명해지는 부분은 있지만, 상이 갈라져 보여서 글씨 판독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주안이 왼쪽 눈인 데다가, 교정시력이 거의 1.0까지 나와서 생활하는 데에는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 애니메이션을 하는 피디 입장에서 그저 스테레오 스코핑 필름(3D 안경 끼고 보는 입체 영상)은 못 만들겠다며 웃고 넘어갔던 정도랄까?


그런데 교통국에서의 시력 검사 장비는 이런 양쪽 눈의 짝짝이 시력을 잡아내는 장비였나 보다. 왼쪽 눈으로는 도저히 가운데에 있는 숫자가 보이지 않았다. 오른쪽 눈으로 봐야 하는 숫자들이었지만, 내 오른 눈은 그 숫자들을 보지 못한다.


직원은 내게 안과에 가서 검사를 받고 리포트를 작성해 와서 제출해 달란다. 검사받고 오면 시력 검사는 면제된단다. 그럼 뭐하나? 시력은 나쁘고 정밀하게 검사할수록 내 시력은 더 적나라하게 드러날 텐데. 안과 의사가 운전 못한다고 하면 어쩌지? 우리 가족의 모든 미국 생활 계획의 근본은 내가 운전을 하는 것에 기반하고 있는데... 내가 이렇게 쓸모없는 인간이었나? 생각의 꼬리가 꼬리를 물며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내가 패닉 상태가 되어 집으로 돌아오자, 이번엔 아내가 천하무적 모드로 변화한다. 근처의 안과나 안경점은 모두 전화해서 교통국 안과 검사하는 곳을 찾고 삽시간에 예약까지 마쳤다. 난 얼음이 되어 버렸지만, 그제야 아내의 저력이 빛을 발하는 것이다.


오전에 바로 예약한 안경점/안과를 찾았다. (그렇다. 이 모든 일이 고작 아침 아홉 시가 되기 전에 발생했다) 서류 작성을 하고 검사를 기다렸다. 나에게 안과 보험이 없는 것에 대해선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평소 같았으면 돈 든다고 엄청 짜증 났을 텐데… 나 때문에 우리 가족계획이 다 무너진단 생각에 긴장돼서 돈 따위는 머릿속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내 차례가 되고 꽤나 정밀한 시력 검사가 이뤄졌다. 일반적인 안과의 시력 검사와 안경점 검사, 건강검진 검사가 복합된, 거의 45분 정도 소요되는 검사였다. 운전면허 시력 검사인만큼 맹점 검사까지 실시했다. 야… 이거 결과가 좋을 수가 없겠는데? 싶었다. 거의 한 시간째가 되어 검사를 마치고 나왔다. 특히 맹점 검사가 두려웠는데, 오른쪽 눈에는 거의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살짝살짝 지나치는 것들이 보여 검사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교통국에서 준 리포트를 의사가 채워줬다. 의사가 적어준 내용만 봐서는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아내가 문제없겠지? 물어보니 의사가 자기는 그저 사실대로 기입하기만 했고 결과는 모른단다. 이런…


검사를 받고 나오니 어느덧 점심시간이 되어 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아이가 좋아하는 떡볶이를 했는데, 난 거의 입에 대지도 못했다. 외부 검사까지 받았는데 운전면허를 못 받으면 어떻게 되나…


도저히 점심이 먹히지 않아 그냥 빨리 교통국에 다시 다녀오기로 했다. 오후에는 더 오래 기다릴 수도 있으니까. 교통국에 도착하자 오전보다 사람이 더 없었다. 특히 면허증 업무 쪽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서류를 들고 앉자마자 내 차례가 되었고 또다시 잔뜩 긴장 모드가 된다.


눈치를 많이 보는 타입이라 내 눈알이 마구 굴러가는 것이 내게도 느껴진다. 오전에 냈던 서류와 더불어 안과 검사 서류까지 함께 제출했다. 이번에는 그래도 아까보다 더 다음 단계로 가서 직원이 각종 정보를 타이핑 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데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주토피아’에 나오는 것처럼 옆 직원과의 수다가 터진다. 동료 강아지 얘기에 남편 얘기 등 온갖 수다를 떨면서 신청이 어프루브 나기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대화하면서도 계속 애꿎은 ctrl키를 계속 눌러댔다. 모두 알다시피 ctrl 키만 눌러서는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데… 아마도 담당자가 어프루브를 내는 걸 기다리는 게 아니가 하는 그저 내 추측이다) 한참을 그러더니, 마침내 사진 찍는 곳으로 가면 된단다. 모두 끝났다고. 끝났구나. 이젠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주섬주섬 서류를 받아 챙기고 급하게 사진 찍는 곳으로 갔다. 미국의 운전면허 사진은 악명이 높은데, 모든 증명사진을 범죄자 머그샷으로 만드는 마법을 부린다. 하지만 여기서는 꽤나 친절해서 사진을 다시 찍을 수 있게도 해주고, 친절하게 사진을 보여주기도 했다. 난 그저 첫 사진이 나쁘지 않아서 그대로 사용하기로 했다. 그리고 2~3분 정도 기다리자, 마침내 인터림 면허를 주면서 새 면허는 우편으로 날아오니 우편을 잘 체크하라고 당부한다. 그러면서 ‘웰컴 투 더 유나이티드 스테이츠’ 한다.


그렇게 또 정착의 변곡점이 지났다. 운전면허가 생기면 여권을 들고 다닐 필요도 없고, 생활도 훨씬 편리해진다. 내일은 에이전트와 함께 차를 보러 다니기로 했다. 만약 내일 차까지 사고 나면 불과 두 주 만에 큼지막한 정착 활동은 마친다. 물론 내일은 엄청 바쁜 하루가 될 거다. 아이 영어 테스트가 있고 결과에 따라가게 되는 초등학교도 달라진다. 월요일부터 개학이기 때문에 준비할 것도 많다. 그래도 월요일에 아이 학교 가고 아내가 학과 오리엔테이션 가면, 그제야 한숨 돌릴 수 있을 것 같다. 그때까지 또 열심히 달려야겠지?


Photo by David Travis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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