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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중년수험생 jcobwhy Aug 30. 2022

재택 GRE/토플 시험기, 나 말고 내 아내

와이프 따라 미국 간 남편 10 - 난 시험 보기 싫어요

다음  토요일?’


‘응, 화이트보드 하고 세필 보드마카 만 준비하면 된대.’


‘집에서 시험 보는 거… 괜찮을까?’


‘안 괜찮을게 뭐가 있어? 참 걱정을 사서 하네.’


유학을 내가 가는 게 아니니까, 당연히 토플과 GRE의 일화도 나의 체험담은 아니다.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GRE든 토플이든 절대 다시 시험을 보고 싶지는 않다.


십수 년 전, (나의 유학생 시절은 몽땅 다 십수 년 전이구나) ETS에서 보는 모든 시험들이 컴퓨터로 보는 시험으로 바뀌기는 했지만, 그래도 시험장에 가서 시험을 봐야 하는 건 다르지 않았다. 나도 어학연수를 하면서 대학원 입시를 할 때 토플을 보려고 근처 시험장을 찾다 실패해 딴 도시까지 가서 시험을 보고 그랬으니까.


하지만 팬데믹이 정말 많은 문화를 바꾸었다. ETS가 전격적으로 재택으로 시험을 볼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내 일이 아니기도 하고, 시간도 조금 지난 터라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다수의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시험을 치르는 것은 팬데믹 시대에 방역과 보건에 큰 부담을 주는 것이고, 그렇기에 ETS에서 전격적으로 집에서 시험을 볼 수 있게 했다. 가능한 일인가 싶었지만, 경험해 보니 충분히 가능할뿐더러, 오히려 훨씬 더 까다롭고 긴장되는 절차가 진행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여하 간에 아내는 시골에 살아서 시험을 볼 수 있는 장소도 많이 없다면서 불평에 불평을 하다가, 재택 시험을 볼 수 있다는 사실에 쾌재를 부르며 덜컥 GRE부터 시험을 신청했다.


여기서 아내는 나와는 다른 선택을 두 개 했다. 하나는 토플이 아닌 GRE를 먼저 시험 신청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토플은 그냥 영어 시험이고, GRE는 어려운 단어 시험에 수학까지 봐야 하는 터라, 일단 토플을 먼저 보고 그다음에 GRE를 보기 마련인데, 아내는 어려운 것을 먼저 해치우겠다며 GRE를 먼저 신청했다. 아내 입장에선 GRE든 토플이든 대학원 입학 자격시험이니, 자격만 되면 된다, 그런 입장이었던 것 같다. 다들 그렇다고 알고는 있어도, 그래도 높은 성적을 거두어야 좋은 학교에 들어갈 수 있다고 믿기에 끝까지 공부하기 마련인데, 아내는 그런 게 없었다.


다른 하나는 재택 시험을 신청했다는 것이다. 재택 시험을 허용하기는 했지만, 시험장 시험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고, 어떤 변수가 있는지 알 수 없는 재택 시험을 보는 것보다는 익숙한 환경인 시험장 시험을 선호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내는 집이 편하다며 재택 시험을 선택한 것이다. 참 나와는 다른 사람이다, 이런 생각이 든다.


그렇게 GRE 재택 시험 날이 되었고, 나와 아이는 아내의 시험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둘이서만 같이 이케아를 방문했다. 둘이 다니면서 가구도 구경하고, 인테리어 소품도 구매하고, 또 아이가 좋아하는 이케아 핫도그와 밀크셰이크도 먹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면서도 아내가 시험을 잘 보고 있는지 너무 궁금했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무소식이 희소식’이다.


그런데 사실 언제 끝나는지 알 수가 없어서,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을 조율하기가 참 어려웠다. 늘 그렇듯 아이는 금세 지겨워했고 집에 가서 엄마를 보고 싶어 했다. 엄청 놀아줬구먼 섭섭하게…


어쩔 수 없이 집 쪽으로 향했다. 시험을 시작한 지 거의 네 시간이 넘어갈 즈음이었다. 도대체 언제 끝나려나, 하는 그때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끝났어? 잘 봤어?’


‘… 취소당한 것 같아.’


응? 그게 무슨 말이야? 취소당하다니?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어렵게 어렵게 과목 시험들을 이어가며 시험을 본 아내는 마침내 시험의 막바지에 이르렀고, 다행히 모든 과목의 시험을 잘 마쳤다. 그리고는 감독관이 시험은 모두 끝났다면서 잠시 기다리라고 하는데, 그때 잠깐 시간이 얼마나 됐는지 궁금해 휴대폰 화면을 켜서 봤다고 한다. 이와 동시에,


‘너 방금 휴대폰 봤지? 그거 보면 안 됐어. 오늘 시험 성적은 취소야. 다음에 다시 응시하도록 해.’


‘응? 네가 시험 끝났다며?라고 항변하고 싶었으나 감독관의 말이 끝나자마자 화면이 닫혀버리고 말았단다.  럴수 럴수 이럴 수가 있나? 결국 아내는 본인이 GRE 점수가 몇 점 인지도 모른 채 그 시험을 마칠 수밖에 없었다.


국내에선 당시에 재택 시험을 보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 몰랐는데, 외국 사례를 보니 집에서 보는 만큼 부정행위의 범위를 확 넓혀버리고, 대신 페널티를 없애버려 완전히 의심의 여지가 없을 때에만 성적을 인정해 준다고 한다. 아내는 시험 전까지 그런 분위기를 모른 채 습관적으로 우리가 많이 하는 행동을 했을 뿐이었던 거다. (요샌 정말 거의 모든 사람이 휴대폰으로 시계를 보니까)


다행히 다음 시험은 이 일을 반면교사 삼아 어떠한 문제도 일으키지 않고 무사히 시험을 마쳤다.


내가 직접 본 것은 아니지만, 재택 시험이라는 게 여러모로 좋은 시도인 것 같았다. 특히 우리나라에선 지방 사는 사람들에겐 시험의 기회를 찾기가 쉽지 않은데, 인스트럭션만 잘 따라서 한다면 시간과 돈을 많이 아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옛날엔 진짜 토플 보러 일본 가고 그랬으니까)


그렇게 고생해 시험까지 치르는 걸 보니, 정말 하나씩 준비가 되어가는 것 같다. 아직까지는 그저 ‘정말 갈 수 있을까?’ 싶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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