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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중년수험생 jcobwhy Sep 13. 2022

나도 슬슬 준비를 시작한다

와이프 따라 미국 간 남편 12 - 나도 같이 가니까

날씨가 선선해질 무렵 아내의 본격적인 대학원 입시가 시작되었고, 다양한 지역과 학교가 언급되기 시작했다. 아내가 지원할 학교와 지역은 세네 군데로 좁혀졌고, 학교 지원이 시작되었다. 아내는 머리를 감싸 쥐고 지원서류들을 정리해 검토에 들어가는 등 학교 지원 준비 과정에 돌입했다.


물론 대학원 진학은 아내가 하겠지만, 나도 준비할 것들이 제법 있었다. 물론 이주 준비, 이사 준비도 해야겠지만, 한국의 생활을 정리할 다양한 준비도 병행해야 했다. 유형의 준비 외에도 여러 무형의 준비도 해야 했는데, 그중에 하나가 짧지 않은 기간을 다닌 회사 생활을 어떻게 마무리하고 퇴사를 할지에 대한 고민이었다.


꽤나 인정받으면서 이 회사를 다녀왔다. 좋은 기회로 입사해서, 힘들었지만 열심히 일했고, 나름 성과도 냈다. 조금만 더 독하게 하면 더 큰 열매도 얻을 수 있어 보였다. 선배들도 인정해 주었고, (내 생각뿐이지만) 후배들도 꽤 잘 따랐다.


하지만 아내를 따라 미국에 가면? 이 모든 것들은 포기해야 한다. 한국 최고의 애니메이션 회사에 다니며 국내 유명 작품을 총괄한다는 자부심도 여기까지가 될 것이다. 여기서 커리어를 잠시 멈춘다면, 다시 기회를 잡기는 무척 어려울 것이다. 1~2년 만에 현업에 복귀할 수 있는 환경도 아니다. (박사 과정은 진짜 오래 걸린다)


걱정이 되기는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대다수의 경단녀들이 겪는 고민들이기도 하다. 아내도 수년 전 나 때문에 경력 단절을 경험해야 했던 시절이 있다. 남자들에겐 우리나라 사회환경상 그런 고민의 순간이 잘 오지 않을 뿐이다. 만약 아내가 미국 대학원에 박사과정이 된다면? 우리 가족에게 이보다 더 큰 경사가 또 있겠는가? 내 직장 때문에 그 기회를 포기할 순 없는 노릇이다. 그래. 당연히 정리하는 거다.


아내가 대학원 입시를 준비하면서, 나는 회사 일에서 알게 모르게 열정과 힘을 조금씩 빼 가면서 일하기 시작했다. 지나친 경쟁심도 조금씩 줄여갔다. 기회만 있으면 내 능력을 뽐낼 기회를 차지하기 위해 애썼는데, 후배들을 위해 자리를 내주었다. 조금씩 업무를 하는 방식이 여유로워졌다.


스토리 회의나 디자인 회의에서 내 주장을 관철시키려는 태도도 사라졌다. 애니메이션 프로젝트의 성격상 제작기간은 길기 때문에 내가 이 프로젝트를 완성시킬 가능성은 거의 없다. 내가 끝까지 책임도 못 지는데 어떻게 내 의견만 고집하겠나?


웃기는 건 내가 이런 태도로 일하자, 오히려 주변 동료로부터 평가가 더 좋아진다는 것이다. 쓸데없는 알력이 사라지고, 고집불통도 사라지니 오히려 일하기 좋은 사람이 되어 가는 것이다. (물론 내 생각이지만, 실제로 이런 피드백을 받기도 했다. 진짜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회사와, 동료들과, 프로젝트와 헤어질 준비를 하는 과정이었다. 다만 한 가지 목표는 이루고 퇴사하기로 다짐했다. 바로 그때 하고 있던 프로젝트의 일정 부분은 완성하고 퇴사하는 것이었다. 이런 목표를 정한 이유는 두 가지가 있었는데, 하나는 회사나 팀에 짐을 지우기 싫기 때문이었고, 다른 하나는 이런 목표마저 없으면 월급 루팡이나 하다가 퇴사할 것 같아서였다.


십 년 가깝게 다닌 회사, 그 회사와 헤어질 준비를 하는 것. 그것이 내가 시작했던 첫 미국 갈 준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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