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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국 방구석 주부 Sep 22. 2022

도시락을 잊고 간 딸아이의 점심식사

D+46 (sep 16th 2022)

미국 초등학교에서 점심시간이 되면 아이들이 식당에 모여 점심식사를 한다. 누구는 밥으로 도시락을 싸오기도 하고, 누구는 학교 카페테리아에서 사 먹기도 한다. 우리 딸아이에게는 아침마다 샌드위치 도시락을 만들어주는데, 전의 글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아이가 미국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것처럼 샌드위치 도시락을 싸 가는 것에 대해서 엄청나게 기대를 했던 터라 매우 만족스러운 점심시간을 지내고 있었다.


아이에게 싸 주는 도시락에는 그때그때 다르기는 하지만, 가장 자주 싸주는 도시락은 샌드위치 도시락이다. 토스트 빵 두 개를 토스터에 구워서 딸기잼을 바르고 거기에 샌드위치 햄과 노란 치즈를 올린 아주 기본적인 점심 샌드위치다. 맘 같아서는 양상추나 시금치를 추가로 넣어서 야채도 좀 먹게 하고 싶지만, 그러면 아예 도시락을 먹지 않을 것 같아서 포기했다. 일단은 기본적인 칼로리부터 채우자는 생각이다.


가끔 싸주는 특별식으로는 아빠표 햄버거, 핫도그, 프렌치토스트 같은 것들이 있다. 햄버거 같은 경우는 소고기 패티를 불에 구워야 하기 때문에 아침부터 집안에 온통 고기 냄새가 배게 할 수는 없어 자주 해주는 편은 아니고, 핫도그는 생각보다 아이가 좋아하지 않아서 몇 번 해주다 말았다. 은근 자주 해 주는 것이 프렌치토스트인데, 계란이 많이 들어가서 아이 영양 섭취에 좋기도 하고, 아이도 만족스러워하며 먹는 편이라 자주 해주는 편이다. 물론 아침부터 토스트 빵에 계란 옷을 입혀서 프라이팬에 구워 주는 것이 제법 귀찮기는 하지만, 뭐 어떤가? 난 전업 주부인데.


아이가 점심시간 이야기를 하면서 식사를 사 먹는 친구들 이야기를 몇 번 한 적이 있었다. 친구들 음식이 맛있어 보인다거나 사 먹는 것이 부럽다는 이야기는 한 번도 한 적이 없어서, 사 먹는 음식들이 마음에 들지 않나 보다 생각했다. 그리고 가끔 카페테리아에 나오는 아이스크림이나 스낵 같은 경우는 사 먹는 경우가 종종 있기도 했다. 오히려 간식을 너무 자주 사 먹어서 스낵 같은 안 좋은 음식에 너무 자주 노출되지 않도록 스낵이나 아이스크림은 일주일에 두 번만 사 먹으라고 일러두었다.


일주일의 끝 무리인 금요일 정도가 되면 아침에 새벽같이 일어나 도시락을 싸는 것이 여간 귀찮은 것이 아니다. 내 어린 시절처럼 밥 싸고 국 싸고 반찬 싸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귀찮다. 전엔 안 하던 거니까. 밥을 사 먹고 싶어 하면 못 이기는 척 사 먹으라고 해줄 텐데, 그런 티는 전혀 내지 않는다. 오늘도 아이의 도시락 샌드위치를 싸서 도시락 가방에 스낵 백과 함께 넣어 준비해 준다.


여덟 시  이십오 분이 되면 학교 버스를 타기 위해 집을 나선다. 학교 버스는 아파트 오피스 앞에 서는데, 오피스까지는 제법 차들이 쌩쌩 다니는 도로 하나를 건너야 한다. 아파트 단지를 가로지르는 이차선 도로가 있는 것이 특이하다. 아이패드에 숙제류에 물통까지 가방도 제법 무거운 편인 데다 도시락 가방까지 들고 학교에 가니 여간 무거운 것이 아니다. 손도 여유가 없고 해서 뭐 하나라도 들어줄라 치면 한사코 마다한다. 뭔가 스스로 하는 것에 대한 자립심이 높은 아이다.


그런데 오늘은 웬일인지 나에게 도시락 가방을 순순이 건넨다. 그렇게 잠깐을 기다리다 버스가 오고, 아이는 학교 버스로 후다닥 오른다. 여유 있게 아이에게 손도 흔들면서 좋은 시간 보내라고 인사를 건넨 뒤, 길을 건너 집으로 돌아오는데, 내 손이 어색하다.


뭐지?


왠 조그만 손가방 하나가 들려 있다. 아이의 도시락 가방이다. 순간 정신이 아득해진다. 아이가 밥을 굶으면 안 되는데. 도시락 없다고 울상이 되면 어쩌지? 혹시 창피를 당하거나 하지는 않을까? 온갖 생각이 머리를 맴돈다. 오늘따라 아이가 휴대폰도 들고 가지 않았다. 전화기라도 있다면 카페테리아에서 밥을 사 먹으라고 이야기라도 할 텐데, 하면서 속상해했다.


옛날처럼 한 끼 식사를 하지 못한다고 큰일 나는 세상은 지나간 지 오래다. 오히려 건강을 위해 간헐적 단식을 한다고까지 하지 않는가? 그래도 내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혼자 밥도 못 먹고 있을까 봐 걱정이 많이 된다.


모처럼 학교에 가지 않고 집에 있던 아내도 덩달아 걱정하기 시작했다. 도시락을 재빨리 학교에 가져다줄까 생각도 해 봤지만, 그것도 창피해할 것 같았다. 학교가 제법 시큐리티가 철저한 편이라 불러내지 않으면 만날 수나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내는 어떻게 상황을 대처하는지도 보고 싶다고 했다. 물론 그러면서도 ‘제발 사 먹어라’ 하면서 더 불안해 하기는 했지만.


그렇게 불안감을 지닌 채 오전 시간이 흐르고 점심시간도 넘겼다. 밥은 잘 먹었을지 걱정하던 차에, 아이의 학교 밀 카드 사용액을 확인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재빨리 웹으로 접속해 아이의 밀 카드 사용액을 확인했다.


16일 사용액 - 프리미엄 점심 $0.00 / 치즈스틱 추가 $0.00 / 스낵 백 $0.00


아, 다행이다. 아이가 점심을 학교 카페테리아에서 사 먹었다. 혹시 스낵이나 아이스크림을 일주일에 두 번만 사 먹을 수 있다고 해 두었어서, 밥을 사 먹지 않았을까 봐 걱정했는데, 기우였다. 다행히 아이는 밥을 잘 먹었다. 아내는 문제를 잘 해결하는 아이라 다행이라며 연신 ‘다행이다’를 내뱉는다. 나도 같은 생각이다.


그런데 잠깐. 프리미엄 점심은 뭐야? 메뉴 추가도 했어? 간식도 사 먹고? 처음엔 그냥 단순히 다행이었는데, 아이의 큰 배포에 웃음이 나온다. 나와 아내는 도시락을 가져가지 않은 것에 위축되고 의기소침해지지는 않을지 걱정했는데, 전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하교하는 시간, 학교 버스에서 내린  아이는 오늘 자신의 점심시간 밥 사 먹기 무용담을 늘어놓는다. 내가 손에 든 도시락을 보고 깜짝 놀랐던 그 시각, 아이도 도시락이 아빠에게 있음을 깨달았단다. 아이는 밥 사 먹는 친구와 함께 밥을 사 먹었고, 사 먹는 순서나 방법은 친구가 잘 도와주었단다. 아이는 매우 흥미로운 문제 해결 과제였던 듯, 쉴 새 없이 떠들어댄다.


아이가 벌써 이렇게 컸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문제에 봉착했을 때 우리가 없을 때도 점점 생기겠지. 우리 입장에서는 전화조차 할 수 없다는 사실이 큰 불안감을 주었는데, 아이는 부모를 찾기보다는 문제에 집중해 해결해 내었다. 그렇게 조금씩 크구나. 어른이 되어가는구나.


아직 열 살인데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안돼! 어른 되면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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