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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국 방구석 주부 Sep 15. 2022

미국에서 처음 맞는 아이의 생일

D+42 (sep 12th 2022)

사실은 첫 번째는 아니다. 엄밀히 말하면 세 번째라고 해야 하나? 아이가 태어났을 때, 그리고 첫 번째 생일, (보통 돌이라고 하지) 그리고 이번이 세 번째다. 아이의 열 번째 생일. 하지만 다시 미국에 와서 맞는 첫 번째 생일인 건 맞으니까.


아이가 가장 행복해했던 생일은 초등학교 1학년 때의 생일이 아닌가 싶다. 그때가 팬데믹 전이기도 했고 초등학교도 처음 들어가서, 아이의 반 친구들을 초대해 생일 파티를 열어주었다. 우리 아이는 안 먹지만, 피자에 치킨에 김밥에 케이크까지 생일파티에는 응당 있어야 할 것들은 모두 구색을 갖추어 차려주었다. 아이는 먹지는 않아도 주인 노릇을 똑똑이 해내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역시 생일은 북적북적한 맛이 있어야 하는데, 애석하게도 아이의 생일이 학년이 시작한 지 불과 3주가 안되어 찾아왔다. 집 꼬락서니도 영 그래서 누굴 초대할 수도 없겠으나, 아이가 아직 절친까지는 없어서 마땅히 집에 데려올 친구가 없기도 하다.


거기에 아이의 이번 생일은 월요일이다 보니 영 흥을 내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마침 학교에 가지 않는 아내와 함께 생일 분위기를 힘껏 내 보기로 했다.


아이가 학교에 가고 없는 사이, 집을 일단 꾸미기로 했다. 풍선과 가랜드 같은 것들을 구매해서 천장에 걸기로 했다. 아이가 워낙 풍선을 좋아하는데, (아, 물론 아이들은 다 풍선을 좋아한다) 내가 워낙 집에서 풍선 튕기며 노는 것을 싫어해서 평소에는 아이가 풍선을 갖고 놀지 못하는데, 오늘은 생일이니 하루만 허용하기로 했다.


아내와 마트에 가서 ‘해피버스데이’가 적힌 은박 헬륨 풍선 하나와, 천장을 꾸밀 고무풍선, 그리고 리본 가랜드를 구매했다. 케이크를 사려고 봤더니 월요일이라 그런지 케이크를 파는 샵이 모두 문을 닫았다! 아무래도 주말에 케이크 판매나 케이터링을 하고 월요일에 쉬는 곳이 많은가 보다. 그런데 집 앞에 아기자기한 컵케이크 집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다행히 월요일에도 오픈한단다. 케이크는 아이와 함께 가서 골라오기로 했다. 입맛이 워낙 까다로운 아이라, 맘에 안 들면 입에도 안 댄다. 오히려 자기가 고르는 게 더 좋아할 것 같았다.


저녁 식사는 뭘 할까? 데리고 가고 싶은 레스토랑 후보지가 몇 군데 있었다. 하나는 이주하자마자 가고 싶어 했던 아웃백, (여기 식전 빵을 너무 좋아한다. 하지만 빵 때문에 아웃백이라니! 가성비 꽝이다) 다른 한 곳은 ‘척 이 치즈’라는 피자집인데, 아이들이 놀 수 있는 공간이 있는 곳이다. 이런데 데려가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약간 모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문득 아이가 생일 때마다 먹고 싶다는 음식이 떠올랐다. 그건 바로 ‘라면 볶음밥’이다. 라면 볶음밥이라니 가성비 ‘갑’이긴 하다. 아내와 상의하다가 그냥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해주기로 했다. 기껏 생각해서 레스토랑에 가도 지가 싫으면 하루가 엉망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 오늘 생일상 메뉴는 라면 볶음밥이다.


간단히 사온 파티용품으로 집을 꾸며주었다. 풍선을 불고 가랜드를 펼쳐 천장에 달았다. 그리고 문 앞에 헬륨 풍선을 두었더니 제법 그럴싸하다. 그리고는 보니 어느덧 아이 버스가 올 시간이 되었다.


아이를 픽업해서 집에도 들르지 않고 바로 컵케이크 가게로 향했다. 아기자기한 조그만 컵케이크 가게였다. 예쁘장한 컵케이크가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었다. 아내와 난 직감했다. 저 케이크들은 모양이 어떻든 맛이 다 똑같다. 달다. 오늘 어지간히 슈가 하이가 되겠구나.


미국 케이크는 정말 달고 맛이 같다. 생크림을 잘 쓰지 않고 대부분 버터크림이나 슈가 크림을 쓴다. 정말 달다. 한국 배이커리에서 먹을 수 있는 담백하고 과일행이 듬뿍인 케이크를 먹기 힘들다. 하지만 아이는 좋단다. 단걸 아이들이 당연 좋아하겠지.


케이크를 사들고 집으로 들어왔다. ‘서프라이즈!‘ 아이는 배시시 웃으면서 좋아한다. 풍선과 가랜드로 꾸며져 있는 모습이 매우 만족스러운 모양이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엄마 아빠가 준비를 안 했을 리가 없어.’


아내는 아이의 그 말에 감동받았다. 그만큼 사랑받아서 사랑에 대한 확신이 있는 거라면서. 뭐 그런 것 같긴 하다.


저녁 식사를 위해 라면 볶음밥을 만들어야 하는데, 우리 집엔 쌀도 밥솥도 없다. 그래서 ‘판다 익스프레스’에서 한 사람분 식사와 쌀밥을 사 오기로 했다. 우리는 그걸 먹고 아이를 위해서는 라면 볶음밥을 만들었다. 자박하게 라면을 끓이고, 사온 쌀밥을 계란에 볶은 뒤에 라면과 섞으면서 볶았다. 이걸 뭔 맛으로 먹나 싶지만, 아이는 매우 만족하면서 먹었다.


생일 선물은 이미 주말에 받았다. 콘솔 게임기를 위한 자동차 핸들 컨트롤러이다. 밥을 먹고 나서는 맘껏 게임을 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온라인 게임 스토어에서 체험판으로 되어 있는 고속도로 운전 게임을 하나 다운로드하여 주었더니, 거의 1시간을 그걸 하면서 놀았다.


실컷 놀았다는 생각이 들 때 즈음, 아이가 뭔가 섭섭해하는 표정을 짓는다. 엄마 아빠랑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고,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을 먹고 게임을 하는 것이 좋기는 해도, 친한 친구들과 신나게 보내는 시간만큼 좋은 게 있을까? 평소와 다르지 않게 그저 가족들하고만 보내는 생일날이 마냥 즐겁지는 않았으리라.


내년에는 더 많은 친구들을 사귀어서, 생일날에 집에 친구들도 초대하고, 파티도 재밌게 열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더 이상 외롭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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