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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국 방구석 주부 Sep 11. 2022

살 떨렸던 미국 초등학교 커리큘럼 나잇

D+38 (sep. 8th 2022)

매주 금요일이 되면 미국 초등학교 담임과 교장으로부터 뉴스레터가 이메일로 날아온다. 담임으로부터 오는 뉴스레터에는 다음 주 교과목의 수업 계획표와 진도, 그리고 테스트 일정과 같은 학업계획서가 포함되어 있다. 또 다음 주에 있을 중요 학교 행사들도 알려준다. 지난 금요일엔 목요일에 있을 ‘커리큘럼 나잇’을 잊지 말라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뭐지? 그 말로만 듣던 PTA인가?’


PTA는 선생님과 학부모들이 만나는 미팅 같은 걸로, 가끔 미드나 영화에 나오는 걸 본 적이 있었다. 그걸 보면서 ‘저런 관계를 맺는 게 정말 어렵겠다’ 생각을 많이 했었는데, 마침내 그런 시간이 온 것 같아 바짝 긴장했다. (참고로 요즘은 PFA라고 하나보다. Parent-faculty association)


아주아주 무책임하게(?) 아내를 보낼까도 생각했다. 그러다가 이내 마음을 바꿔 먹었다. 어차피 아이 돌보고, 학교 숙제, 준비물 챙기는 건 내가 다 해야 하는데, 만약 내가 가지 않으면 정보가 부족해서 잘 챙길 수가 없지 않은가? 당당하게 가서 학부모들과도 인사도 하고, 관계도 맺고 해서 우리 아이의 학교 적응을 도우리라 마음먹었다.


하지만 떨리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영어도 잘 못하는데 잘 소통할 수 있을까? 이번에 느낀 것은 사람들과 대화할 때 랜덤 토킹이 정말 어렵다는 점이다. 대학원 시절 전공 관련해서 영어로 대화하거나, 직장에서 업무 관련해 영어로 대화하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디. 그래서 사실 영어 실력에 대해 스스로 과대하게 자신감에 차 있을 때가 있는데, 그냥 일반 대화를 하다 보면 급 움츠러든다. 대화의 흐름을 예측하게 어렵다 보니, 쓰이는 단어나 내용의 흐름을 캐치하기가 어렵고, 특정 주제에 대해 내가 프로세스 하는 시간도 배로 달다 보니 내 의견을 잘 이야기하기도 어렵다.


그래도 아이의 적응을 돕기 위해서라면 적극적으로 나서야지! 하며 호기롭게 저녁 이른 시간에 학교로 향했다. 학교 주차장엔 수많은 차들이 벌써 주차되어 있었다. 어쿠, 늦었구나.


학교의 안내대로 우리 아이 반의 학부모들이 모여있는 도서관으로 황급히 향했다. 그곳에선 아이의 담임 선생님과 그 옆반 담임 선생님이 설명회를 진행하고 계셨다.


‘아, 커리큘럼 나잇이라더니, 교과 설명회 같은 거구나.’


빙 둘러앉아 스몰 톡을 하면서 선생님과도 학부모와도 많은 이야기를 하는 모임일 거라 생각했는데, 다행히 그런 모임은 아니었다. 두 선생님이 학교 생활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 그리고 교과목 공부 내용, 숙제, 성적 기준 등에 대한 소개를 하는 자리였다. 아~ 다행이다. 어색하게 대화하고 소개하고 그런 자리는 아니구나.


학교의 전반적인 운영 방향과 시스템, 그리고 학부모들이 학교에 연락하는 방법 등의 일반 학교 생활에 대한 설명을 해 주신다. 학부모에게 선생님 전화번호는 공개되지 않고, 이메일만 알려 준다. 지난번 글에서 언급했듯 선생님의 메일 응답 속도는 매우 빠르다. 놀라울 정도로. 다만 하교 30분 전인 세 시 이후에 온 메일에 대해서는 즉각적인 조치가 어렵기 때문에 학교 오피스를 통해 연락해 달라는 요청도 있었다. 또 상담 선생님과, 교감 선생님께 연락할 수 있는 방법도 알려주었다. 학교에 아이들이 휴대폰을 가지고 다니는 것이 교칙에 위배되기 때문에 아이들과 연락하는 것이 한국에서처럼 쉽지는 않았는데, 이를 보완하는 연락 방법으로 보였다.


이어서 교과목에 대한 안내가 이어졌다. 우리 아이가 다니고 있는 4학년의 두 반 선생님이 짝을 지어 교과목을 나누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시스템이었다. 아이의 담임 선생님은 영어 과목 선생님, (영어를 단어와 읽기, 쓰기, 문법 과목으로 나뉜다) 그리고 옆 반 선생님은 수학과, 과학, 사회(social study)를 가르치셨다.


영어는 마치 우리가 초등학생(국민학생?) 때의 국어 교과목과 비슷한 구성을 갖춘 것 같았다. 읽기, 쓰기, 말하기, 듣기, 이렇게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비슷한 구성이다. 4학년은 미국 학생들에게 영어 교과목이 어려워지는 시기라고 하는데, 우리 아이는 단어, 읽기 시간은 ESL 수업에 가기 때문에 담임 선생님의 수업을 듣지는 않는다. 과목 설명을 듣는데 많이 어려워 보여서 걱정이 됐는데, 다행히 그 부분은 지금 당장의 문제는 아니라 안심됐다. ‘나중에 따라잡기 어려우면 어쩌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더 늦게 오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인가 하면서 넘겼다.


수학의 진도는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수학은 두 가지가 크게 걱정됐는데, 하나는 이미 알고 있는 교과 내용을 영어로 하기 때문에 아이 입장에서 이해하기 힘들다는 점이었다. 또 다른 하나는 숫자를 4 단위로 나누어 읽는 한국과 달리 미국에서(혹은 서양에서)는 숫자를 3 단위로 끓어 읽는다는 점이었다. 수학 문제에 대해 걱정이 확 되기도 하고, 영어 문제와 겹쳐서 잘 따라갈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기도 하였다. 그런데도 나름 숙제도 잘해가고(혹은 잘하는 줄 알고) 해서 아이가 엄청 대견했다.


과학은 자세한 설명이 없어서 넘어가고, 사회는 좀 헉한 게 있었다. 이번 학기 지리를 배운다는데, 학습 목표는 아이들이 미국의 50개 주 이름과 스펠링을 외우는 것이란다! 뭣이? 주도(주의 수도)는 안 외워도 된단다. (대단한 어드밴티지인 것처럼 말했다!) 이걸 아이가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아이들에게 학습 자료나 스케줄은 모두 온라인으로 제공되었다. 유인물도 웹에서 쉽게 찾을 수 있도록 설계된 점은 매우 흥미로웠다. 미국의 공교육은 수준이 떨어지는 것처럼 우리나라 사람들이 알고 있는데, 지난 몇 년 팬데믹으로 셧다운 되었을 때, 교육 자료 공유나 전체적인 학교 플랫폼, 시스템이 많이 개선되었다고 한다. 학생들 뿐만 아니라, 학부모들도 아이의 학습 진도를 트래킹 할 수 있었다. 한국처럼 선생님 별로 개별적으로 일반 플랫폼을 활용해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구 단위로 플랫폼을 구성해 잘 관리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전반적으로 학부모들에게 교과목 학습 진도와 내용을 설명해 주는 시간은 매우 유익했다. 특히 우리처럼 커리큘럼이 완전히 다른 나라에서 이주해 온 학부모나 학생들에게는 유익한 시간이었다.


흥미로웠던 점은 학부모 중에 30% 이상 아빠(남자)가 왔다는 점이다. 물론 미국은 싱글 대디도 싱글 맘도 많고, 부모가 아닌 가디언이 아이를 키우는 경우, 게이 커플이 입양해서 아이를 키우는 경우까지 있어서 한국과 비교를 직접 하기는 어렵지만, 남자 보호자가 아이의 설명회에 참석한 것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학교에 처음 왔고, 선생님도 처음 뵈었기에 용기를 내어 선생님께 인사를 드렸다. 나처럼 몇몇 부모들이 궁금한 점을 묻거나, 건의사항을 전달하려 선생님을 찾았다. 방과 후 프로그램이나, 교과목, 숙제에 대한 질문을 하는 학부모에 이어 선생님을 만났다.


‘안녕, 나 ㅇㅇ 아빠야. 반가워.’


‘오~ 안녕~ ㅇㅇ 아빠구나, 여기 온 지 얼마 안 됐다며?’


‘응, 우리 온 지 이제 한 달 반 됐어. 우리 아이 잘하고 있어?’


‘그럼! ㅇㅇ 얼마나 잘하고 있는지 몰라. 워낙 수. 다. 스럽고 활달해서 참여도 정말 잘해.’


수다스럽다고?


‘그렇구나. 다행이다! 혹시 낯선 환경에 위축돼 있을까 봐 걱정했거든.’


‘걱정 마, 수학 선생님도 그러는데 정말 잘하고 있대.’
 

아이 숙제에 대한 질문, ESL에 대한 질문 몇 개를 더 하고 궁금하면 언제든 이메일 보내겠다고 한 뒤 간단한 대화를 마쳤다. 수다스럽다고 하니, 정말 다행이다. 슈퍼 울트라 ‘E’인 우리 아이가 자기 성격대로 잘 생활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안심이 되었다.


이번에 미국에 오면서 아이가 학교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내가 적극적으로 아이 학교 일에 참여하겠다고 다짐을 했었는데, 오늘 설명회 참석도 그 일환이었다. 학기가 조금씩 진행되면서 행사도 보이고 하는데, 조금씩 참석해 보려고 한다.


그러면 글에 쓸 내용도 많아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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