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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국 방구석 주부 Sep 13. 2022

미국의 쇼핑 정글이 우리를 열받게 하다

D+40 (sep 10th 2022)

내가 처음 미국에 왔던 2008년에도 한국에선 온라인 쇼핑이 굉장히 일반화되어 있었다. 물론 그 환경은 지금과는 큰 차이가 있지만, 특히 패션이나 생활용품 등의 온라인 구매가 굉장히 활발했다. 나는 그 당시에 다음 쇼핑을 많이 활용해서 옷을 사곤 했었는데, 다음, 지마켓, 옥션 같은 대형 오픈 마켓도 많이 활용되지만, 개별 쇼핑몰들도 굉장히 활발하게 사용하는 추세였다.


처음 미국에 왔을 때는 미국은 온라인 쇼핑이 활성화되기 이전이었다. 물론 그때도 이베이, 아마존이 있었지만, 이베이는 주로 중고 제품 거래 옥션 같은 느낌으로 활용했고, 아마존은 온라인 책방이었다. 뭐, 넷플릭스에서 DVD를 빌려보던 시절이니 말 다했다. 물론 한국과 같은 온라인 구매가 가능하기는 했어도, 워낙 큰 땅덩어리에 배송 시스템이 복잡해서 제때 물건을 받기란 불가능했다. (1~2주는 기본이었다) 미국을 떠나기 직전인 2013년 즈음에는 아마존 프라임도 하고, 배송도 엄청 빨랐지만, 프라임 가입자에게 제공하던 빠른 배송이 이틀 후 배송일 정도니까, 정말 한국 환경과는 많이 달랐다.


한국에 돌아와서 사는 8~9년 동안, 한국의 온라인 쇼핑과 구매에 완전히 익숙해졌다. 생필품, 전자제품과 같은 공산품뿐만 아니라, 신선식품, 냉동식품과 같은 식료품 구매도 정말 자유롭다. 누구는 뭘 쏴서 배송한다고 하고, 누구는 스으윽 배송한다고도 하고, 다음날 배송, 시간 정해서 배송, 새벽에 배송 등 수많은 경쟁 업체들이 소비자의 생활을 편리하게 해 주는 배송 시스템을 갖췄다. (물론 이로 인해 소비자들은 엄청 편해졌지만, 일부 노동자들은 고통을 짊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잊지 말자)


거기에 음식을 배달해 먹는 것까지 생각해 보면 진짜 꿈쩍도 하지 않으면서도 모든 것을 우리 집에 오게 할 수 있었다. 이러한 편리함에 완전히 적응했던 나와 아내는 혹시 미국에 다시 오게 되면 다시 아날로그적인 생필품 구매에 적응하지 못할까 봐 걱정이 될 정도였다.


일정 부분은 기우였다. 한국에서 적용하고 있는 수많은 온라인 쇼핑과 유통의 시스템이 기본적으로는 모두 미국의 유명 스타트업에서 성공한 서비스와 시스템을 기반으로 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서비스가 워낙 독보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기본적인 시스템과 서비스는 아마존이나 수많은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의 그것과 완전히 같다. 크게 다르지 않은 사용자 경험을 미국에서도 경험할 수 있다.


거기에 지난 몇 년간의 팬데믹으로 인해 미국인들의 온라인 서비스 사용 양식이나 인식도 크게 달라져 한국인의 그것과 굉장히 유사해졌다.

다만 몇 가지 환경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 있는데, 하나는 어떤 경우에도 하루 만에 배송이 될 수는 없다는 점이고, 최종 배송 완료 방법에 조금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아마존도 미국 전역에 물류 센터를 보유하고 있고, 거점 물류 센터를 통해 물건을 대부분 배송하지만, 아무래도 인구밀도가 한국보다는 낮기 때문에 많은 종류의 제품이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이 먼 곳에서 배송 출발하는 경우가 많다. 어떨 때는 서부 끝 시애틀에서 물건이 출발하기도 하고, 어떨 때는 저쪽 남부 플로리다에서 출발하기도 한다. 그런 상황에서 다음날 물건이 오기를 기대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그럼에도 이틀 만에 물건이 도착하는데, 이건 정말 대단한 거긴 하다.


또 한 가지는 우리 집에 물건이 배달될 때 한국처럼 문 앞에 놔두는 배송은 드물다는 점이다. 물론 집의 형태에 따라서 배송하는 방법이 다양하겠지만, 미국은 주택에 사는 사람들도 많고, 아파트에 산다고 하더라도 한국의 아파트와는 그 형태가 차이가 있다. 그러다 보니 안전한 배송 완료를 위해 아마존에서 특별한 투자를 했다. 바로 아마존 허브라는 배송 시스템인데, 주택 근처나 아파트 관리 사무소 주변에 전자 라커룸을 설치하고 배송 완료 시 받은 코드를 입력해 자기 물건을 받는 시스템이다. 개인 프라이버시와 안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미국인의 특성에 맞는 시스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최근 바로 이 아마존 허브에서 문제가 생겼다. 우리가 주문한 물건에 대해서만 계정으로 비밀번호 코드가 오지 않는 것이다. 처음에는 주말 배송 기사의 실수인가 싶었는데, 주중에도 여러 번 반복돼서 코드가 오지 않자 뭔가 잘못된 것임을 직감했다.


라커 코드를 받지 못하면 아마존 고객 센터에 전화해서 코드를 받아 적어야 하는데, 이 고객센터에 전화하는 것이 외국인에게는 엄청난 도전이다. 일단 전화를 통해 영어로 소통하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 대면한 상태에서 대화를 하게 되면 입 모양도 볼 수 있고 표정도 읽을 수 있어 대화가 용이한 부분이 있는데, 전화를 통해서는 이런 부분이 다 차단된다. 거기에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말들은 잘 안 들리기도 한다. 한 가지 장애물이 더 있는데, 그건 대부분의 고객센터 직원들의 발음이 통상적인 미국인 발음이 아닌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주로 인도인의 발음인 경우가 많고, 영어 공부를 하면서 표준 발음만 들었던 사람들이라면 적응이 정말 어렵다.


한 세네 번까지는 그냥 전화해서 코드를 받아 물건을 수령했는데, 매번 그러니까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도대체 왜 배송이 되지 않는 걸까? 아내의 아마존 계정이 영어 이름으로 되어 있고, 거주자와 이름이 달라서 배송 코드가 오지 않는 건가 싶었다. 거기에 이번엔 아이의 생일 선물을 주문한 거라서 꼭 제때 받았으면 하는 마음이 있어, 고객센터에 전화해서 코드가 전달되지 않는 이유를 물었다.


‘코드가 오지 않는 이유가 뭐야?’


‘해당 아파트 허브에 네 이름이 저장되어 있지 않아서 그런 거야.’


‘그럼 처음에 코드가 잘 왔던 이유는 뭐야?’


‘글쎄, 잘 모르겠지만, 아파트 관리자에게 이름을 넣어 달라고 해.’


아, 그 아마존 허브를 아파트와 아마존이 공동 관리하는구나. 아파트 입주자들의 이름을 저장해서 입주자들만 허브를 활용할 수 있게 제한하고 있는 것이었다.


역시 개인의 안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고방식다웠다. 시스템적으로 상품을 안전하게 고객에게 전달하기 위한 업체의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또 한편으로는 안전과 관련해 고객에게 선택권을 가지도록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어떤 사람은 집 문 앞에 배송했으면 해서 그렇게 배송 상태를 설정하고, 어떤 사람은 무조건 허브에 넣도록 설정하기도 한다. 이것이 한국과 미국의 가장 큰 사고방식의 차이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한국에서는 나만 다른 방식으로 배송해 달라고 요구하면, 역으로 핀잔을 듣기도 한다.


어쨌든 다행히도 원인을 알았다. 그래서 다음부터는 코드를 받을 수 있도록 조치했다. 아이의 새일 선물도 무사히 배송받았다.


팬데믹이 미국의 쇼핑 방식을 많이 바꿔준 덕분에(?) 한국에서의 일부 습관들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이의 갑작스러운 준비물이나, 아내를 위한 급 선물이 필요할 때, 롸켓으로 쏴주는 배송이 그리울 것 같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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