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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부장 Feb 01. 2021

늘부장의 직장 일기

해외주재원 삶. 득과 실


2004년 2월 22일.

OO전자 인도네시아 공장 구매/자재 주재원으로 발령 난 날이다.

94년 입사하면서부터 줄곧 해외 주재원을 꿈꾸어 왔다. 어릴 때부터 유럽에 대한 동경이 많았기에 특히 이탈리아 주재원으로 발령 나길 무척 기대했다. 그러나 세상일이 본인 뜻대로100% 되지 않는 법.

유럽 주재원 대신 동남아에 위치한 인도네시아로 발령을 받았다.

처음 주재원 추천을 받았을 때 많은 고민을 했다. 특히 동남아 주재원으로 발령 나는 경우 잦은 술자리로 인해 술에 어느 정도 몸이 술에 대한 내성을 가지고 있어야만 제대로 주재원 생활을 할 수 있다 라 는 얘길 주위로부터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몇 번의 망설임과 몇 차례 가족회의 끝에 마침내 주재원으로 나가기로 결정을 했다.

주재원의 삶은 그 동안 살아 왔던 삶의 형태와 무척이나 다르다. 몇 가지 열거를 하자면

첫째는 언어이다. 한국에서 30년 이상을 살다가 다른 나라로 가게 되면 가장 먼저 직면하는 어려움이다.

물론 주재원으로 나가는 경우 기본적으로 그 나라의 언어를 학습하는 시간이 몇개월 주어진다. 그렇지만 정확한 의사소통이 가능하기까지에는 거의 1년의 기간이 필요하다.

둘째는 환경이다. 예를 들면 국내에서 대구에서 서울로 이사를 가더라도 낯선 환경으로 인해 적응 기간이

필요한데 한국과 거의 4000km 떨어진 먼 이국땅에서의 적응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인도네시아 경우 일년내내 한국의 여름과 같은 날씨가 유지 되고 특히 8,9월은 40도까지 올라가는 날씨로 인해 더위에 약한 사람은 적응이 만만치 않다.

주재원으로 정식 발령 나기 1년전 인 2003년 3월. 1년간의 장기 파견 명령을 받아 인도네시아 생활을 시작 했다. 아내와 애들은 1년 뒤 2004년 3월에 입국을 했다.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인 아내 경우. 5년 휴직을 했다. 학교규정상 남편이 해외 주재원 발령의 경우 5년간의 휴직이 가능하였다.

우스갯소리로 인도네시아로 주재원 발령을 받았을 때 주재원 아내들은 두번 운다고 한다.

처음 인도네시아에 와서 전혀 다른 언어, 날씨, 사람들에 대해 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향수병까지 앓으면서 이런 나라에서 5년을 보내야 한다는 현실에 서글퍼 운다고 한다.

그러나 5년 뒤 에 는 이렇게 호강스럽게 지내다가 다시 한국에 가서 직장생활, 애들

뒷 바라지,에 살림까지 해야 하는 현실에 운다고 한다.

주재원으로 파견되면 한국근무 시 대비 몇 가지 혜택이 주어진다. 예를 들면 아파트 월세, 차량 및 운전기사가

지원 된다. 그리고 유모 및 식모는 각각 월 3만원,5만원을 주고 고용을 한다.

심지어 자녀가 3명인 주재원인 경우 3명의 유모를 두는 경우도 있다. 그만큼 한국 물가에 비해 저렴하기때문이다.

남편이 출근한 이후 애들은 유모, 집안 청소는 가정부가 알아서 하고 아내는 운전기사가 딸린 차를 이용 여러 가지 문화 생활을 즐기곤 했다. 또한 한국에 있으면 집안의 각종 대소사에 참석을 해야 하나 이국땅에 있다 보니 그런 행사에 참석치 않아도 되고 오직 본인의 생활에만 충실하면 된다.

이런 사유로 인도네시아 주재원 아내들이 인도네시아 들어 올때, 나갈 때 해서 이렇게 두 번 운다는 얘길 하곤 한다.

주재원 근무 시 아파트 월세, 차량 지원도 되지만 가장 큰 혜택은 애들 교육비이다.

한국의 경우 중,고등 자녀들이 어학을 배우기 위해 작게는 월 30만원 많게는 월 100만원까지 사비를 들여 교육을 해야 한다. 그러나 주재원 자녀 경우 기본적으로 영국 혹은 미국계 외국인 학교에 입학을

하게 되고 영어는 기본적으로 별도의 학원 비 들일 필요 없이 자연스럽게 익히게 되고 외국인 학교에지불하는 교육비는 회사에서 100% 지원을 해준다. 인도네시아 경우 외국 계 학비의 경우 월 2000불 환율 1100원 기준으로 하면 원화로 220만이다.

이 비용도 자녀수에 제한두지 않고 100% 지원을 해주고 있다.

주재원 발령 시 직원들이 가장 고려하는 항목이 바로 이 교육적인 부분이다.

이렇게 외국계 학교에서 5년을 공부 후 한국대학에 입학 시 특례 조항이 있어 한국에서 공부한 학생들에 비해 대학 입학시 유리한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주재원 생활이 이렇게 많은 혜택만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한국 근무보다 그렇게 많은 혜택이 주어지는 반면에 근무 강도는 한국과 비교할수 없는 정도로 힘든 부분이 있다.

필자의 경우 현지인100여명을 데리고 일을 하면서 가장 힘든 부분이 현지인들의 업무에 대한 접근 방식이다.

예륻 들면 한국에서 담당자에게 어떤 업무가 주어지면 그 일에 대해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반드시 완수를 하고자 하는 책임감을 가지고 업무를 한다.. 그에 반해 이곳 현지인들의 경우는 주어진 일에 대해 고민을 깊게 하지 않고 오직 시키는 일 그 자체만 하는 것이다. 물론 그 당시 현지인들의 업무 수준을 고려하면 충분히 이해가 간다. 이런 사유로 주재원 한명이 현지인 100명의 일을 상세히 들여 다 보고

실무적인 입장에서 내용을 검토하지 않으면 항상 사고가 빈번하게 벌어지곤 했다.

예를 들면 부품이 한국에서 공급이 되지 않으면 어떻게 해서라도 그 부품이 적기에 공급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협의를 해야 하는데 단순히 전화 한 통화로 공급 업체에서 부품 공급이 안된다 라고만 보고를 하고 퇴근을 하는 것 이다.

이런 환경에서 주재원 혼자가 100명의 일을 일일히 검증을 하다 보니 새벽 5시에 출근해서 밤 9시,10시 퇴근을 5년간 해왔다. 

돌이켜 보면 주재원 생활의 득과 실을 따져 보면,

득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은 가족들에게 한국의 월급쟁이가 현실적으로 해줄수 없는 부분을 이곳에서 해줄 수 있었던 부분이다.

실을 꼽자면 업무강도에 따른 건강이 다소 나빠졌고 한국 지인들과의 교류 부족으로

다소 관계가 소원해 진 부분이다.

한국과 달리 주재원 혼자서 여러 가지 일을 하다 보니 오직 회사일 만을 위해 5년간매진하면서 건강은 항상 2순위로 밀리면서 5년이 지난 시점에 협심증이라는 지병을 얻었다. 다행히 일찍 발견하여 위험한 고비는 넘겼지만 평생 약을 먹어야 한다.

그리고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 한국의 지인들과 자주 교류가 없으면서 관계가 다소 소원해졌다.

결론적으로 보면 주재원 생활은 득,실을 따지기 전에 구만리 인생길을 살아가면서 회사원으로 한번 정도는

경혐하면 인생에서 하나의 좋은 추억거리로 생각이 들고 혹시 기회가 되는 사람들은 한번 경험해 보길 추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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