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일렌 Nov 25. 2021

로런 엘킨 <도시를 걷는 여자들>



0. 책을 고르게 된 계기

1. 책 이야기

2. 옮긴이의 말




0. 책을 고르게 된 계기


나는 리베카 솔닛을 좋아한다. 가장 좋아하는 에세이스트를 꼽으라면 망설임 없이 리베카 솔닛을 고를 정도.


리베카 솔닛을 알게 된 계기는 단연 《남자들은 자꾸 여자를 가르치려 든다.》이다. 페미니즘 (은 항상 존재했지만)이 한국에 대두되던 시절, 내가 은연중에 느끼던 불쾌함을 단어와 문장으로 정의해주는 사람이란... 그저 무릎을 치며 읽었다. 어쨌든, 이 책으로 리베카 솔닛을 접했지만 나의 최애 에세이는 따로 있다. 바로 《멀고도 가까운》이다.
 
또 서문이 길어지고 있는데... 어쨌든, 멀고도 가까운은 리베카 솔닛의 어머니와 자신에 대한 이야기다. 나는 이 에세이를 저자의 어머니와의 기나긴 화해기라고 생각한다. 물론 완전히 화해하지도, 어머니가 저지른 잘못에 대한 완벽한 용서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가족의 의의는 할 수 있고, 할 수 있는 범위 내라면 끊지 않고 질기게 이어갈 수 있는 관계라는 게 아닐까. 친구나 연인이었다면 쉽사리 끊었을 일도 (누누이 말하지만 가능한 범위라면) 가족이라면 몇 번을 참고 나를 합리화한다.
내 삶과 마음이 망가지지 않는 선에서, 우리는 이렇게 가족과의 많은 화해를 한다. 어쨌든, 리베카 솔닛의 《멀고도 가까운》 역시 이런 얘기다. (길 잃기 안내서는 저자도 밝혔던 아버지와의 화해기이다.) 리베카 솔닛은 아이슬란드를 여행하며, 그 고요한 곳에서 이에 대한 수많은 생각을 한다. 나는 아마 그 생각들이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그러고 보면 글은 참 신기하다. 나와는 전혀 다른 (백인, 권위 있는, 먼 나라에 사는, 나로선 쉽사리 갈 수 없는 나라에 방문해) 사람에게서 나와 같은 결을 찾아낼 수 있단 점에서 특히.
멀고도 가까운은 요즘 트렌드의 에세이와는 달리 길고 조밀한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도 이 "결"에 끌린 나는 리베카 솔닛의 다른 저작 역시 찾아보게 됐다.
 
그중 하나가 《걷기의 인문학》이다. 이 책은 쉽사리 나의 공감을 샀던 멀고도 가까운이나 길 잃기 안내서와 달리 철학이 가미된 (내 기준으로) 어려운 책이다. 페이지가 잘 넘어가지도 않고. 긴 문장은 몇 번이나 끊어 이해할 정도로 어려운 이야기들이었다. 그래도 기억에 남는 건,


마음에 떠오른 생각은 마음이 지나는 풍경의 한 부분인지도 모르겠다. 생각하는 일은 뭔가를 만들어내는 일이라기보다는 어딘가를 지나가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직립보행이 인간성이라는 무언가에 찍힌 최초의 도장이라는 것만은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 문장들이었다. 회사에서 정말 돌아다니기만 하는데도 하루 7천~만보를 걷는 나는 걷기가 싫다. 여행 가서도 가만히 누워 있는 게 좋다. 조금이라도 걸으면 피곤하고 힘이 든다. 하지만 평소에 이렇게 걷다 보니 남들보다 걷는 운동량이 부족한 것도 아니다. 이런 생각을 가진 내게 "걷기"라는 것이 가진 어떤 철학적 의미를 생각할 수 있게 해 주었으니까.
생각해보면 단순히 걷지만은 않는다. 나는 걸으며 음악을 듣거나, 생산적인 어떤 생각을 하거나 가끔 망상을 한다. 그럴 때면 내 주변 풍경이 눈에 보이기도 하고 어떨 땐 어디를 지나쳤는지 기억이 나지 않기도 한다. 그리고 이건 인간 중 나만이 하는 특별한 행위는 아닐 것이다. 그러면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기"를 통해 생각하고, 생각하는 것일까. 모호한 표현이지만 이 책을 읽고 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이 책을 통해 나는 걷기와 또 그 걷기에 얽힌 작가의 생각에 매력을 느꼈다.
 
그렇게 3년 뒤에 발견한 책이 이 로런 엘킨의 <도시를 걷는 여자들>이다.



1. 책 이야기
 



로런 엘킨은 리베카 솔닛과 유사한 접근을 한다. 첫째는 걷기에 철학적 의미를 부여하기, 둘째는 페미니즘이다.
저자는 걷기의 인문학 한 구절을 인용하며 제 주장을 강화해 글을 열고 있다.
"왜 여자들은 나와서 걸어 다니지 않았는가?"
저자는 이 글에서 여자는 "시선의 (주체가 아닌) 대상"이기 때문이라 이야기한다. 남자는 쉽게 시선의 주체가 되는 반면, 과거로부터 여성은 남성의 시선을 받는 객체가 되어 왔다.
리베카 솔닛이 걷기에 무수한 의미를 부여한 것처럼, 그래서 이 '객체화'를 꺼려 나가지 못한 무수한 시간들이 여성에게 어떤 사유의 시간을 앗아왔는지를 또 기술하고 있다.
 
나도 걷기에 대해 좋은 생각을 덧붙이고 싶은데, 아직은 이 에세이스트들만큼 생각을 섬세히 정리할 순 없는 게 갑자기 안타까워진다.
 
어쨌든 로런 엘킨은 그 와중에도 이 "도시를 걸었던 여자들"을 특히 예술가 (사진작가, 영화감독, 작가 등) 중심으로 소개한다.
나는 진 리스에 대한 부분이 인상 깊었다.


진 리스로부터 나는 스스로를 낭만화하지 않는 고통의 미학을 배웠다. 그건 리스가 지닌 중요한 차별점이었다.


놀랍게 나는 로런 엘킨의 이 에세이를 읽으며 이와 똑같은 생각을 했다. 나에게도 있는 스스로의 미운점을 저자는 망설임 없이 드러낸다. 민낯보다 더 까내린듯한, 정말 적나라한 감정과 본성을 저자는 끊임없이 서술한다.
그리고 로런 엘킨은 이를 낭만화하지 않는다. 그중에서 기억에 남았던 구절은,


나는 x가 여기에 파견되었기 때문에, 그가 계속 여기 머무르려고 하기 때문에 x를 원망했다. 하지만 같이 살기로 한 이상은 원망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 그래서 나는 대신 일본을 원망했다.


여기인데 저자가 x (전 남자 친구)를 따라 파리에서 도쿄로 이사오며 겪었던 수많은 문화 충돌, 언어 충돌로 인해 괴로웠던 시절의 문단들 중 하나 이다. 저자는 보는 내가 의아히 여길 정도로 일본에서의 삶을 괴로워하고, 힘들어한다. 그런데 그 마음을 하나 둘 까발리고 보니 이런 못난 마음이었다는 걸, 어째서 이 저자는 정확히 알고 심지어 드러낼 수 있었던 걸까.
아직도 이 용기에 대해선 모르겠다. 그리고 이 용기들이 내가 여성작가들의 에세이를 유독 좋아하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가지지 않은 점들을 동경하기 위해서.
 
그 외에도 바르다, 조르주 상드, 버지니아 울프 등에 대해 이야기한다. 저자가 걸었던 도쿄, 파리, 뉴욕 등의 도시를 걷는 감정을 다양하게 묘사한다.


간략하게 남기자면
버지니아 울프를 따라 런던을 걸으면서는 이런 얘기를 한다.

<자기만의 방>에는 조용하고 분리된 개인 공간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만 나오는 게 아니다. 이 글은 여자가 방 밖으로 나갔다가 부딪히게 되는 경계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여기에 울프의 다른 소설들을 엮어 배회하고 걷는 여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그 배회로 얻는 주체성, 자유들.


바르다 (영화감독)에 대해서는,

바르다는 페미니스트의 첫 번째 행위는 바라보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라고 한다. "나는 시선의 대상이지만 또 나는 볼 수 있다." 바르다의 영화가 하는 행위가 바로 그것이다. 세상과 세상 안의 우리 자리를 비스듬한 눈으로 보는 것.


세상에 객관성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본 저서 내에 등장하는 겔혼의 말과도 일맥상통하는 이야기이다.
 
어쩌면 도시를 걷는 여자들에 나오는 여성 예술가들은 다 같은 얘기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란 생각이 문득 들었다.
도시에 나가 걷고, 보고 들으며 도시를 '나 스스로' 체감해야 한다는. 남들이 '객관적으로 기술한' 도시에 대한 정보와 풍경이 아닌, 내가 그 거리에 나가 접목되어야 된단 이야기.
집 안에 가만히 앉아 넘어가는 화면과, 누가 들려주는 이야기처럼 내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 직접. 책을 넘기고 글을 쓰고 도시에 나가 배회해 부딪쳐야 한단 이야기.
그러고 보면 걷기는 독서와 유사한 행위일지도 모르겠다.
 
이 외에도 잠시 언급한 겔혼, 조르주 상드 등 많은 여성 예술가의 이야기가 실려있다. 하는 말은 같을지라도 표현 방식이 무수히 많은 예술가들의 이야기다. 저자는 이 이야기를 자신의 경험, 내면과 엮어 가감 없이 묘사한다.
리베카 솔닛의 걷기의 인문학을 좋아했다면, 올리비아 랭의 외로운 도시를 좋아했다면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마지막은 옮긴이의 말로 대체한다.
 


2. 옮긴이의 말


그래서 우리는 길 위에 있어야 한다. 광장과 집 사이에. 길 위에서 사라지고 시은 충동과 싸워야 한다. 그렇게 길 위에 발자국을 남기고 발로 나의 영역을 넓히고 새로운 곳을 탐구하고 적대적인 공간을 비스듬히 걸어 나가고 긴장과 해방, 저항과 자유 사이에서 내가 선택한 길을 찾는다.
작가의 이전글 내 꿈은 요리왕 2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