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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혁 Jan 13. 2021

이문당 서점을 추모하며

[위로여행 2장-③]



통영중앙우체국 맞은편에는 유서 깊은 서점이 있었다. 문화예술의 도시 통영을 상징하는 이문당 서점. 2014년, 이문당 서점이 폐업한다는 뉴스가 많은 신문과 방송에 올랐다. 



1945년 해방 때부터 70년을 살아 온 거목이 쓰러졌다는 부고에 그때 나는 조문객처럼 서점을 다시 찾았다. 검은 관처럼 변한 건물의 유리벽 안으로 빈 책장들이 보였다. 지나가는 시민들도 허망하게 하직한 서점에 안타까운 눈길을 한 번씩 주곤 했다. 



전국을 통틀어도 손꼽을 만큼 오래된 서점이었다. 각 세대마다 이문당 서점에서 구입한 책의 이미지가 그들의 그 시절을 말해주었다. 나는 그곳에서 초등학생 때 월간 만화잡지 보물섬을 샀고, 중고등학생 때는 수능 문제집을 구입했고, 대학생이 된 후에는 서울 가는 장시간의 버스에서 읽으려고 월간 ‘좋은생각’을 집었다. 



옛 시절에 누군가가 문화의 상수원이던 이문당 서점 통로에 자리를 깔고 책을 읽는 이를 보았다면 그가 젊은 박경리나 청년 유치환일지도 모른다. 홈런왕, 판매왕 보다는 독서왕이 되어 지혜의 세계를 건국하려는 이들의 수련장, 서점.



나에게는 이문당 서점에서 만나던 뮤즈가 있었다. 마치 책 사러온 사람처럼 서점에 들어서던 나에게 시집 같은 운율을 느끼게 한 소녀. 그녀를 알게 된 건 고등학교 3학년 때였다. 

일상의 주파수가 모조리 수능 시험일에 맞춰져야 했던 내가 고난의 행군을 견딜 수 있었던 건 PC통신 덕택이었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초인종 누르듯 컴퓨터 전원을 켜고 밤마다 몰래 PC통신의 바다를 향해 승선했다. 온라인의 보물섬들로 돛을 올린 나는 다른 공간을 살고 있는 이들과의 채팅을 즐기며 광활한 신대양의 신비를 만끽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채팅방에서 같은 통영에 사는 동갑의 여학생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각자의 창문으로 아침이 올 때까지 꿈과 좌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해적을 소탕하려는 듯 서로의 부모님이 때론 PC통신이 연결된 전화코드를 뽑아버리기도 했지만 육지의 수험 생활이 간단히 인수분해되지 않을수록 다시 배에 오르는 일이 잦았다.  



그리고 수능 시험을 본 후, 드디어 우리는 뭍에서 상봉하기로 했다. 장소는 이문당 서점이었다. 고장의 배꼽에 자리한 이문당은 통영 사람이 다 아는 약속의 공간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모니터처럼 네모난 얼굴일까? 궁금증을 안고 도착한 서점에서 그녀를 처음 마주했다. 커서처럼 깜박이는 눈을 가진 아이가 내 방 창문으로 들어오던 아침 햇살처럼 서 있었다. 오랜 항해 후 땅에 발을 디딜 때 느껴지는 진동이 일었다. 

그 날 이후 우리는 항상 이문당 서점에서 만났다. 그 때 그녀를 위해 샀던 소설책과 에세이집들이 그 시절의 나를 말해주었다. 



하지만 인연은 오래 가지 못했다. 나는 재수를 위해 서울로 가야했고 그 친구는 다른 도시의 대학으로 진학하게 된 것이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보던 날 서로의 삐삐 번호를 잘 기억하고 있자 했다. 그리고는 각자의 세계로 출항했다. 



그렇게 얼마나 떠나왔을까? 인생의 멀미를 느끼는 동안 PC통신과 삐삐가 세상에서 사라졌다. 설을 쇠러 돌아온 통영항구에서 우리는 교신하지 못했다. 급기야 이제는 만남의 부두이던 이문당 서점마저 운명했다. 



서점의 끝을 담으려 플래시를 터트린다



닫힌 상수원, 이문당 서점을 보며 나는 아주 꼬마일 때 어렴풋하게 기억에 남아있는 물장수 아저씨가 떠올랐다. 등에 진 큰 양동이에 물을 담아 팔던 아저씨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이제는 물장수의 자리에 생수병과 정수기가 들어섰듯이 PC통신과 삐삐는 인터넷과 스마트폰으로 바뀌어왔다. 서점도 그렇게 생활의 변화를 따라 문을 닫는 것일까? 



집단으로 달리는 경주마 위에서 사람들은 책의 숲을 온전히 보지 못하고 있다.  지금 시절을 말해주는 책은 자기계발서와 수험서가 되었다. 책을 구입할 통장의 잔고도 갈수록 말라가면서 오프라인 서점 뿐만 아니라 온라인 서점까지도 설 자리를 잃어간다.



인간과 사회를 고민하는 책과 그 책을 닮은 사람의 가뭄이 닥쳤다. 그래서 서점이 퍼 올리던 생명수가 더 그리워져서 고서점 하나의 사망 소식에 씁쓸한 갈증이 돌았나 보다. 

앞으로도 서점은 물장수처럼 사라져갈 것이다. 분명한 건 서점이 짊어진 것이 물이라는 거다. 우리 시대가 물을 덜 마시게 되고, 자극적인 탄산수 같은 책들에만 반응한다면 메마른 땅에서 얼마나 사람처럼 살 수 있을까.



나는 혹여나 이문당 서점에서 만나기로 했던 오래 전 그녀를 다시 볼 수 있을까하는 마음에 깜깜한 서점 앞을 서성였다. 그러나 물살에 떠밀리느라 어느새 물주름이 눈가에 오른 사내 하나만이 두리번거리는 게 보일 뿐이다. 그녀를 아마도 다시 보긴 어려울 것 같다. 하지만 그 소녀와의 시간은 물을 마시는 것처럼 평범하지만 건강한 시간이었음을 나는 기억한다. 



만남의 부두 하나는 사라졌지만 우리 각자는 또 다른 누군가를 만나면서 물을 마시고 물질을 하면서 삶의 페이지를 넘겨갈 것이다. 그 순간들에 정수된 물 같은 책 한권 곁에 둘 수 있다면 이문당 서점의 임종에 미련이 덜 할 것이다. 



삼가 한 시절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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