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여행 3장-②] 통영 강구안
강의 하구 같은 바다가 남동쪽으로 입을 벌리고 있는 강구안은 통영의 대부분이 태어난 곳이다. 동피랑벽화마을, 통영중앙시장, 충무김밥거리, 남망산국제조각공원 등 통영의 북적이는 명지들도 옆구리에 두르고 있다. 강구안의 양 끝은 오므린 입술처럼 사이가 협소하지만 그 안의 바다는 넓어서 담탕한 호수 같다.
강구안에는 평평한 물결이 잔잔히 인다. 성나고 들뜬 소란이 무안해지는 그 바다를 보고 있노라면 경쟁, 차별, 억압 따위의 단어들은 생각나지 않는다. 엉겁결에 출생한 육신들이 쟁투 속에 생을 마감하는 비루한 현실세계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듯하다.
돌림병처럼 몽유병을 앓아 자다가도 그리워 바다에 나가는 통영사람들은 약물처럼 바다를 마신다. 이곳에는 바다를 물감삼아 삶의 그림을 채워가는 문학소녀·소년들이 해초처럼 자란다.
통영에서 머무는 동안 왕성하게 자신의 대표작들을 그려낸 화가 이중섭이 통영의 뱃사람이었다면 그랬을 법한 모습 하나를 나는 아직 기억한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무렵 강구안에서의 일이다.
갈매기가 새우깡 대신 동전처럼 굴러다니는 멸치를 집어먹는 바닷가는 나의 놀이터였다. 갱물(‘바닷물’의 사투리)이 땅에 불쑥 다가와 있는 동네이기에 친구들과 축구를 하고 놀다보면 공이 바다에 빠지곤 했다. 그 날도 축구처럼(‘바보’를 통영 사투리로 ‘축구’라고 한다) 공을 놓치는 바람에 어선들이 정박해있던 바다에 골인되었다. 해류에 밀려가는 축구공과의 생이별이 원통해 우리는 허망한 눈으로 바다를 쳐다만 보고 있었다.
그 때 어떤 배 위에서 선원 아저씨가 뜰채를 내리더니 생선을 낚듯 공을 떠 올려 우리에게 던져주셨다. 고맙다고 인사하며 돌아서려는데 그 배는 뭔가 빛이 남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아저씨는 우리를 향해 빙긋 웃은 다음에 배의 앞쪽 우뚝한 조타실 벽면에 그림 그리던 작업을 다시 이어갔다. 지금 떠올려보면 그 그림은 이중섭이 즐겨 그렸던 것과 비슷하게 물고기들이 춤추듯 뒤엉켜 있는 바탕에 파랗고 빨갛고 노랗게 채색되었었다.
풍어의 소망이 담겼을 수도 있고 바다를 벗 삼아 지내온 자신의 추억이 담겼을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그 배는 범상치 않았다. 그냥 비슷비슷하게 단일한 페인트가 칠해진 여러 보통의 배들 사이에서 오롯하게 떠 있는 자태가 미항에 가장 어울렸다. 그래서 그 후로도 강구안을 거닐 때는 그 배에 유독 눈길이 머물렀고 완성되어가는 그림을 보며 그 아저씨의 꿈도 그러길 기원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바깥의 큰 바다로부터 육중한 바람이 몰아닥쳤다. 태풍이 통영을 휩쓸었다. 성난 무리들처럼 무자비한 소멸전을 벌이며 어촌의 유리창과 지붕에 덤벼들었다. 재난경보방송이 밤새 계속되었다.
다음 날, 맹풍이 떠난 후 허물어진 거리로 나가보았다. 혼돈의 시간을 보낸 상처들이 곳곳에 가득했다. 몸서리친 바닷가 동네는 폭격을 맞은듯했다. 제멋대로 나뒹구는 쓰레기장이 된 길을 지나 강구안에 다다랐다. 강풍이 남긴 파문에 배들이 스크럼을 짜고 끽끽 소리를 내며 물살을 견뎌내고 있었다. 어떤 어선은 뭍으로 도망치듯 올라와 기절해있기도 했고 바다에서 미처 탈출 못한 배들은 그르렁그르렁 마지막 호흡을 내쉬며 엎어져 있기도 했다.
그리고 슬프게도, 축구공을 구해준 아저씨의 빛나는 그림의 배도 수면 위로 거품을 토하며 침몰해 있었다. 그림과 함께 그 아저씨의 꿈도 수장되는 것 같아 마음이 더 아팠다. 먼 세계에서 몰아닥친 광란이 강구안에 움터있던 잔잔하고 소려한 삶들을 으스러뜨렸다.
얼마 뒤, 전쟁터 같던 흔적들이 조금씩 정리되어가던 무렵 강구안 바닷가에 있던 통영극장에서는 당시 어린이들에게 선풍을 일으킨 영화 <우뢰매>가 상영되었다. 바깥의 큰 은하에서 침공한 악당에 맞서 지구를 지킨다는 내용이다.
초딩에 최적화된 감동과 환희를 맛보러 아이들이 뽈락처럼 우르르 무리지어 영화관으로 달려들었다. 나와 친구들은 영화값 내기를 위해 달리기 시합을 했다. 태풍 뒤에 따라 온 풍어로 다시 웃음을 찾은 중앙시장 입구에서 우리는 출발했다. 그리고 강구안 해안선을 뛰어 돌아 남쪽 갯가에 위치한 통영극장까지 달렸다. 개운해진 하늘 아래 선기들이 나풀거리는 게 보였다.
그때였다. 뛰는 심장을 느끼며 한참을 가는데 전에 없던 그림이 선박을 묶어두는 계선주들에 그려진 것을 발견했다. 하늘을 닮고 바다를 닮은 그 색채들을 보고 나는 대번에 그 아저씨의 작품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저씨의 꿈이 아직 침몰하지 않고 기둥이 되어 먼 바다로 다시 나갈 채비를 하는 배들의 꿈을 지지해주는 듯 했다.
희망의 진지
먼 시간이 흘렀다. 고된 한숨마저 얼려버리는 서울의 찬 공기를 피해 태아처럼 웅크리고 싶어 나는 통영으로 종종 내려와 길을 더듬는다. 이제는 세월에 벗겨져 쇠기둥의 그림은 남아있지 않다. 꾸벅꾸벅 졸던 통영극장은 문을 닫은 지 오래고 그 자리엔 은행이 들어섰다. 바다 옆 골목에 공차는 아이들은 학원엘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여전히 강구안에는 꿈을 탯줄로 이은 배들이 태동하고 있다. 삶의 희망을 낚으러 출항하고 다시 꿈결 같은 항구로 돌아오는 성근한 어부들의 뱃노래가 울린다. 중앙시장의 새벽을 열며 생선 파는 아지매들의 시름은 시 한 수, 소설 한 편을 뽑는다. 모두가 예술가다. 인생의 바다를 헤엄치며 만드는 처염하게 하얀 물보라로 생활이 들이미는 오물들에 맞서 싸우고 있다. 빈궁과 고독의 독물을 정제하여 도화지에 그려낸 이중섭도 그러했다. 강구안에 부는 소금바람이 삶을 썩지 않게 만들어 주고 있다.
때론 바깥의 큰 바다에서 우주 악당처럼 휘몰아쳐오는 태풍에 상처 날 수도 있다. 하지만 겨울을 이기고 피는 통영의 붉은 동백꽃처럼 다시 온기를 뿜는 기둥이 남녘에 박혀있다. 통영 바다가 태어나는 강구안이 희망의 진지다.
강산에의 노래 <답>은 답답한 삶에서 풀리지 않는 물음들의 답을 찾고 싶은 심정이 가사에 담겨 있는데, 통영을 배경으로 뮤직비디오를 찍었다. 답을 구하러 강구안에 온 주인공의 눈망울에서 우리를 본다.
선 없고 높낮이 없고 억세지 않은 통영 강구안 바다가 쌀쌀한 우리 삶과 사회의 답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 그 답을 찾아 무리지어 헤엄치고 달리다 보면 생활을 보듬고 지구를 지키는 감동과 환희도 맛 볼 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