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문학상 투고를 돌아보면서
최근 단편 소설을 모아서 투고했다. 소설 쓰는 거 때려치워야지... 이러다가도 어느새 다시 붙잡고 끙끙거리는 거 보면 중증 같다. 당장 뭐가 떨어지는 것도 아닌데. 최근 면접을 보러 다니다가 다 떨어지고 벙쪄 있는 상태에서. 신 포도를 바라봤던 여우처럼. 차라리 잘 된 거야, 글을 쓸 시간은 많겠네... 갑자기 계획에 없던 문학상에 투고하기 위해 소설을 쓰고 고치기 시작했다. 간만에 밤을 샜다. 긴장과 흥분으로 가라앉지 않는 몸. 왜 나는 항상 마감일에 닥쳐서 쓰는 걸까... 이런 감정 기복... 몸 상태... 제 명에 못 살 것 같은데? 싶다가도 좋았다.
웹디자이너로 일하면서 충족되지 않던 만족감이 들었다. 레퍼런스와 카피의 구분이 모호한 영역에서, 주관적인 취향을 배제하고, 클라이언트에 맞춰서. 대체로 무리 없이 컨펌이 됐다. 이건 해일 씨 포트폴리오니까요, 열심히 해요. 상사는 그렇게 자주 말했는데 이상하게 나는 이 작업물에 애정을 별로 느끼지 못했다. 이런 것보다는 더 내 것을 하고 싶다... 이런 생각을 자주 했다.
사람들 앞에 나서는 건 좋아하지 않는데 은근히 관심을 바란다. 자기표현의 욕구를 항상 느낀다. 비대한 자아를 표출할 도구로 예술에 관심을 갖는 것일까. 아니면 예술에 빠지면서 점점 자아가 강해지는 걸까... 소설은 내가 바라보는 시선으로 다른 세계를 구축한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느리게 곱씹으면서... 요즘 웹소설 위주로 읽지... 순문학이나 출판 문학을 읽는 사람이 얼마나 된다고... 심지어 나조차도 유튜브 쇼츠나 보고 있잖아... 혼자 자문하면서도 꿋꿋하게 쓴다. 웬만큼 자아가 강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짓이기도 하다.
어느 정도의 자아는 있어야 건강하지만, 20대 초반의 나는 삶이 힘들 정도의 자아를 짊어지고 있었다. 주변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다. 합평에서 비판을 받은 날이면 너무 고통스러웠다. 소설에 대한 지적이 아니라 나에 대한 부정으로 느껴졌다. 발가벗겨진 것 같았고. 두정역에서 지하철을 기다리는 내내 엉엉 울었다. 나중에 외부 시설에서 소설 수업을 듣게 돼도 상황은 비슷했다. 눈물만 없었지, 소설에 대한 지적을 받는 건 너무 힘들고 아팠다.
상태가 어느 정도 나아진 건 의외로 연기 수업 덕분이었다. 예술이란 카테고리로 보았을 때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글 쓰는 사람들처럼 개성이 강했다. 하지만 결이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많이 달랐다. 오히려 나는 이들이 어떤 부분에서는 더 편하다고 느꼈는데, 외향적이고 사교적인 성격 때문만은 아니었다. 매번 새로운 대본으로 다른 캐릭터가 되어야 하는 상황. 연기를 잘하려면 나를 잘 내려놓아야 했다. 어떤 것이든 받아들이는 수용적이면서도 개방적인 태도. 나라는 고착된 틀을 깨야 한다.
여러 대본을 만나면서... 절대 안 된다고 믿은 게 사실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걸 느꼈다. 겁쟁이가 되거나 상스럽게 욕을 하거나 억울함에 호소하기도 하면서... 나를 섞지 않았다. 물론 한순간 비대했던 자아가 깔끔해지진 않았지만. 사람들 앞에서 연기를 할 때 무지 떨렸지만, 수치스러워서 죽고 싶은 정도는 아니었다.
요즘 에세이를 빌려 내 얘기를 많이 하고... 요즘 쓰는 소설은 전과 많이 달라진 느낌이다. 소설에 목을 매면서 소설만 생각했을 때는 나와 분리되지 않은 소설이 나왔다. 자유로운 상상력을 펼치기보단 동의어를 반복하면서 정체된 듯한... 이번에 쓴 소설은 재밌었다. 시간이 촉박해서 문장에 대한 아쉬움은 남지만... 뭐랄까, 굉장히 소설 같은 소설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