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너가 떠오르긴 하지만
나는 친구가 없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원래도 친구가 없는 편이었지만 이제 진짜 사적으로 연락을 나누는 친구가 한 명도 없다. 차장님은 일하는 중간에 카톡을 해도 괜찮다고 말했는데 나는 머쓱하게 웃기만 했다. 저는 그럴 사람 없거든요.
손절을 잘하는 편이긴 하다. 인간관계에 연연하지 않기도 하고. 애초에 상처받기 싫어서 마음조차 주지 않는 회피형 같다. 어린 시절의 경험이 영향을 끼친 것일까. 넌지시 추측해 본다.
29년 인생을 살면서 이사는 열한 번, 초등학교만 네 곳을 나왔다. 그래도 청소년기 10년은 한 동네에서 죽 살았지만 첫 만남부터 이별을 염두에 두는 것은 내게 너무 당연한 일이었다. 언젠가 이사를 가게 될 것을 알았을 때 반 친구들에게 굳이 얘기하지 않은 적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사를 많이 한 사람들이 다 이런 태도를 취하는 건 아니겠지만...
누군가와 친해지기 위해서 애를 쓴 기억은 별로 없다. 살다 보면 자연스럽게 가까워지는 사람들이 생겼으니까. 차분해 보이는 첫인상은 '간택' 당하기 용이했다. 그래도 언제라도 만나던 사람들은 좀좀따리 있었는데 지금은 영 없다. 최근 회사를 다니면서 적응하느라 바쁜 하루를 보낸 후 핸드폰을 열면. 카톡 플러스 친구들의 광고와 전날 주문한 쿠팡 기사의 문자로 가득하다.
아주 가끔. 툭, 끊어져버린, 다시 이어볼 마음조차 나지 않는 사람들이 종종 생각난다. 그럴 때면 10년이라는 시간은 생각보다 길다는 것을 체감한다. 먼저 연락하기보다는 답장을. 다소 수동적인 만남을 반복하던 인연이지만. 그 빈자리가 크게 느껴질 때가 있다.
당시에는 마음에 들지 않는 것들로 가득했다. 학교를 다닐 때와 다르게 각자 사회생활을 하게 되면서 점점 대화가 맞지 않는 느낌이 강했다. 관심 분야가 달라지고, 만날 때면 처음 보는 말투와 성격에 낯설어하고... 그러다 결국 과거 얘기를 되풀이하곤 했다. 당시에는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얼마나 나이 먹었다고 추억 팔이하고 있지... 그래도 좋든 싫든 내 인생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사람이었는데. 한순간 사라지니까 10년이란 시간을 통째로 도려낸 기분이 든다.
그럼에도 나는 그럭저럭 잘 지낸다. 그렇게 생각하련다. 가끔 센티멘탈해지는 경우를 제외하면 평소와 같은 나날이다. 회사를 제외하고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은 아무래도 가족이다. 아직 독립하지 않아 함께 살고 있다. 주말이면 함께 맥주 한 잔 기울이는 게 낙 중 하나다. 점점 동그라미가 되어가는 고양이와 온종일 붙어지내면서. 집에서는 밀린 예능과 영화, 책을 본다. 종종 외출하고 싶으면 노트북을 챙겨 들고 카페나 도서관에 간다. 어제, 오늘, 지난주, 지지난주. 차이점을 찾기 어려운... 단조롭고, 평온한 하루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