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풍 가는 날의 샌드슈즈

초급은 초급답게

by 윤혜경
*여아샌들 (출처: 쿠팡 )
*샌드슈즈 (출처: 쿠팡)



1991년 큰아이가 다니던 호주 시드니의 가톨릭 사립 초등학교는 인근의 공립 초등학교에 비해 규모가 작았다. 아담한 3층 건물로 지어진 1층 교실 앞의 학교 운동장은 한국의 초등학교 운동장과 비교하면 정말 귀엽게 자그마한 규모였다. 그곳에서 한 학년 당 2개 반, 1개 반에 30명 정원이니 유치반부터 6학년까지 초등학교 전체학생수가 420여 명쯤 되었을게다.


수업이 시작되기 직전까지 운동장 여기저기에 모여있던 아이들은 교실문이 열릴 때까지 또는 운동장 아침조회가 끝날 때까지는 교실에 들어갈 수 없다.


이런 규칙은 교과서나 노트, 필기구와 같은 학습도구는 전혀 없이 간식, 주스 등 음료수와 점심만 담긴 가방을 멘 아이들에게 필요한 전자계산기 등을 포함한 학습 비품들이 교실 책상이나 뒤쪽 선반들에 가지런히 놓여있어 분실사고 방지목적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눈 깜짝할 사이에 발생하는 아동들의 안전사고 예방 차원이다.


출근길에 아이들을 운동장에 내려주고 떠난 부모대신 교사들이 한 사람씩 교대로 서서 운동장에서 노는 전체 아이들을 보호감독한다. 그리고 아침 9시 수업에 맞춰 8시 50분에는 담임교사가 열쇠로 교실문을 열고 반 아이들을 마치 엄마오리처럼 데리고 들어간다. 1990년대 초반 이야기이다.


학부모가 모이는 체육대회와 같은 큰 행사는 지역의 공원 잔디 운동장을 빌려서 치르고, 1년에 한 번 있는 수영대회는 지역 수영장을 빌려 개최하니 굳이 넓은 운동장을 필요로 하지 않는 건지... 바로 옆에 같은 가톨릭 재단의 남자 중. 고등학교의 큰 운동장이 있어서 아주 드물게 빌려 쓰기도 한다.


도서관은 성당 옆에 위치한 별관으로 1층 건물이고, ㄱ자 형태의 학교건물 1층은 유치원 2개 반과 1학년 3개 반이 배당되어 있었다.


그 앞의 마당은 아이들을 데려다주고 오후에 데려갈 때 부모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공간이며, 90분 수업 후 주어지는 30분의 small lunch 시간에는 간식으로 가져온 사과, 당근, 오이, 셀러리 등 과일과 야채, 건포도 알갱이나 말린 살구, 슬라이스 또는 롱 치즈 (튜브치즈), 비스킷과 팩 주스와 같은 간단한 간식을 들고 나와 먹는 곳이기도 한다.


그리고 교실문을 닫거나 잠근 후 운동장 아동들과 함께 머무는 지도교사 1~2인을 제외한 다른 교사들 역시 커피 한 잔과 비스킷, 사과 등을 먹으며 휴식을 즐긴다.


간식을 먹은 아이들은 남은 시간에 고무줄놀이를 하거나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공기놀이도 하고, 벤치에 앉아 책도 읽는다. 남자아이들은 이리저리 공을 발로 차고 달리기도 하는 등 자그마한 운동장은 문자 그대로

< meet & greetings > 공간이다.


유치반 소풍날, 운동장으로 연결되는 가톨릭 성당 주차장용 좁은 폭의 도로는 승용차용이므로 폭이 좁아서 Excursion Bus는 학교 앞 도로 한편에서 출발시간을 기다리는 중이다.


지난주에 학부모 앞으로 스쿨킨더 (학교유치반) 아이들 가방에 넣어온 뉴스레터에는


1. 금요일 excursion 목적지가 Taronga Zoo (타롱가동물원)이고

2. 아침 출발 전에 보호자는 선크림을 아이의 목 뒤까지 꼼꼼하게 잘 발라주고,

3. Sand Shoes를 신게 하고 큰 챙의 school hat을 꼭 씌워 보낼 것

4. 혹시 필요할 때 덧바를 수 있게 선크림을 배낭에 넣어 보내달라


고 씌어있었다. 가정통신문에 Sand Shoes라고 적혀있어서 우리가 흔히 해변가 백사장에서 신는 여름 샌들을 신게 했다. 아이와 교실 앞에 도착한 나는 아이들을 맞느라 교실문 앞에 서 계신 담임선생님께 오늘 일정을 물으니


"오늘은 아이들이 동물들과 교감을 해보는 시간이라서 캥거루 우리나 코알라 우리에 들어갈 계획이 있다."


라고 했다. 또'


"동물 우리 안에는 바닥에 동물배설물들이 있어서 샌들을 신은 아이의 발가락에 배설물이 묻을 수도 있다."


라고 근심스러운 눈빛으로 설명해 주었다.


Wiktionary는 sandshoe (plural sandshoes) (Scotland, Australia, New Zealand, Northern England): A sports or walking shoe with canvas upper and rubber sole; a sneaker. 설명하고 있다.


걷기에 편한 스니커즈 종류라는 건데...


유치반 2개 중 딸이 속한 반에서 아시아계는 영어가 능통한 홍콩계 호주아동 2명, 한국학생 1명(내 아이), 아기 때 변호사 가정에 입양된 한국입양 남아 1명으로 총 4명이었다. 그중 영어를 이제야 배우느라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아동은 내 어린 딸이 유일했다.


이 어린 딸의 한국인 보호자는 영한사전도 안 찾아보고 샌드슈즈를 샌들로 이해했다. 한때 인기였던 샌들모습의 비치슈즈쯤으로 생각한... 해변을 걷다가 모래가 발가락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면 신발을 신은 채 바닷물에 흔들어 발의 모래가 씻겨나가는 편리한 샌들로.


sandshoes는 낯선 단어지만 아주 쉬운 단어의 조합이어서 새삼스레 사전을 찾을 필요까지는 없다고 여겼다. 차라리 당시 유행했던 sneakers로 표현했다면 단박에 알아들었을 텐데...


'Stupid Mom!!!'


출근시간에조차도 호주의 보행인들은 대체로 맞은편에서 오는 낯선 이들에게 웃음을 띤 얼굴로 "Morning~!" 하고 인사를 나누며 천천히, 여유롭게 걷는다. 작은 아시아여자는 눈 맞춤은 고사하고 그들의 아침 인사를 어깨너머로 날리며, 아침부터 마치 100미터 달리기 선수처럼 맹렬하게 집을 향해 돌진했다.


걸어서 왕복 30여분 거리를 유모차에 태워 큰아이를 안전하게 데려온 아시아여자인 나는 작은 아이용 유모차를 운동장 교실입구 한편에 눕혀둔 채, 버스출발예정 시간에 늦지 않게 두 발로 날아서 10분 만에 돌아와야 했다.


운동화는 체육대회 때나 신는 신발로 인식하던 나는 당시에도 굽이 제법 높은 단화를 평상 신발로 신던 차였다. 차량을 이용한 이동이 우세한 도시의 생활분위기상 걸어 다니는 사람이 별로 없는 이른 아침의 호젓한 인도 위를 굽이 있는 구두와 치마 차림의 젊은 엄마가 손가방을 든 채 갑자기 인도를 맹렬하게 달려가는 모습이 가관이었을게다.


행여 들뜬 어린아이들의 동물원 소풍 출발시간이 한국에서 온 아이엄마 때문에 지체되지 않도록 집에서 아이 운동화를 찾아 손에 들고 여전히 구두차림으로 다시 온 힘을 다해 학교 앞 도로에 주차한 버스를 향해 달렸다. 입구 문을 연 채 부릉부릉 시동 중인 버스에 다소곳이 앉아있는 어린 딸의 신발을 바꿔주고 일어서는데 갑자기 숨을 쉬기 어렵게 흉통이 덮쳤다.


초급이 초급답게 영한사전을 열어보며 숙지하지 않은 결과로 어린 딸과 엄마가 이방인임을 확실하게 증명해 보인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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