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부부찻잔, 목이 긴 샴페인잔, 작은 레드와인잔, 조금 큰 화이트 와인잔, 그리고 고블렛 잔까지 예쁜 라인에 빠졌던 시절
1989년 1월에 시드니로 향하던 가방 속에는 여고시절부터 대학 때까지 좋아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에지 있게 보이려 외우며 베껴 썼던 라이너마리아 릴케, 노천명 님 등의 시가 담긴 낡은 시 노트와 예쁜 프린트로 둘러진 한국의 연필 몇 다스가 옷가지들 사이에 들어있었다. 국산 연필에 둘러진 앙징맞은 인물화며 꽃, 과일, 동물 그림들은 아이 엄마의 눈에도 참 예뻤다.
그 시절 시드니에서는 유아원 여아 생일선물로 10~20 A$(호주달러) 범위의 일본만화 속 예쁜 소녀 캔디나 귀요미 초록빛 개구리 Kerog Frogs 그림의 스케치북, 연필 굵기의 색연필 세트, 안데르센이나 이솝 등의 그림동화책이 인기였다. 물론 남아들을 위한 스케치북 표지그림은 긴 목과 짧은 다리의 공룡이나 로봇, 슈퍼맨 차림, 피에로 모습으로 그려졌다.
내 아이들도 생일선물이나 크리스마스 선물로 <Baby Sitter>, <Black Beauty>, <Daddy Long Legs>, <Peter Pan>, <Snow White>, <Sticky Beak>, <Thomas Tank Engine> 등 그림 동화책이나 동화그림 색칠하기 책, 또는 표지그림이 그림 동화책의 한 페이지로 장식된 스케치북과 24색 또는 36색 색연필 세트 선물을 주고받았다.
2.5세, 4.5세에 떠나와 영어도 한글도 소통의 도구가 되지 못하는 만 3세와 만5세의 아이에게 영어문해를 위해 < Sesame Street >와 강아지 < Spot Series > 만화영화를, 한글문해를 위해 주말에 교민들이 운영하는 비디오 샵에서 빌려온 한국의 '뽀뽀뽀' 비디오 보여주기를 시작했다.
말하기가 가능한 상태의 어린 아동을 위한 모국어 문해도 <Hearing 듣기>부터 먼저~^^
손을 씻고 교복을 평상복으로 갈아입은 뒤 과일과 비스킷을 먹으며 비디오 보기가 끝나면, 좋아하는 색칠하기를 할 수 있도록 자동 연필 깎기에 돌려 깎은 연필과 색연필을 손잡이가 있는 머그잔 두 개에 가득 꽂아 식탁 한쪽에 세워두었었다. 아이들과 함께 색칠에 참여하는 동안, 엄마눈에도 한국에서 들고 온 연필의 몸체에 둘러진 섬세한 그림들과 색상이 참 예뻤다.
시드니의 백화점에 들르면 마치 시골소녀 상경기 주인공처럼 예쁜 카드코너 앞에서, 또 색상이 선명하고 예쁜 도자기 컵들 앞에서 내 두 눈동자가 아주 접착상태가 된다.
그 예쁜 색상들은 이 세상 자연의 모든 색상을 담은 듯 영롱하고 예뻐서 꽃보다도 예쁜 어린 딸의 손을 꼭 잡고 다녀야 하는 중요한 사실조차 잊기도 했다.
또 각종 감사와 축하카드는 어떤가? 카드는 손바닥 절반 크기에서부터 A4 용지 크기에 이르기까지 아주 다양했다. 이곳에선 크고 작은 감사 표현에 간단한 선물과 함께 용도에 맞는 카드를 전달한다. 고급스럽게 꾸며져 노래까지 부르는 크리스마스 카드는 웬만한 생일 케이크 ($20+~) 가격에 근접할 만큼 센 놈도 있다. 특히 몇몇 수입 웨딩카드는 고급스럽고, 정말 화려하고 예뻐서 미리 사두었다가 어린 딸들이 자라서 결혼할 때 부모의 양육 소회를 적어 꼭 건네주고 싶기까지 했다. 아, 주착을 통째 품었던...
큰 아이가 학교 1학년이 되고 나서 작은 아이도 드디어 3월부터 집 앞 유아원 목·금반에 등록했다. 월·화·수는 엄마와 종일 함께 지낸다는 말이다.
큰아이를 학교에 보낸 뒤 아침을 먹이고 집안 정리 후, 작은 아이 손을 잡고 공공도서관에 들렀다. 작은 아이와 나는 도서관 카펫 바닥에 앉아서 오전 11시 즈음 시작되는 <동화책 읽어주기>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목금반이거나 유아원 대기자일 서너 살짜리 또래들과 함께 이야기를 열심히 들었다.
그리고 학교 가는 길에 있는 포목상에서 꽃무늬의 순면 천을 사다가 손바느질을 하고 운동화끈을 바지허리단 고무줄처럼 둘러서 완성한 <엄마표 book bag>에 아이손으로 선택한 <도서관표 그림동화책>을 빌려서 담아 오는 길에 쇼핑센터에 들르곤 했다.
집에서 학교까지 걸어가는 길에는 Grace Bros 백화점과 좀 더 고급스러운 분위기의 David Jones 백화점이 한 블록 차이로 서있다.
문자 그대로 대형쇼핑몰인 Westfield Shopping Centre와 백화점들이 나란히 포진하고 있는 쇼핑거리이다. 아이들이 다니는 가톨릭 스쿨은 David Jones 백화점 길 건너 맞은편의 성당 옆에 위치한다.
잠깐 지나가리라 했던 초기생각과 달리 아이 손을 쥔 채 젊은 엄마의 크리스마스 쇼핑이 시작되었다. 나는 예쁘고 다양한 색상과 재질의 크리스마스카드들 앞에 두 눈이 붙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