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없는) 엄마를 찾습니다~**

이름표가 붙은 제복을 입은 직원에게 가야 해

by 윤혜경



빨강, 초록, 파랑 그리고 금빛 색채가 어우러져 한껏 화려하게 고급 분위기를 뿜뿜 뿜어내는 선진국(?) 화점 매장에 들어선 30대 초반의 동양 엄마는 eye shopping (just browsing)을 넘어선 구매욕구를 움직거리는 아기자기한 선물들을 두 눈에 담았다.


이어서 그동안 낯선 곳에서의 정착에 기꺼이 시간을 내어주었던 고마운 이들을 마음속으로 세어가며 자그마한 선물들을 고르기 시작했다.


갓 구워 나온 수제 비스킷, 비스킷을 담을 수 있는 오발 (oval) 모양의 접시들, 예쁜 양초와 촛대, 작은 크리스털 설탕기 세트, Paper Knife 등등을 골라 계산대에서 선물용 포장도 부탁했다.


선물이 담긴 쇼핑백이 여러 개가 되면서 5살 아이의 손을 자연스레 놓았었을까? 아마도 아이가 엄마팔목에 매달린 쇼핑백에 점점 밀려서 엄마의 치마를 잡고 걸었을지도.

서울에서 청아한 고려청자와 절제의 미를 품은 이조백자에 대해 읽었던 설명을 떠올리던 중, 문득 옆에 함께 움직여왔던 딸의 부재를 감지했다.


미아방지를 위해 어린이날 한국의 백화점에서 받은 이름표를 어린아이 겉옷에 꼭 붙여서 외출을 한다 (뒤쪽에 집전화번호가 적혀있다), 그렇지만 유아원 목금반 다닌 지 7개월도 채 안된다.


10주마다 2주짜리 방학이 매달려서 영어를 겨우 익힐만하면 열흘 넘게 쉼을 반복하는 데다 , 주 2일짜리 유아원이니 영어로 소통은 어려울 게다. 4세 아이인 작은 딸의 의사소통수단인 언어능력에서 모국어인 한글은 말하기, 듣기만 가능하다. 공용어인 영어는 말하기도 듣기도 어림없다.


나와 연습한 표현은

"Thank you, Sorry, Excuse Me!"

에 더해서

"Toilet , please!"

"Water please!"

가 다인데...


아이가 영어로 < 엄마를 잃었다>는 설명을 할 수 있을까?


한국에서도 그렇듯이 그 당시에는 백화점에 가면 에스컬레이터가 올라가는 방향으로 각 층마다 흰 와이셔츠에 검은 정장을 한 직원들이 단정한 이름표를 왼쪽 가슴에 달고 서서 고객 안내와 안전을 담당하고 있었다.


어린 여아 둘의 엄마인 나는 외출할 때면 <혹시 엄마와 쇼핑센터에서 헤어지게 되면 울거나 당황하지 말고, 에스컬레이터가 움직이는 곳으로 가서 백화점 직원임을 알리는 이름표를 가슴에 매단 사람을 찾아가야 해. 친절하다고 아무나 따라가면 절대 안 돼!!! >하고 강조했다.


당시에 백화점에서는 매장에 쇼핑백을 놓아둔 채 이동 중인 손님을 찾거나, 어린아이와 헤어진 엄마가 아이를 찾는 안내방송이 심심치 않게 흘러나오곤 했다.


그런 방송을 들을 때면, 나는 자주 두 아이에게 그런 경우에는 꼭 '가슴에 이름표를 단 매장의 안내직원'을 찾아가서 '방송실'로 안내해 달라고 부탁하도록 설명해 주었다. 그래야 저렇게 매장 내 방송을 통해서 보호자를 만날 수 있는 거라고. 그럴 때면 두 아이는 고개를 끄덕여 내게 동의했었지만 실제로 엄마의 당부를 이해했을까?


당황하여 내가 지나온 매장들을 애써 기억해 냈다. 상품을 구매했던 곳뿐만 아니라 들러보기만 한 매장까지 일일이 확인 후까지도 아이가 보이지 않는다. 뒷머리가 쭈뼛해졌다. 내 얼굴이 상기되고 등뒤에 땀이 흐르기 시작할 즈음 백화점 매장의 천정에서 영어방송이 흘러나왔다.


"엄마를 찾습니다. 서울이의 엄마는 백화점 5층에 위치한 방송실로 오세요~**"


평소에 두 아이에게 강조했던 대로 나는 상행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가서 이름표가 붙은 정장차림의 안내 직원의 도움을 받아 처음으로 방송실을 찾아갔다. 안내방송 여직원은 작은 서울이 와 손을 잡은 채 백화점 안내 방송을 하고 있었다.


그 직원은 속으로 많이 놀랐을 어린아이를 위로하느라 엄마 앞에서


"당신의 딸 서울이는 참 똑똑한 아이네요."라고 격려해 주었다.


나는 잠시 이산가족이 되어 당황했던 마음을 진정하고, 도와준 백화점 직원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전한 뒤, 어린 딸을 꼭 안아주었다.


"어떻게 방송실을 찾아왔어?"


"쇼핑센터에서 엄마와 갑자기 헤어졌을 때는 까만 옷을 입은 직원에게 가서 방송부탁하라고 했잖아요."


"넌 영어를 못하는 데? 뭐라고 말했는데?"


"My Mom!!! 하고 말하는데 눈물이 나서... 저기 까만 옷 입은 백화점 언니가 '엄마랑 왔니?' 해서 고개를 끄덕거렸어요."


"그 말이 귀에 들렸어?"


"그런 말인 것 같았어요. 백화점 언니가 내 이름을 묻더니 엄마이름을 아느냐고 해서 알려줬어요. 음악이 시끄러워서 엄마가 못 들으면 어떻게 만나지? 생각하니 눈물이 나서. 그래도 엄마 만날 때까지 울지 않으려고..."


큰아이가 스쿨킨더를 다니면서부터 학교 영어를 배우느라 시달리는 동안, 2살 아래의 작은 아이는 쉬멍놀멍 어깨너머로 얻어들었다. 눈치껏 붙든 영어로 목금반 유아원에서 생존을 위한 의사소통은 가능한 수준으로 향하고 있었나 보다.


못난 엄마와 지혜로운 어린아이의 안전한 만남으로 평화를 찾았지만, 돌아보면 참 자주 "She was very clumsy"라는 표현에 딱 어울리는 엄마이다.


돌아오는 길에


"오늘 일은 아빠에겐 비밀이야!"


로 이미 놀란 어린아이의 마음속에 부담도 추가했다.


지금도 그때 구입했던 예쁜 메모지들을 보면 당시의 놀람이 전해져 온다. 복숭아, 사과, 딸기 등 과일 모양으로 잘라진 예쁜 메모지에 딸 둘의 육아일기를 써서 성장 앨범에 함께 넣으며, 혼자 최선을 다한다고 생각했던 나는 "부모학교"가 정말 필요했던 '대략 난감한 엄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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