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 앞이 닳았더라

십인십색인 것을

by 윤혜경


*씻어서 볶아 말리는 소금 사이에 거북이와 토끼를 올려두고 내년엔 꽃을 등에 올린 토끼처럼 큰 아이의 시간들도 밝아지기를 기도합니다.


시드니의 학교유치원 교실 바로 앞에서 오후 3:00 부모의 픽업을 기다리던 큰딸 사진을 찍어 한국에 계신 시댁과 친정에 보내드렸다.


눈썰미 깊으신 친정어머니는 국제전화 통화에서


"큰 서울이의 신발 앞이 많이 닳았더라. 어린것이 힘들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하셨다.


가톨릭 사립 초등학교 아이들이 주로 신는 구두였던 Sydney 백화점의 CLARK 매장에서는 아이들 양쪽 발 크기를 그 자리에서 재서 주문해 준다. 발볼이 넉넉하고 잘 맞는 대신 클라크 구두의 감촉은 성인남성의 드레스 슈즈처럼 다소 단단하다.


마침 남편의 서울 출장길에 평소 검소하신 서울 시부모님이 첫 손녀의 입학선물로 명동 에스콰이어 본점을 내방하여 보드라운 가죽구두와 1/2 사이즈의 바이올린을 보내주셨다(남편의 귀국 쇼핑 목록에 있었던 것이니, 돌아보면 죄송하기 짝이 없다).


엄마인 나는 큰 아이의 밤색 구두 앞부분이 허옇게 닳아지는 것을 보며, '어린아이들 걸음새는 구두 앞코를 많이 닳게 하나 보다.' 했다.


아이아빠는 자신의 검정 드레스 슈즈에 구두약을 칠하면서 서비스로 온 가족의 검은색 구두에 구두약을 발라 반짝반짝 윤을 내주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닳아진 어린 딸의 보드라운 밤색 가죽구두는 '여기는 아주 닳아 헤지는 중임'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언어가 해결되지 않은 채 낯선 문화 속에서 학교유치원생이 된 어린아이는 적응과정에서 허옇게 닳아 해진 밤색구두처럼 마음에 상처가 조금씩 올려지고 있었다.


만 6세의 아이 30명 중 큰 아이는 혼자서만 안 보이고 안 들리고 말을 못 하는 상태로 다니는 3중 장애의 학교생활 중 자주 열이 올라서 학교를 결석하곤 했다. 가끔은 학교에서 아이가 열이 많이 오르니 병원에 데려가라는 전화가 걸려오기도 했다. 유순한 아이는 언어학습 과정에서 의사소통의 어려움을 겪는 동안 그렇게 고열이 자주 올라서 학교 측에서 자주 조퇴를 시켰다. 한국에서의 꿋꿋한 의지의 <개근> 개념 대신 아프면 무조건 <보호자와 함께 집으로>이다.


"그 집은 병원비로 월급이 다 나가나 봐!"

하고 염려해 주는 지인도 나타났다.


초등학교 시기에 교사와 모든 학생들이 영어를 사용하는 교실에서 혼자서 눈치껏 처음부터 배워야 했던 큰 아이는 위축감과 낮아진 자아존중감에 시달렸다. 어느 날 하교 픽업 시간에 교실 입구에서 만난 담임교사가 내게 다음 주 수요일에 큰딸 차례인 <자랑거리 시간>에 아이가 아끼는 물건 중 1개를 보내달라고 하였다.


말하기 연습 과정으로 주 1회 2명씩 교실에서 < 자랑거리 시간>에 참여한다는 거였다. 큰 아이는 동급생 들 앞에 서서 마침 한국에서 온 1/2 사이즈의 바이올린을 등장시켰다. 자신의 키만 한 바이올린 케이스를 열고, 바이올린과 말꼬리털로 만들었다는 활을 보여주며 잠시 으쓱했었을까?


이후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 아이는 아이의 팔길이에 맞게 1/16 사이즈의 장난감처럼 작은 바이올린을 빌려서 시드니 시향 바이올리니스트에게 첫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큰 아이에게 1/2 사이즈의 바이올린은 오래오래 자랑스러운, 사이즈가 큰 장난감이 되었다.

'서울의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시드니까지 보내주신 선물이니까.'


바이올린을 피아노처럼 한 사이즈로 생각한 아이들의 엄마는 아이들 신체에 맞는 규격의 바이올린 사이즈가 다양함을 아이들의 바이올린 레슨에 동행하면서야 알게 되었다.


이왕이면 두 아이가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로 어우러지게 악기를 다르게 배우면 좋겠지만, 첼로는 운반성이 나쁘고 여기저기 옮겨 다니지 않고 한 곳에서 레슨을 끝낼 수 있도록 이동성이 좋은 바이올린과 모든 악기의 기본인 피아노를 두 아이가 함께 배우도록 했다. 두 개의 바이올린 연주도 가능할 테니.


성인이 된 큰 아이가 아파서 누운 시간이 길어지면서 그동안에 친정어머니의 팔순과 친정아버지의 85세 생신이 있었다. 이왕이면 가족 음악회를 열기로 하고 해수욕장 인근의 콘도미니엄 연회장을 예약하였다.

오래 케이스 안에 누워있던 2개의 바이올린을 음악사에 맡겨 수리를 했다. 제법 통통한 가격을 지불하고 넘어진 브릿지도 교체하고 줄도 바꿨다. 그리고 침대에 누워있던 큰 아이는 단기 바이올린 레슨을 받았다. 단체합주곡인 <Grand father's clock>과 <어버이 은혜>부터. 작은 딸은 콘도 연회장에 도착 후 한쪽에서 음을 맞추어보았다. 작은 아이가 대학 때 이후로 케이스에 누워있던 바이올린을 꺼낸 게 10년 만인가? 아버지와 남동생은 노래를, 나는 엄마와 하모니카를, 동생들과 조카들은 피아노와 플루트 파트를 맡았다.


당장 다가오는 축하공연을 위해 우린 오랜 우울함을 깨고 일어났다. 딸이 피아노나 바이올린을, 나는 피아노나 하모니카로 반주하며 둘이 노래를 부르는 시간도 생겼다. 그동안 좋아하던 노래, 하모니카, 피아노, 화장도 굽 높은 구두도 잊고 산지가 얼마인데... 심지어 매년 하던 피아노 조율도 수년째 생략이다.


모처럼 바이올린을 꺼내든 큰딸에게서 바이올린을 건네받아 보아 왔던 대로 어깨에 얹고 활을 대어 소리를 내어보니 귀 바로 옆에서 나는 소리가 아주 크다. 이렇게 연주자의 귀를 괴롭히는 악기였어? 연주자들이 한쪽으로 턱을 비틀어 올려 바이올린을 누르며 연주하는 틀어진 자세의 부작용으로 턱의 모습이 조금 변하는 것은 이해했지만, 귀에 울림소리가 이렇게 큰 줄은 처음 알았다.


거의 전공처럼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오래 배운 작은 아이는 바이올린 연습으로 인해 어깨와 등 결림 통증이 커져서 고등학교 시절까지 정형외과의 물리치료를 자주 받아야 했다.


교육을 전공한 엄마인 나는 아이들이 태어나서 기어 다니고 뒤집고 앉은 뒤 걸음을 떼고, 의사표현에 필요한 기본 말을 익히고, 입학준비로 한글을 익히고, 부침을 다소 겪으며 초 · 중 · 고를 뚜루루 마치고, 상황에 맞게 선택한 대학에 합격하고, 대한민국의 수많은 안정된 직장 중 한 곳에 취직되어 출근을 하며, 주말에는 종일 자거나 밀린 세탁 등 정리를 하고, 자주 그리운 친구들과 멋진 곳에서 모처럼 센 지출을 하는 생활을 레스토랑의 풀코스 식단처럼 생각했다.


심지어 안온한 일상의 감사를 인지하지 못하고, 해외살이 선배들의


"애들은 금세 적응해요. 걱정할 필요 없어!"


에 기대어 나는 낙천적으로 내 해외살이에 집중하고 있었다.


태어날 때도 아이들의 건강상태와 발육정도가 모두 다르듯이 성장과정도 마음의 단단한 정도도 십인십색임을 실감하지 못한 멀건 사람이 큰 아이의 고단함 중에 접하게 된 동물매개심리치료 연구과정에서 만난, 도움이 필요한 수많은 사람들과의 시간들 덕분에 그동안 책 읽기를 통한 간접경험을 깨고 일어설 수 있었을게다.


'동물매개읽기 (Animal-Assisted Reading)', '반려견에게 소리 내어 책 읽기 (Children Reading to Dogs)'는 도움이 필요한, 낮은 학습능력의 아이들에게는 평생 아이들 삶의 도구가 되는 문해능력의 기본인 읽기 능력 향상과 자아존중감 형성을 위해 눈 맞춤을 한다. 학교가 재미없는 아이들에게 학교에서 도서관에서 귀를 기울여주고, 무조건적으로 충성스러운 지지를 해주는 개와 성인 핸들러가 참여한다.


학교생활에서 뒤처지며 따돌림을 경험한 아이들에게 낮은 학습능력으로 인한 위축감이나 굴욕감이나 민망함 따위는 신경 쓸 필요가 없게 편안함을 제공하는 "반려견에게 소리 내어 책 읽기"는 큰딸과 나의 국내 ·외에서의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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