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말해주세요
처음 1989년 1월에 호주에 도착 후 서툴기 짝이 없는 영어 수준은 의사소통을 가로막는 단단한 투명벽이 되었다.
소위 원어민과의 생활영어 연습을 위해 SDA (제7안식일 교회에서 운영한 영어학원)를 새벽마다 운전기사와 안내양만 탄 첫 버스를 타고 바지런하게 출석했던 대학 시절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결혼 후 국내 뉴스에만 눈과 귀를 열어두었던 탓에 아주 멍멍 귀가 되었다.
호주 도착 후, 영어로 인한 불편함은 맥도널드에서 시작되었다. 다른 곳에선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가며 적응시간을 벌 수 있었지만, 맥도널드에서는 어린 두 아이의 보호자인 내가 직접 주문을 해야 했으므로.
일요일 호주 성당의 11시 가족미사에 참여했다. 미사 시간이 총 45분쯤으로 아주 짧고, 방식이 국내와 비슷해서 영어를 제대로 알아듣지 못해도 하느님께 제사를 올리는 미사 참여 후 외로웠던 마음이 편해지는 효과가 있었다.
미사직후 교회 바로 옆 맥도널드 매장에 가득 찬 브런치 주문줄을 향해 발걸음을 서둘렀다. 길게 늘어선 줄에서 드디어 나와 눈을 맞춘 종업원들의 빠른 질문에 할 말이 사라져 버리는 일이 반복되었다.
결국 '밀크 넣을 거니? 그냥 마실 거니? 우유 넣을 거니? 설탕은 넣을 건가? 안 넣는다고? 그냥 당뇨슈거 줄까?' 등의 끝없는 옵션이 따라붙는 커피 주문 대신에 집에서는 아이들 치아 상할까 봐 허락하지 않던 콜라나 사이다를 가족음료로 주문했다. 맥브런치에 아이들 취향 문의는 고사하고, 가장 단순메뉴인 핫케익이 일요일 브런치의 단골메뉴가 되곤 했다.
호주 침례교회가 운영한 영유아들을 위한 놀이방에서도, 집 앞 유아원에서도 그리고 동네 우체국에서도
"난 이곳에 금방 도착했어요. 영어가 아주 서투르니 천천히 말해주세요."
를 나는 단체해외여행 안내자의 깃발처럼 흔들고 다녔다.
1년 후쯤 시도한 운전주행시험에서도 형편없는 영어구사 실력에 몹시 미안해하며 시험관에게 편지 쓰듯
"I'm very poor at speaking English."를 반복했다. 시험관은 입과 손짓을 함께 하며 대답했다.
"No worries"
그날 나의 운전면허 시험관은 두 명의 남성이었는데 서툰 영어 탓을 할 수 없게 아예 우회전은 오른팔을 길게 뻗어서, 좌회전은 왼팔로 확실하게 방향을 가리키며 보여주었다. 마음속으로 '내 영어가 그 정도는 아닌데...' 했다.
하필 그즈음 호주 면허시험관에게 영어도 운전도 서툰 한국인들이 <전문 중개인을 통한 돈봉투 제공으로 운전면허를 취득한 사건>이 뒤늦게 터져 시드니모닝헤럴드의 머리기사가 되었다. 내가 신청한 시기부터 비상대책으로 시험관이 2명씩 동승하게 되었다, 앞 좌석과 뒷좌석에. 그리고 난 한국인이었다.
필기정도는 한 컷에 마칠 것으로 기대했던 것과 달리 첫 필기시험부터 실패했다. 한국과 호주의 운전규칙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해서였다. 예를 들어 한국의 왼쪽 운전석과 달리 호주의 자동차에는 차의 오른쪽에 운전석이 있어서 차가 좌측통행을 한다. 이에 맞춰 방향에 대한 이해가 필요했다.
교차로에서 눈앞의 신호등에 노란 불이 들어오면 다른 차들은 곧 나타날 빨간 신호등에 대비해 멈추기 시작한다. 다만 우회전 예정 운전자는 한국에서의 좌회전처럼 도로를 대각선으로 가로지르게 된다. 따라서 맨 앞에 선 차 1대에 한해 빨간 신호등이 켜지면 재빠르게 우회전하기 쉽도록 미리 노란 신호등에서 교차로 정가운데로 직진해 나가서 기다린다. 마치 교차로 한가운데에 고립된 섬처럼.
이윽고 빨간 신호등이 켜지고 이어서 사거리 교차로 중 초록신호등으로 바뀐 쪽의 차들이 움직임을 시작하기 직전에 교차로 한가운데서 섬 노릇을 하던 차 1대에 한해서 빠르게 우회전으로 빠져나가도록 되어 있다.
한국에서 빨간 신호등 앞에서는 '무조건 멈춤'으로 머릿속과 몸에 입력된 한국여자는 옆과 뒤에 시험관을 태운 상태로 노란 신호등에서 찰나에 눈치를 보다가 시드니 스타일로 교차로 한복판으로 직진하여 대기했다.
그리고 빨간 신호로 바뀌는 순간 엑셀밟기를 준비하던 한국 여자의 발이 순간적으로 브레이크로 옮겨가서 브레이크를 더 세게 밟으며 제대로 멈추었다. 노란 신호등이 빨간 신호등으로 바뀌는 신호 앞에서 오른쪽으로 회전하는 대신 머릿속에서
'빨간 신호등인데... 어떡하지?'
했다.
"Go! Go! What's wrong?"
옆에 앉은 시험관의 재촉을 듣고서야 정신이 났다. 교차로 정가운데 멈춘 차 속에서 '아이고, 난 죽었군.' 했다. 사거리에서 앞뒤좌우 모든 차가 나를 향해 달려오는 듯한 환영을 보며.
차 앞 뒤 번호판 옆에 커다란 'L' 자 표지를 붙이고 운전학습자의 면허시험 중임을 알리는 면허시험장 차의 외관 덕분에 사거리 중앙에서 동양 여자운전자의 노란 <Learners > 라이선스 차에 대한 예기치 못한 배려로 다른 차들의 도열을 받으며 우회전을 했다.
호주에 도착 후 길에서, 쇼핑센터에서 작은 '미안'에도 하루종일 주고받던 사람들 덕분에 맨 먼저 익숙해진
"I'm sorry!"
를 반복하며 고개도 따라 숙였다. 내 고개는 인사를 할 때마다 입에서 나온 말과 함께 자동으로 숙여지고야 만다. 심지어 운전 중에도... 몸에 밴 이 한국식 인사 버릇은 5년 후 호주를 떠나올 때쯤에야 멈췄다.
첫 주행시험에서 교차로 한 복판에 서서 우물거리는 내 차가 빠져나가고서야 다른 차들의 이동이 시작되었다.
<교통 흐름 방해 > 운전자!!!
나는 불안정한 운전, 균형감각 상실, 순발력 부족 등으로 표현된 '교차로에서 우왕좌왕'에 대해 -8점씩 중복 벌점을 받아 합격 기준인 -12점 이내를 훌쩍 넘긴 -16의 감점을 받으며 탈락했다.
도로주행은 나이만큼 연수가 필요하다는데... 서른 시간 도로주행 후 길로 나서라는 정착 선배들의 말에 공감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