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도 못하고 길 눈도 어두운 엄마
레몬(출처: 꽃나무 애기 Band, 탄생일 2월 6일, 꽃말: 성실한 사랑, 열의)
머리로 잘 외워서 보는 필기시험과 두 눈, 두 귀, 뇌, 손, 발이 동시에 보조를 맞춰 행동하는 도로주행시험은 난이도가 아주 달랐다. 그 당시 내겐 자동차운전은 종합예술 같았다.
인구밀도가 낮고, 출퇴근 시간 외에는 1시간 간격으로 다니는 버스 등 대중교통이 그다지 편치 않는 호주에서 자동차 운전을 어렵다고 쉬이 포기할 수도 없는 일이다. 3살, 5살 두 여자아이의 엄마인 내게 운전면허 습득은 체중이 덜어질 만큼 앉으나 서나, 자나 깨나 24시간 두통거리였다.
경사진 도로상에서 뒤로 미끄러짐 없는 상행 주정차 시도와 좁은 1차선 도로상에서 3회 방향 바꾸기를 시도하여 오던 길을 다시 가는 ' three-point turn'이 필수로 포함된 호주 도로주행의 실전 운전면허 시험은 멈출 수도 계속할 수도 없었다. 작은 사거리에서 신호등대신 한가운데 꽃동산이 배치되어 무조건 이미 현재 돌고 있는 차와 대기 중인 오른쪽 차에 양보하며 끼어드는 '부드러운 꼬리잇기'원칙의 'Round-about" 또한 빙글빙글 꽃동산을 돌아나가는 차들 속으로 내가 끼어드는 시점을 놓치기 일쑤였다.
만 3세인 작은 아이를 혼자 집에 두고 2시간씩 도로주행 운전연수를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 연수할 때마다 한국 사람이 별로 없는 이곳에서 누구네 집에 아이를 맡기지? 어떡해서든 최대로 눈썰미 있게 시험공부처럼 벼락치기로 빠르게 운전면허를 따야 하는데...
아주 나중에 미국등 선진국에서는 대체로 만 12세 이하의 어린 아동을 혼자 집에 둘 경우에는 아동 방임으로 간주되어 보호자에게 벌금형과 아동보호교육이 수반됨을 알게 되었다. 호주 또한 연령의 차이는 있었겠지만 비상시 스스로 대책을 세울 수 없는 중학생 이하의 어린아이들을 나 홀로 집에 있게 하는 일은 불법으로 전해 들었다.
다음 해 작은 아이가 2일 반 유아원 등록에 성공했을 때 학부모 미팅이 평일 야간에 열리게 되었다. 유아원에서 미팅이 진행되는 밤 6:30- 8:3,0 2시간 동안 하이스쿨 학생들을 베이비시터로 임시 고용 예정이니 아이와 함께 참석할 학부모는 미리 베이비 시팅을 신청하라는 알림장을 받았다. 비용은 해당 부모가 나누어 내기. 어린아이가 혼자 집에 남겨지지 않도록.
한국에서 맞벌이 부부가 아기를 위해 종일 필요로 하는 성인 육아도우미와는 다른 의미의 잠시돌봄의 청소년 baby sitter였다. 물론 성인교사가 관리감독을 한다는 전제하의 15세 이상된 고등학생들의 1회성 알바였다.
나는 이미 서울의 자동차면허시험장에서 코스 시험에 완벽하게 통과해서 어쨌든 한국운전면허증과 국제운전면허증을 동시에 소지하고 있었다.
큰 아이는 학교유치원에 출석 중이고, 만 3세 3개월의 작은 아이는 십자가 상, 성모마리아 상을 가슴에 품고 번화가에서 200미터쯤 살짝 벗어난 주택가 도로변에 위치한 1동짜리 아파트의 방 2개짜리 아파트 거실에서 기다리겠다며, 엄마의 자동차 운전면허습득을 응원했다.
엄마가 잠시??? 부재중에 혹시 불안하면 마음속으로 기도를 열심히 하면 된다고 어린 딸에게 찬찬히 설명해 주었다. 사실 우리 차는 남편 전용 출퇴근 목적의 Family car이고, 내 차가 따로 없는 상태에서 운전면허 시험 응시를 서둘게 된 계기는 작은 아이의 부탁에서 시작되었다.
아니 어쩌면 시드니 도착 후 우연한 기회에 인사를 나누게 된 아주 진취적인 이웃 덕분이다. 먼저 시드니에 자리 잡아 유학생을 대상으로 하숙을 하던 한국인 가정과 친해지게 되었다. 아직 30세 미만이지만 남성처럼 씩씩하고 목청이 좋은 그 댁 부인은 내 생각에 남자나 가능하다고 여겼던 커다란 봉고차를 운전하였다.
그녀는 운전을 특기인양 잘했다. 씩씩한 그녀 옆에 있으면 눈만 크고 매롱매롱한 한국여자도 저절로 힘이 생기게 하는 참 좋은 이웃이었다.
싹싹한 그녀는 하숙 중인 유학생 저녁 준비 전 2시간여를 아껴서 어린 두 아들과 수영 레슨을 다녔다. 수차례 사양에도 불구하고 봉고차를 아파트 앞에 대고 부릉부릉 기다리는 통에 미안함을 무릅쓰고 집에서 차로 30여분 거리의 수영장을 내 아이들도 주 1회 다닐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품 넓은 그녀의 도움으로 수영장 어린아이 레슨에 참여하며 내 마음속에 미안함이 자리해 가던 시간에 어린 두 아이의 마음에도 고마움과 미안함이 쌓아 올려졌나 보다.
"엄마도 **엄마처럼 운전 배우면 안 돼요?"
" 우리 엄마도 운전하면 좋겠다."
"엄마는 왜 운전을 못해?"
"엄마도 운전 배우면 돼짆아."
"엄마가 운전하는 차 타고 수영장 가고 싶다."
"수영 끝나고 샤워도 빨리 해야 하고, 아줌마 차 타고 다니니까 수영레슨 끝나고 더 놀지도 못하잖아. "
"엄마가 운전하면 수영장도 자주 갈 수 있고..."
질문이 많고 언어습득이 좀 빠른 편이었던 작은 아이는 제 엄마가 운전을 하지 못한 불편함을 이렇게 고백했다. 유치원생인 큰 아이도 고개를 끄덕이며 같은 생각임을 내비쳤다.
"나도 우리 엄마가 운전하면 좋겠다. "
그리고 시드니살이 1년이 되던 크리스마스 무렵에 환갑을 맞이하신 서울의 시부모님이 시드니를 4주 동안 방문하셨다. 한참 뜨거운 남반구의 여름인 1월에 일주일의 휴가를 받아 우린 부모님과 600여 km 떨어진 Coffs Harbour 휴양지를 방문했다.
자동차로 편도 6시간 거리 (우린 초행길에 편도에만 8시간 걸렸다)의 해변 휴양지를 처음으로 다녀오며, 강렬하고 건조한 호주의 여름 햇볕을 생생하게 경험했다, 선크림 개념도 익히기 전에. 장거리 운전자는 오롯이 남편이었고.
두 아이의 소원을 들으신 시부모님은 아이를 돌봐주실 테니 운전연수를 서둘러 받으라고 하셨다. 내심 비싼 레슨비에 놀라 몇 번의 연수로 기본만 익히면 씨잉~하고 운전면허시험에 합격할 요량이었다. 계획과 달리 운전자의 영어필기시험부터 첫 시험엔 실패했다.
필기시험에 통과하고 동반운전자 지도 아래 운전이 가능한 'Learner's License'를 받은 뒤, 부모님이 계시는 동안 면허증을 딸 수 있게 주 2회 각 1시간씩 도로주행 연수를 받았다. 2주 동안 총 4시간.
늘 즐거운 분위기의 운전연수선생은 30대 후반의 이태리 남자였다. 유머러스하지 않은 동양여자의 서툰 운전을 지도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연수선생이 드라이브를 해 주어 동양여자네 아파트 앞에 도착하곤 했다.
1시간 동안 운전대를 쥔 손에 잔뜩 힘이 들어갔던 동양여자의 긴장을 풀어주느라 레슨 후에는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Caro Mio Ben' (내 사랑하는 님이여) 같은 노래를 흥얼거리는데 아마추어 가수 같았다. 유머가 있고 노래를 잘하는 운전선생 덕분에 학창 시절 즐겨 불렀던 몇몇 노래가 외국노래 번안곡임을 알게 되었다. '작은 별'과 '제비'도 그이의 노래곡목에 들어있었다.
호주에서는 보호자 없이 어린아이 혼자 집에 두는 것은 금지사항이다. 더구나 혼자 현관문을 열 수 없는 키 작은 어린아이를 집에 놓아두는 건 혹여 화재발생 시 키가 작아 현관문을 열고 자력으로 탈출하기 어려운 위험이 있으므로 절대 혼자 집에 놓아두면 안 된다. 이러한 행위는 이웃이 아이의 부모를 경찰에 고발할 수 있는 중한 죄였다. 물론 당시에는 대부분의 시간을 어린아이들과 안전하게 집에만 있었고, 한국인 지인과만 알고 지내는 집콕 생활이어서 전혀 알지 못했다.
처음 예정했던 기간 안의 운전면허 습득은 실패했다. 그리고 시부모님은 걸핏하면 고열에 시달리던 어린 두 아이와 운전도 못하고 길 눈까지 어두운 며느리로 인해 평일에는 집에서만 머무시다가 귀국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