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호주 운전면허시험 합격이 필요하던 시기는 호주사람들이 대화 중 대한민국의 Samsung삼성을 일본의 Sanyo산요로 알아들을 만큼 삼성전자가 일어서기 전이었다. 심지어 남편이 근무하는 시드니 주재 회사의 현지 직원조차 대한민국이 지구본상의 어디쯤 위치하는지도 헤멜만큼 국가인지도가 지금보다는 훠얼씬 낮았던 시절이다.
당시 내겐 한국운전면허증이 있었다. 국내 운전면허 시험장의 S, T자 형태 등 몇 개의 제한된 표지 내에서의 테스트와 해저드가 설치된 운동장 외곽을 한 바퀴 돌아오는 시험 통과 후 합격증을 받는 방식이어서 내 경우에는 실제적인 도로주행 연수가 추가로 필요했다.
물론 나는 한국운전면허증에 더해서 국제면허증까지 교부받아 서류상으로는 호주운전면허증을 딸 때까지 3개월 정도는 국제운전면허증으로 운전이 가능하다. 문제는 도로주행경험이 전무했다.
그런데 왼쪽에 운전석이 있는 자동차가 도로에서 우측통행을 하는 한국과 달리, 호주는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다. 그리고 좌측주행 도로이니 더욱 호주에서의 도로주행 연수가 필요했다. 잘못하다간 중앙선이 없는 좁은 길의 코너를 돌면서, 동요로 배웠던 <차들은 오른쪽 길, 사람들은 왼쪽 길>의 마법을 실행하여 마주 오는 차와 정면충돌사고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한밤중에 지인의 집에 다녀오느라 Turramurra의 꼬불꼬불하고 호젓한 산길 코너를 남편 차기 도는 순간 반대편에서 빠르게 돌아오는 차와 정면충돌할 뻔했다.
너무나 순식간이어서 운전자인 남편도 옆좌석의 아내도 클랙슨은 커녕 비명도 못 질렀다. 커브를 도는 순간 난데없이 오른쪽 차선으로 들어선 우리 차를 피해 상대방이 귀청이 달아나게 클랙슨을 울리며 현란한 곡예운전으로 바람처럼 사라졌다. 그리고 나는 뒷북 비명을 질렀다. 상대방의 순발력이 우릴 살렸다. 놀란 남편도
"그 사람 운전 정말 잘하네!"
라고 중얼거렸다. 상대 운전자도 심장이 쫄깃했을 것이다.
심지어 유럽에서는 비슷한 문제로 한국에서 방문한 부모님을 태우고 나들이에 나선 한국 교민의 비극적인 교통사고 뉴스도 있었다. 이후 차선 구분이 없는 한적하고 좁은 호주 도로를 지날 때면 초등학생처럼 자주 좌측차선으로 가는 중인지 눈을 크게 뜨고 오른팔과 왼 팔을 기준으로 구분해서 좌우를 재확인했다.
운동을 즐기지 않는 편인 옆지기는 한국에서 나와 같은 방식의 운전면허시험장인 운동장 연수 후 운전면허증을 따고 곧바로 운전을 시작했다. 여고 시절 내내 체력장에서는 연습은 커녕 누워있다 달려 나가도 윗몸일으키기와 철봉매달리기는 중 3 시절 담임선생님의 맹렬 지도 덕분에 만점이었다. 나는 수류탄 던지기, 달리기, 넓이 뛰기, 왕복 달리기와 오래 달리기 등 항목에서도 교련선생님 표현대로 <날으는 특급>으로 불렸다.
날렵함과는 거리가 있지만 두어 번의 시도로 면허시험 도전에 금세(?) 합격한 그이는 휴일에 차가 있는 후배와 남산길을 돌며 주행 연습 몇 차례를 마치고 공항까지 손님마중도 하기 시작했다.아마도 누군가에게 미룰 수 없는 상황이 날렵하지 않은 그이를 <빠른 운전 학습자>로 만들었을지도. 대입 체력장이 절대 특급은 못되었을 남편은 호주에서도 마치 수년 운전경력자처럼 익숙하게 차를 운전했다. 심지어 차를 수리 중일 때 카센터에서 임시로 제공한 스틱운전도 곧잘 했다. 자신은 스틱으로 시험을 치렀기 때문이라나.
그 시절 한국에선 스틱으로 시험 봤었으니 나도 스틱을 지그재그로 밀고 당기며 운전하는 시험을 치렀었다. 이후 나는 물 속을 더듬는 듯한 어중간한 멈춤의 스틱 운전은 아예 시도도 하지 않았다.
자동은 지루하다며 멋나게 스틱차를 사서 운전하는 사람도 가끔 있었지만 남성에게나 해당될 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시드니 수영장에 데리고 다녀준 품 넓은 석이엄마는 스틱으로 된 봉고차 운전을 정말 잘했다. 차가 없으면 이동이 난감한 시드니에서 운전면허 합격직후부터 몇몇 집을 돌며 차도 면허도 없는 아줌마? 들을 태워 시속 30km로 조심운전하며 영어성경공부 클럽까지 안내해 준 순아엄마도 있었으니 준비된 나의 느린 면허획득은 내가 겁쟁이인 탓도 있다.
엄마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싶다는 만 3세 된 딸아이의 품에 십자가상과 성모마리아 상을 안겨주고 클래식 음악을 틀어놓고 마음의 평화를 요하는 기도를 부탁하며 집을 나왔다.
한국을 2살반에 떠나 호주에서 만 3살이 된 딸아이는 집의 화장실을 이용할 때면 한국보다는 좀 크고 더 높은 편인 성인 변기에 어린이용 발받침을 딛고 올라가야 했다. 내가 나가기 전에 미리 화장실을 들르게 한 뒤 혹시 엄마 없는 동안에 쉬가 마려우면 발받침이 밀려나지 않게 <조심해서 발받침을 딛고 올라가 돌아앉기>를 설명해 주었다.
나는 기대와 달리 필기시험에 단번에 붙지 못했다. 필기시험 합격 후 도로주행연습 8시간 (8회) 연습 후 빠른 합격이 목표였다. 조급한 마음과 달리 실전영어에 능숙하지 못한 30대 초반의 엄마가 호주 운전면허증 시험에 합격하는 길은 예상외로 고단했다. 운전면허시험을 4전 5기로 경험하다니.
일단 1980, 90년대 초반의 한국에서의 운전면허시험과 달리 호주에서는 필기시험 후 곧바로 도로에서 운전이 가능한 지를 테스트하는 주행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이미 재수를 하는 동안 필기시험 준비를 반복한 탓에 도로표지판이나 운전 주의사항에 대한 암기는 더 외울 수 없을 만큼 잘 기억하고 있었다.
말이 끌던 마차도로를 거의 그대로 차량통행도로로 만들었다는 시드니는 자연환경 훼손을 최대로 줄이는 도로개발 탓에 자연보존이 잘 되어 있어 아름다운 도시인 반면에 자동차 통행에 도로 폭이 다소 좁은 편이라고들 한다. 반면에 땅이 넓은 탓인지 차체들은 당시에 한국보다는 훨씬 큰 편으로 우리 차도 3000cc가 넘는 미국 브랜드 Ford였다. 정말 한국의 1800cc, 2000cc의 작은 차체가 간절했다.
옛 도로 위에 유난히 큰 승용차를 운전하노라면 영락없이 옆차와 부딪칠 것 같아서 자꾸 한쪽으로 붙여 운전하게 되고 차선침범 위험을 경고하는 뒤차의 경적이 울린다. 운전시험 중 주변 차들의 경적을 유발하면 감점 요인이 된다.
<Three Point Turn> 또한 만만치 않았다. 시험감독관은 좁은 1차선 도로 같은 골목길로 안내해서 단 3회의 앞뒤 왔다 갔다로 방향전환을 통해서 다시 돌아 나오는 기술을 요구한다. 공간지각력이 둔한 초짜 운전연습생에게는 부담스러운 기술이다. 운동신경과 관련한 아둔함을 생생하게 자각하는 일도 처음이었다.
<평행주차>는 더더욱 난감했다. 길거리의 일직선상에 그어져 있는 도로 한편에 길게 그어진 1자 주차공간에 그림처럼 착 넣어주는 평행주차기술의 난도가 높았다.
처음엔 목표 빈자리에 넣을 수 있도록 앞차와 1미터 간격으로 평행하게 1m 정도 앞서게 나가 옆차의 백밀러와 45도 각도로 선다. 절반쯤 후진 후 한 바퀴를 풀고 이후 핸들을 살살 풀면서 차를 도로 가장자리 턱에 뒤쪽 왼 바퀴가 닿을락 말락 한 상태까지 뒤로 후진한다. 다음에 다시 앞쪽으로 살살 전진하며 핸들을 풀어가며 공간을 확인하고, 다시 후진으로 자리에 안착한다.
옆좌석의 운전슈퍼바이저가 알려주는 공식대로 몇 차례의 반복 후 착 들어가서 주차가 된다. 수학문제 풀기처럼 부단한 연습이 필요했다. 그리고 연습한 만큼 확실히 보람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로커를 통한 한국인 봉투뇌물사건 이후 앞뒤로 2인의 시험관이 동승하게 된 주행시험에서는 마음이 사시나무 떨듯 떨려서 공식을 두 번씩 되뇌며 구구단 연습하듯 머릿속은 바쁜데 눈과 손의 협조가 느려진다.
한국에서 빨간 신호등이 켜지면 자동으로 브레이크를 밟는 습관이 호주의 운전면허 시험 중에도 문제가 되었다. 시드니에서는 동시 신호가 없는 사거리 교차로에서 노란 신호등이 켜지면 우회전 차량선의 맨 앞차는 미리 한가운데의 섬에 나가있다가 빨간불로 바뀌는 순간 우회전해서 갈 수 있다.
나는 유치원 연령부터 빨간불을 보면 머릿속에서 <멈춰!>를 명령하는 학습이 몸에 배어서 빨간 신호등이 켜지는 순간 발이 브레이크 위로 이동한다. 그렇게 발이 왔다 갔다 하는 동안 차가 정숙하지 못하고 움찔거려서 <자신 없음>으로 감점을 받곤 했다.
사거리 교차로에서 노란불이 켜지면 도로 한복판으로 이동하고 신호등에 빨간불이 들어오는 순간 쑥 빠져나가는 신기술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한밤중에 남편과 나가서 반복 연습을 했다. 그리고 초짜운전자에게 목숨을 내맡긴 남편의 염려와 잔소리를 한 바가지도 넘치게 들었다. <커다란 남자가 좀스럽기를...>을 마음속으로만 고시랑댔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