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나 홀로' 두고

아동학대

by 윤혜경



운전교습을 마치고 아파트 입구까지 데려다준 운전면허 슈퍼바이저의 차에서 내리는 순간 먼 데서 아이 울음소리가 슬핏 들렸다. 쿵쿵대는 심장소리를 들으며 달려갔다. 아파트 문을 키로 열고 들어서니 울음소리는 우리 집 화장실 쪽에서 들려 나왔다.


만 3.5세의 작은 딸이 변기에 앉기 위해 발판을 딛고 올라가서 몸을 돌려 앉던 중 발판을 건들었나 보다. 아이가 사용할 수 없는 위치로 발판이 밀려나 있다. 변기에 앉은 상태에서 바닥을 볼 수 없는 아이는 소변 후 대롱거리는 발로 더듬어도 발판이 감지되지 않아서 당황했겠다.


요즘에야 아이용품들이 다양하지만 그때만 해도 어른용품에 아이들이 맞춰 살던 시기였다. 호주 성인의 키에 맞춘 높은 성인용 변기에서 뛰어내리지 못하니 일을 마친 후에도 변기에 빠지지 않게 변기판 양쪽을 작은 손으로 붙잡고 엄마를 하염없이 기다리다 서러운 울음이 터졌을게다. 얼마나 오래 그런 자세로 버텼을까...


꼬옥 안아주며 <네가 집 앞 유아원에 들어가게 된 다음에 엄마가 운전시험을 보면 어떨까?> 하고 물었다. 마음속으로는 조금만 더하면 될듯한데 지금 힘듦을 못 견디고 멈추면 임시로 붙은 운전 관련 운동신경이 다시 바닥에 떨어질 테고... 내년엔 주행연습 30시간을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할 듯해서 '아니에요, 엄마.'의 대답을 기대하며.


아이는 흐르는 눈물을 작은 손등으로 훔쳐내더니 가만히 생각 후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엄마가 운전면허를 딸 때까지 혼자 기다려보겠다>고 답했다.


그렇게 호주운전면허증은 손에 닿을 듯 말 듯 어른거리며 모녀의 애를 태웠다.


부모의 교사기질이 유전된 나는 또래친구가 귀한 해외 환경에서 내 아이들과 놀아주기에 특히 노력했다. 하여 운전면허증 취득을 위한 내 행동 자락이 일종의 아동학대와 관련되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주 1회 도서관 <책 읽어주기 할머니 프로그램>에 참여해서 아이가 도서관 분위기에 적응할 수 있게 돕고, 달걀을 삶아서 껍질에 그림을 그리고 색종이를 찢어 붙이게 돕고, 종이접기를 같이하고, 모래놀이를 같이 하고, 줄넘기 줄을 건들건들 흔들어주며 아이가 한발 두 발로 건너기 운동을 돕고, 어린이 프로그램을 함께 시청하고, 유난히 질문이 많은 아이에게 최대로 성의껏 답을 하는 자칭 '노력하는 엄마'인데(그리하여 내 감정의 기복이 위태롭긴 했다)...


운전면허시험 관련 악몽이 밤잠을 설치는 일로 이어지곤 하던 그 시기에 우리 아파트의 Secretary (관리자)가 올라왔다. 몇 번의 인사를 주고받은 후 그녀는 75세로 딸과 아들이 멜버른과 해외에 거주 중이어서 혼자 살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하며 귀여운 아이들과 집에 놀러 오라고도 했었다. 이후 그녀는 내 아이들에게 다정하게 말을 걸어주곤 하던 아래층 주민이다.


그녀는 1층에서 나 혼자 노란 운전연습 차를 타고 떠나는 장면을 목격했었나 보다. 내게


"혹시 어린아이를 혼자 집에 둔 채 외출하나요"


했다. '운전연습 때문에 그런 일이 생긴다'라고 답하니 '주변의 지인에게 안전하게 맡기고 다녀오면 좋겠다'라고 했다. '어려우면 자신이 맡아줄 수 있다'라고.


사실 엄격한 인상의 그녀는 다양한 활동에 참여 중으로 그녀의 귀가시간에 큰 아이를 픽업해서 데려오는 길인 나와 아파트 입구의 가구별 편지함 앞에서 만나곤 했다. 그리고 허리수술을 받은 그녀가 떨어뜨린 우편물을 '허리 굽혀 줍기 어려우니 도와달라'는 요청에 이후부터는 그녀가 바닥에 떨어뜨린 편지를 자주 주워준 적이 있는 우호적인 사이이다.


기숙사 사감처럼 예고 없이 나타난 그녀는 미소를 띤 채 부드러운 톤으로 '예기치 못한 화재발생이나 외부에서 도둑이 드는 경우에 순발력이 부족한 어린아이들은 자신을 보호할 능력이 없으므로 아주 위험하다'는 설명을 덧붙이며 내 아이의 안전을 염려했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상황에 갑자기 머리가 아파졌다.

아이의 안전....

운전면허시험 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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