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머타임이 시작된 날

코리언 타임

by 윤혜경


오스트레일리아는 러시아, 캐나다, 중국, 미국, 브라질에 이어 세계 6위의 면적 크기로 남한의 약 77배에 달하지만, 인구는 한국의 절반정도이다. 한국의 인천공항에서 10~11시간의 비행시간이 걸려서 도착되는 오스트레일리아의 시드니에선 '여름의 일광 절약 시간제(Day Light Saving Time, DST., 미국)'인 서머타임(Summer Time, 영국)이 실시되는 시기가 있다.


영국 그리니치 천문대의 경도 o⁰ 표준시(GMT)를 중심으로 동쪽의 대한민국과 서쪽의 미국은 밤낮이 반대로 움직이며, 경도 15도마다 동쪽으로는 1시간씩 더해지고 서쪽으로는 1시간씩 빼지는 시차가 발생한다.


반면에 북반구에 위치한 대한민국(한국)과 남반구에 위치한 오스트레일리아(호주)는 지역에 따라 1~3시간에 걸친 시차도 발생하지만 무엇보다도 계절이 반대인 특징이 있다. 겨울에 앞선 가을이 예쁜 한국의 10월에 호주는 여름이 시작된다.



Sydney Harbour Bridge(길이 1,149m, 높이 134m, 1923년 7월 착공, 1932년 3월 개통)

(사진 출처: https://m.blog.naver.com/irene2799/221372226242)




호주에서는 매년 10월 첫째 주 일요일 새벽 2시를 3시로 바꾸면서 서머타임이 시작된다. 일요일 새벽의 시간조절은 서머타임 실시의 첫 월요일의 시간착오를 줄일 수 있는 지혜이다. 그리고 다음 해 4월 첫째 주 일요일 새벽 3시를 2시로 맞추면서 서머타임이 종료된다.


새끼손톱 크기의 연한 분홍빛 벚꽃이 동네마다 이른 봄을 열고, 노란 개나리꽃과 '산에 산에 진달래'에 이어 전국에서 철쭉축제가 열리는 한국의 봄 사월이면 호주는 가을을 맞이하고 겨울을 준비한다. 사실 확연히 구별되는 한국의 사계와 달리 호주에서는 여름과 겨울은 확실하지만, 일상 하루 중 기온차가 크다. 우스갯소리로 호주의 하루에 사계(four seasons)가 들어있다고도 한다.

Sydney Opera House(1958년 착공 1973년 10월 길이 1,149m, 높이 134m, 1973년 10월 엘리자베스 2세 참여 준공식, 최종공사기간 16년)

(사진출처 https://heritage.unesco.or.kr/)



1989년 1월 큰 아이는 만 4세 3개월에 도착한 시드니에서 엄마랑 눈 맞춤 시간들을 보내며, 집 앞 유아원의 빈자리를 위해 막연한 대기를 하였다. 시드니 감리교회의 주 1회 놀이방 2시간 프로그램에 참여하던 중 유아원에 빈자리가 생겼음을 7월에 통지받았다.


한국에서 한글 그림동화 전집을 사서 엄마와 사이좋게 이야기를 나눈 경험뿐인 큰 아이는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가 전혀 불가한 <영어 비문해자> 상태로 목금반 3/4분기와 4/4분기에 유아원을 다니게 되었다.


몸짓언어(body language)를 통한 의사소통과 외모가 낯선 집단에서의 생소함은 여린 아이의 마음에 스트레스를 키웠나 보다. 목요일 오전 9시-오후 3시까지 하루를 있다 오면 자주 그날 밤부터 고열이 올라 날이 밝은 대로 9시를 기다려 병원으로 갔다. 큰 아이에게 하루가 아쉬운 영어 배우기 시간인 유아원의 금요일은 잦은 결석일이 되곤 했다.



(사진 출처: 위키백과. 사진 by Bjarte Sorenson, accessed 2021. 05. 01)



이웃들은 '그 집은 아빠 월급을 모두 병원에 갖다주네.' 라며 위로했다. 가정의는 대부분 무료였으나 더러는 기본 30A$ 정도였다. 당시 병원에서 약까지 주던 한국과 달리 이미 의약분업이 되어서 약국을 들러 처방전을 내밀고 약을 별도로 구입하는 비용도 부담스러웠다. 그리고 전문의(special doctor) 병원 방문은 당시에도 회당 80~A$100 + 정도 했다.


될수록 편도선 절제를 하지 않으려던 사회적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큰 아이의 경우 한국에서도 고열로 인한 입원을 여러 번 경험하며 편도선 관리에 어려움이 있었다.


호주에서 큰 아이를 주욱 치료해 온 가정의의 의뢰로 만난 전문의는 부어오른 편도선이 40도에 육박한 고열을 반복하며 폐에 염증을 끌어들이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큰아이의 잦은 고열상황을 지켜보던 전문의는 15세 이후의 수술계획을 바꾸어 아이가 너무 어리지만 현재 상황에선 <편도선 제거수술이 최선>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개업의인 그 전문의의 집도로 대학병원에서 5살에 편도선을 제거한 후로는 큰 아이의 병원 출입이 실감나게 줄어들었다.


(사진 출처: 위키백과. 사진 by Diliff, accessed 2021. 05. 01)



어느 날 학교유치원(School Kindergarten)에 다니는 큰 딸이 같은 반 호주 남자아이의 생일파티 초대장을 받아왔다. 학년당 2개 학급의 자그마한 규모인 가톨릭 스쿨에서 무려 30여 명의 학급 전체 인원을 단독주택 거주지로 초대한 남학생의 생일파티에 유일한 한국 학생으로 참석하기.


큰 아이 덕분에 소아과 병원과 관련된 표현에만 귀가 열린 외국인인 내게 서머타임은 월요일 아침에 출근하는 옆지기와 두 아이들의 학교등교시간부터 시작되는 개념이다. 바로 생일파티 날인 일요일 아침부터 우리 집을 제외한 시드니 전역에서 서머타임이 시작되었다.


전날인 토요일 밤의 손님초대로 16인분의 한국 음식을 준비하느라 이미 2박 3일로 바빴던 터라... 몸도 마음도 고단한 상태로 새벽까지 뒷정리를 하고 잠자리에 들며, 덩달아 일요일 아침 시작이 늦어졌다.


우리 집 벽시계 기준으로 일요일 생일파티 시간인 오후 2시에 친구네 집에 데려다주었다. 그리고 5시에 픽업을 가기 직전 켠 TV뉴스를 보고서야 '아차' 했다. 서머타임에 맞추지 못한 우리 가족의 4시 30분은 이미 5시 30분이니 곧장 출발해도 도착시간은 6시가 된다. 아시아 엄마는 도착도 픽업도 1시간이나 사전양해 없이 늦어진 상황이다. 내 아이는 얼마나 뻘줌했을까? 생일파티를 마치고 그 아이의 가족끼리 저녁 6시 축하 외식이라도 있다면 ㅠㅠ.


이미 아이들은 1시간 전부터 부모들과 함께 각자의 집으로 떠나기 시작하고, 내 아이만 서머타임을 망각한 엄마로 인해 1시간을 그 집에서 혼자 뎅그마니 머물고 있는 상황이라니. 전화로 사연을 설명하고 부리나케 차를 운전했다.


생일 주인공의 엄마에게 서머타임 시작일의 늦은 픽업에 대해 서툰 영어로 미안함을 반복해서 전했다.


"조부모님과 생일축하는 집에서 가까운 레스토랑에서 해요. 준비하고 천천히 출발하면 되니 걱정하지 말아요."


호주엄마는 외국인인 나의 어깨를 도닥이며 민망함을 덜어주었다.

큰 아이는 파티 시작부터 서머타임을 인지하지 못한 엄마로 인해 1시간이나 늦게 도착했던 거다. 부모들이 자식을 픽업해 가는 행렬에서 소외된 채, 핸드폰도 없던 시절의 큰 아이는 엄마를 하염없이 기다리며 얼마나 멋쩍었을까? 대책 없는 엄마를 향해 목이 길어졌을 유순한 어린 딸을 데리고 나오며 생활정보 나누기가 어려운 타국에서 문득 외로워졌다.


"서울아, 미안해, 엄마가 어젯밤 벽시계 돌려놓는 걸 깜박했어. "

"괜찮아요. 친구엄마가 꺼내 준 '퍼즐 맞추기'를 하면서 기다렸어요."


돌아보면 그 당시 영어로 의사소통이 서툴고, 이주한 사회의 거주국 문화를 처음으로 배우는 중인 젊은 엄마의 어린아이 보호자 노릇은 2년째임에도 이따금 흔들흔들했다. 한국에서처럼 다문화 가정을 위한 국가적인 배려는 꿈도 꿀 수 없던 시대에 temporary resident 가족의 좌충우돌.


그렇게 나는 시드니언들에게 <코리언타임>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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