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지자체 반려견 문화 축제에 참여하여 배정된 파란 텐트 부스 안에서 동물교감치유 중 '리딩독 프로그램' 시연을 맡았었다. 동물교감치유에서는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내담자'의 즐거움과 '도우미견'의 동물복지 모두 중요하다.
이에 준하여 휴식시간이 일정 시간 간격으로 배치되도록 정해진 시간에 맞춰서 일주일 전에 사전 예약을 받았다. 그래야 빈 시간 방문객을 받아 무리 없게 프로그램 소개 시연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오전에 행사 전문 진행자의 마이크를 이용한 분위기 띄우기 노력으로 부스 안의 우리 팀도 흥겨워지며 비트박자에 몸이 건들거렸다. 광장 중앙에 설치된 행사무대를 중심으로 저절로 즐겁고 상금이 주렁주렁 걸린 '반려견 운동회'와 '정답 맞히기 게임' 등에 반려견과 내방객들이 몰려들었다. 광장을 빙 둘러선 텐트 부스에는 안내자들만 서있는 모습이다.
전북 익산에서 새벽에 출발한 <한국동물매개심리치료학회> 지원팀은 도우미견과 함께 온 작은 밴에서 대형 모니터 화면, 노트북, 아동을 위한 문방구 용품, 팸플릿. 강아지 인형들을 내렸다.
내 차에서도 미니카펫과 하얀 원형러그를 내려서 책상 옆에 깔았다. 교실은 아니지만 내담자들의 마음이 포근해지도록. 전날 겪은 추위에 대비하여 팀들의 따뜻한 차를 위한 전기커피포트도 준비했다. 자취생 살림살이 같다. 열심히 준비한 자료와 동물인형들로 텐트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었지만, 노쇼로 인해 기왕의 시간표가 힘을 쓰지 못했다.
더구나 갑작스러운 늦가을 햇살은 전날과 달리 겨울왕자 외투라도 벗길 기세다. 우린 외투를 벗고도 더워서 손 부채질이 필요했다. 덩달아 마음도 더워서 노쇼의 위력을 실감한 오전이었다.
이때 더위를 뚫고 옆 텐트 교수가 주문해서 보내준 아이스아메리카노(아아)가 진가를 발휘했다.
' 아아'가 이렇게 맛있다니...'
사계절 '커피는 따뜻하게'인데 이날 처음 맛본 '아아"는 늦가을 더위를 날려준 고마움 그 자체였다. 덕분에 점심 후 '아아'를 한 손에 핸드폰처럼 든 사무실 주변 젊은이 행렬을 떠올리며 고갤 끄덕였다.
다행히 오후에는 참여연구진들과 자원봉사자들의 활약 덕분에 내담자들로 북적거려서 귀한(?) 리딩독 프로그램 안내를 할 수 있었다. 가져온 자료들에게 민망하지 않아 좋았다.
명절마다 뉴스 한 자락을 차지하는 비행기 티켓과 KTX 티켓 예매자들의 무대책 노쇼는 실제로 경제적인 피해를 준다. 꼭 필요한 이용자들의 발까지 묶으면서.
'왜 그러고 싶을까?'
나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들을 무례하다고 생각하며 '쯧쯧'거렸다.
적어도 내가 기억하는 '나'라는 사람은 일단 아파도 결석은 큰일 나는 일이므로 졸업 때 우등상과 6년 개근상을 목표로 목발 짚고도 학교를 갔었다. 해외에서 거주할 땐 감기기운이 있는 어린 딸을 학교에 보내고 학교담당자의 전화를 받았다.
"아이가 아프니 지금 데려가세요. 아플 땐 푹 재우는 게 좋아요."
호주는 기본적으로 당사자의 편안함을 존중한다. 그렇게 유아기부터 5년을 적응하고 두 아이가 1학년과 3학년 말에 귀국했다. 당사자의 편안함을 존중하다가 서울 초등학교에서는 눈치가 보였다. 하여 발목에 부목을 댄 상태에서도 학교에 보냈다. 1994년 일이니 부모와 평일에도 여행이 가능한 초등생의 현재와는 많이 다를 때이다. 돌아보면 나는 늘 뒷북을 쳤다.
또, 친구들의 제안을 대체로 따른다. 여러 번 생각하고 검토하느라 귀한 시간을 써서 나오는 속 깊은 제안에 뭐 어려운 일이라고 머뭇거리겠는가? 지금은 승용차보다는 될수록 약속을 정확하게 지키는 지하철을 이용하고 대략 약속시간보다 30분 전에 도착하여 화장실에 들러 손도 닦고 여유 있게 나타나 인사를 나누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나이 드니 여유롭게 오전과 오후로 일정을 잡을 수 있어 좋다. 될수록 누구나 편안하게 하는데 일조하고자 한다. 그렇게 온화하고 여유로운 공기가 흐르는 사회가 좋다.
참 비경제적이지만 즐거운 미팅들이 이어지며 연 3주째 일정이 빡빡하다. 매니저 역할을 해주는 기업가인 젊은 브레인의 조언대로 쉴 필요가 있는 일정이 이어졌다. 눈꺼풀이 여러 날 무겁더니 어제 귀가 후부터는 몸살증세가 살살 퍼지는 중이다. '폐렴과 독감 예방주사접종 확인이 안 된다'며 '꼭 맞으라'는 보건소의 고마운 핸드폰 메시지도 도착했다.
'지하철 옆자리에서 기침을 심하게 하던 사람이 있었는데... '
'지하철 내 앞에 선 사람이 기침을 했었는데...'
'혹시 요즘 조용히 퍼지고 있다는 코로나인가?'
기어이 남 탓을 하고야 만다.
서울쥐로 반골기질인남편은모범생처럼 보건소의 메시지를 잘 따른다. 그리고 내게도 조용조용 확인하며 따를 것을 권한다.
"나라가 잘 살게 된 덕분에 국민을 이렇게 챙길 수 있는 거요. 얼마나 고맙소!"
몇 년 전 피로가 약간 누적된 상황에서 다소 좋아지기에 겨울을 앞두고 독감 예방주사를 맞았다. 그이의 권유대로. 남편은 '무탈하다'는 독감예방주사 덕분에 나는 4주간 기침을 수반한 고약한 독감을 치료하느라 덤으로 고생깨나 했다. 각종 검사를 하고 종합병원 신세를 졌다. 담당의사 선생님은 독감의 종류가 많다며 예방접종균은 아니지만 다른 독감균이 검출되었다는 소견을 전했다.
전문가가 아닌 내 입장에서는 분명히 독감예방주사를 맞은 후 독감증세로 녹다운되어 병원신세를 진 거였다. 그런 내 질문에 의료진은 '예방주사는 몸 상태가 정상일 때 맞는 게 좋다.'라고 비켜선 조언을 했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나는 코로나 19 예방접종 때마다 조금 긴장했다. 그러나 착한 시민인 남편의 주장대로 국가의 국민을 위한 노력에 감사하며 백신을 맞았다. 10년이 넘게 걸리는 신약 실험단계를 줄여서 급하게 실행이 허가된 코로나19 미국백신접종은 많은 뉴스를 양산했다. 충분한 규모와 다양한 대상에 대한 실험이 생략되어 예외적인 사고 확률이 높은 까닭이다. 비상상황임을 이해하는 남편은 내게 '마지막에 고약하게 걸린 내 코로나 병증은 정기적인 코로나19 백신접종덕분에 가벼이 넘어갔을 것'이란다.
나는 4주가 넘게 목이 역대급으로 아프고, 가슴이 아팠다. 손을 가슴 위에 얹고 마스크를 쓴 채 거실을 살살 걸어 다녔다. 약한 공기 흐름에 피부는 왜 그리 아픈지 마치 날 선 면도날이 지나는 듯 매서웠다. 코로나 성행시기와 달리 격리조치는 없어졌지만 마스크를 쓰고 잤어도 같이 자던 큰딸에게 결국 옮겨주었다. 더 주의하지 못해서 미안했다.
저항력이 낮아 걱정되었던 큰딸은 가벼운 감기증세처럼 앓고 끝났다. 젊음 덕분인가... 면역력이 정상이던 늙은 나는 어지러워서 걷기가 불편해 며칠을 누워 모처럼 긴 잠을 잤다. 큰딸이 엄마가 건네준코로나를 가볍게 앓고 넘어간 일은 정말 다행이었다.
이번에는 오슬거리는 몸살이 길어지면서 큰딸도 나도 아직 예방접종을 미루는 중이다.
어둑 거리는 방에서 핸드폰 전화가 울린다.
'지금 시간이... 낮인가? 밤인가?'
"안녕하세요? 저희는 ooo입니다. 지금 포럼에 오고 계신가요?"
막 잠이 깨어나다가 받은 전화에 정신이 확 깼다.
'아, 지금 새벽이 아니고 밤인 거네.
나는 머리가 아파 포럼에 못 간 거고...
내가 전화를 미리 했어야...ㅠㅠ'
이미 포럼 시작 시간을 10여분 지난 시점에 전화를 한 거였다.
어디쯤 오고 있는지?를 확인코자...
침대에 누워있던 나는 화들짝 놀라 앉은 자세로 버벅댄 거고...
포럼 주최 측은 하루 전날인 어제 문자 메시지를 보냈었다. 그리고 오늘 다시 확인메시지를 보냈다. 이보다 더 어찌 기억나게 해 줄 수 있을까?
'아, 나는 이게 뭔가?'
'내가 노쇼 했네, 노쇼 했어. 남 흉볼 거 하나 없다.'
생각할수록 미안해서 미안함을 메시지로 보냈다.
"어제 오후부터 시작된 몸살증세가 혹시 코로나인가 싶어 머뭇거리다가 집에 머문다는 게 그만 잠이 들었습니다. 미리 연락드리지 못해 정말 미안합니다."
바쁜 와중에 곧 '괜찮다며 잘 쉬라'는 위로 메시지까지 보내준 그녀에게 정말 고맙고, 미안한 하루 마무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