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동우 Feb 11. 2021

타인의 시선, 지나면 아무것도 아닌..

2020년, 프랑스 파리, 오르세 미술관 앞에서

음악, 장소, 분위기,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비웃음당하지 않을 정도의 실력.


누군가가 나에게 사람들 앞에서 춤을 추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이 있는지 물어보면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그리고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실력’이라고 답할 것이다. 사람들 앞에서 춤을 추는 것은 정말 무서운 일이다. 여태껏 한 번도 춤을 제대로 배운 적도 없고 보나 마나 비웃음거리가 될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그런 나에게 다른 것 없이 오직 음악만 가지고 춤을 추는 사람들의 모습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2016년, 브라질 음악에 한창 빠져있을 때였다. 신촌과 홍대 사이에 있는 한 클럽에서 브라질 악기 연주 클래스가 있다고 해서 무작정 등록을 했다. 그곳은 참 신기한 곳이었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모여 기타도, 피아노도, 노래도 없이 타악기만 가지고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다. 처음엔 배운다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정신을 차려 보니 공연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날은 합주 중 잠시 쉬는 시간이었다. 모두 바닥에 앉아 있었고, 스피커에서는 누군가가 틀어 놓은 브라질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때 프랑스에서 온 한 여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앞으로 나가 춤을 추기 시작했다. 나는 춤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한 가지는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아마 정식으로 춤을 배운 적은 없으리라는 것을... 옆에서 바라보는 나에게는 그 상황이 조금 당황스럽게 느껴졌지만, 그녀는 전혀 눈치를 보지 않았다. 단지 자신이 춤을 추고 싶어 한다는 것, 그래서 지금 춤을 춘다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염두에 두지 않은 듯했다.


2020년 겨울, 프랑스 파리에 있는 오르세 미술관에 갔을 때였다. 그날은 운 좋게 무료입장이 가능한 날이었다. 약 세 시간 정도, 관람을 끝내고 밖으로 나오자 입구 앞에는 3인조 집시 재즈 밴드가 버스킹을 하고 있었다. 그냥 지나치기도 아쉽고 오르세의 여운을 남기고 싶다는 생각도 들어 잠시 서서 공연을 보았다. 그때 갑자기 할머니 한 분이 연주팀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연세가 있어 발걸음은 느렸지만, 얼굴에는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리고 조용히 연주자들 옆에 나란히 서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몸짓도 서툴렀고 박자를 놓칠 때도 많았지만, 신기하게도 그 춤이 연주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위를 둘러보자 다른 사람들도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공연을 즐기고 있었다.


‘내가 이런 말을 하면 밉보이지는 않을까?’

‘내가 이런 의견을 내도 괜찮을까?’

‘이런 하찮은 생각을 말해도 되는 걸까?’


타인의 시선. 그것은 내가 무언가를 선택해야 할 때 고려해야 할 중요한 요소였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는 말을 철석같이 믿었기 때문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느 순간부터 내가 가진 것,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적당히 숨기고 사는 게 당연하다는, 아니 그것이 미덕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실제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할지 알지도 못하면서 지레짐작으로 그 상황을 피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욕을 먹기 싫다는, 비웃음당하기 싫다는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조차 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더는 내 삶을 만들어나가는데 타인의 시선을 1순위에 두지 않기로 했다. 아직 사람들 앞에서 무언가를 하기 전에는 용기가 필요하지만 그럴 때마다 웃으며 춤을 추던 사람들을 떠올린다. 순수하게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는 모습은 그 무엇보다도 아름다웠다. 그날 오르세에는 인상 깊은 작품들이 참 많았다. 하지만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할머니의 다소 서툰 춤사위였다.



작가의 이전글 아직은 설명할 수 없는, 인간적인 행동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