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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Tonic Dec 31. 2020

01. 브라질은 삼바의 나라가 아니다

당신이 몰랐던 지구 반대편 이야기



     

한국 땅을 아주 긴 젓가락으로 뚫으면,


브라질에서 나온다. 이 나라에 가기 위해선 비행기도 한 번 쉬었다 가야 하고, 승객은 비행기 안에서만 꼬박 24시간 이상을 버텨야 한다. 하지만 대한민국과 브라질의 '문화적 차이'와 비교한다면 '지정학적 거리'는 오히려 가깝다 할 수 있겠다. 그래서 오늘의 본문은 필자가 브라질 북동부에 위치한 포르탈레자(Fortaleza)에 약 2년간 거주하면서 받았던 문화 충격의 요약본으로서 독자들의 시야를 넓히기 위해 작성되었다.



   

      

1. 브라질은 세계 최대의 멜팅팟 Melting-Pot이다.


멜팅팟이란 한 국경 안에 다양한 민족과 문화가 융합되어 있는 현상을 뜻한다. 물론 서양에는 식민의 역사로 인해 크고 작은 멜팅팟을 발견할 수 있는데, 브라질의 문화 융합은 이로 말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하다. 이해를 위해 굳이 분류를 하자면, 브라질의 인종은 크게 5가지로 나뉜다. 원주민, 혼혈인, 흑인, 유럽계, 아시아계가 있는데 인종의 분포도는 지역마다 편차가 있다. 예를 들어, 브라질의 남쪽에는 유럽계들이 비율적으로 많고, 북쪽에는 혼혈인과 원주민의 비율이 많다. 실제로 친구 10명을 만나면 방금 말했던 5개의 인종이 다 섞여있다. 그래서 한국 친구들이 브라질 친구들의 특징을 물어보면 정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모를 노릇이다.
    

문화적으로도 지역마다 큰 차이를 보인다. 우리는 '브라질'하면 가장 먼저 '삼바!'라고 외친다. 물론 삼바가 브라질 민속춤이긴 하지만 모든 지역에서 성행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내가 살았던 포르탈레자에서는 '포호(Forro)'라는 음악과 춤이 주류를 이루었다. 젊은이들은 MPB(Música Popular Brasileira)와 같은 지역 팝송을 선호하는 등 지역과 문화권에 따라 큰 차이가 있다. 이제는 브라질 사람에게 삼바를 외치기보단 그 지역의 주류 음악에 대해 물어보는 건 어떨까.
     

브라질에서의 첫 번째 문화충격으로 '멜팅팟'을 선정한 이유는 단일 민족 국가인 한국인들이 이해할 수 없는 사고방식이 브라질 문화 전반에 걸쳐 숨어있기 때문이다. 다름에 대해 존중하는 문화, 나 자신을 틀에 규정하지 않는 사고방식은 브라질의 '다양성'을 빼고는 설명할 수 없다. 자 그럼 이 전제를 시작으로 내가 겪었던 몇 가지의 문화 충격들을 소개하겠다.

     
     

2. 인종차별이 뭐야? 먹는 거야?

      
     

과장된 대지이기는 하나, 브라질은 다른 나라에 비해 차별이 적다. 나는 브라질에 2년간 살면서 단 한 번도 아시아인이라는 이유로 차별이나 기분 나쁜 조롱을 받은 적이 없다. 첫 외국 생활이었기에 당연한 것인 줄 알았지만, 이후 독일에 살면서 브라질이 얼마나 차별 없는 나라인지 체감했다. 물론 흑인에 대한 차별과 백인 우월주의가 분명 존재한다. 다만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는 마인드셋이 아주 강하기 때문에 대놓고 인종차별적인 발언과 행위를 하지 않는다. 그리고 특히 일본인과 한국인에 대한 인식이 매우 긍정적인데, 세대를 거쳐 뿌리를 내려온 아시아계 브라질인들이 사회 경제적으로 엘리트 축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해변가에서 조깅을 하면 관광객들이 찾아와 브라질어로 길을 묻는 경우가 빈번하다. 브라질어를 하지 못했을 때는 '딱 봐도 외국인인데 왜 물어보지?'라고 생각했는데, 애초에 나를 외국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조금만 다르게 생겨도 '외국인'으로 규정해 버리는 한국에서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3. 20년 전 브라질은 미국보다 잘 살았다.

       
     

지금의 브라질은 세계 5위의 국토 면적과 인구를 가진 나라지만 경제 수준은 세계 71위에 머무르는 수준이다. 우리의 인식 속에서도 브라질은 부자 나라에 속하지 않는다. 실제로 브라질에 가면 몇몇 대도시를 제외하고는 시골이나 소도시가 많고 개발 속도도 미미한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불과 20년 전의 브라질의 경제 수준은 놀랍게도 세기의 강대국인 미국보다 높았다. 1997년도의 브라질 GDP는 약 8800억 달러로 약 8500 달러였던 미국의 GDP를 넘어섰다. 그러나 20년이 지난 지금의 브라질 경제는 미국 경제의 20/1 수준으로 토막이 났다. 불안한 정치 사회 구조, 원자재 의존도가 높은 산업 구조 등이 낳은 결과이다. 이러한 역사를 비추어 볼 때, 미래의 세계 경제 판세는 어떻게든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을 것이다.

    
    

4. 브라질의 빈부격차는 상상을 초월한다.

   
   

이 대목을 설명하기 위해선 구체적인 수치보단 직관적인 경험을 소개하겠다. 난생처음 브라질을 가기 위해 비행기를 탔다. 30시간의 비행을 마치고 착륙할 때쯤, 나는 비행기 창 밖의 광경을 믿을 수 없었다. 우리가 한국에서 흔히 보는 고층 아파트는 전체 면적의 10%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온통 빨간 벽돌로 지어진 집들의 연속이었다. 아래 그림과 같이 벽돌이나 진흙으로 지어진 집이 즐비한 슬럼가를 '파벨라 (Favela)'라고 부르며 보통 부촌을 중심으로 도시 전체에 퍼져나간다. 이처럼 하늘에서 브라질을 내려다보면 빈부격차의 실상을 한눈에 볼 수 있다.
     

▲ 포르탈레자의 빈민촌 (출처: FCO FONTENELE)

      

한 통계에 따르면 브라질의 상위 1%가 하위 50%의 소득의 35배에 달하는 소득을 얻는다고 한다. 소비에서도 빈부격차가 두드러진다. 빈민촌에 사는 사람들의 한 끼 식사는 보통 10 헤알(3천 원)을 넘지 않는데 부자들이 부담 없이 가는 식당들은 보통 한 끼에 50~100 헤알 (1만 5천 원~3만 원) 정도 한다. 기본적인 식비도 5~10배 정도 차이가 나는 것이다. 내 옆 아파트에 사는 사람은 브라질에서 손에 꼽히는 부자였는데 아파트 옥상에 가족 석상을 세우고 매일 개인 전용 헬기를 타고 출퇴근했다. 역설적이게도 그 아파트 앞에는 한 끼를 해결하지 못해 구걸하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브라질에 살면 이 모순적인 순간을 매일 마주친다.

     
    

5. 브라질 친구 사귀는 것만큼 쉬운 것은 없다.

    
    

마트에서 어떤 사람과 눈을 마주쳤다. 한국에서는 눈을 피하는 게 예의랬던가, 피하려고 하는 순간 너무도 환한 미소를 건네받았다. 얼떨떨한 마음에 살짝 웃어넘겼지만 당혹스럽기 그지없었다.
     

2년이 지나고서는, 누군가를 우연히 마주치면 내가 먼저 활짝 웃는다. 초면이 무색할 정도로 시시콜콜한 소담을 나누며 때로는 연락처를 교환하여 친구가 된다. 친구의 친구를 만나고, 그 친구의 친구를 만나는 게 일상이었다. 그래서 내 브라질 친구들 중 절반은  명분도 없이 우연히 마주친 친구들이다. 한국에서는 누군가 웃으며 다가오면 변태 혹은 사기꾼 둘 중 하나라 생각하겠지만, 브라질에서는 일상이다. 사람들을 너무 좋아해서 먼저 다가와 주고 친절하게 대해준 덕분에 나는 6개월 만에 브라질 어를 배울 수 있었다. 완벽한 언어 실력은 아니지만 마음을 나누는 법을 배웠다. 낯설고 먼 나라라고 생각되겠지만 적어도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타인에 대해 경계하는 마음을 오히려 이상하게 여기는 정말 이상한 곳이 바로 브라질이다.

     
     

6. 브라질 음식은 미치도록 맛있다.

    
     

많은 사람들은 미식의 고장에 대해 이탈리아, 프랑스와 같은 유럽 국가들을 떠올린다. 물론 경험과 취향에 따라 정답이 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25개국을 여행하고 경험해본 나에게는 브라질이 단연 최고다. 가장 최고의 브라질 음식을 뽑으라면 나는 주저 없이 '삐깡야 Picanha'를 고르겠다. 삐깡야는 소고기의 엉덩이살 부위인데 삼겹살처럼 얇은 비계가 붙어있는 게 특징이다. 소고기 부위 중 가장 기름지며 입에서 사르르 녹는 식감을 지녔다. 어떤 말로 설명해도 부족한 맛이다. 독일로 이사하고 난 후에도 김치보다 더 자주 생각나고, 삐깡야를 먹기 위해서라도 브라질을 다시 가고 싶을 만큼 맛있다고 해야 할까. 혹시라도 맛이 궁금하다면 서울에 곳곳에 위치한 슈하스코 식당에서 삐깡야를 주문해서 먹어보길 바란다. 물론 현지 삐깡야의 절반 수준의 맛이지만 그래도 맛있다.

      

삐깡야 Picanha ▲

     

그 외에도 정말 많은 음식들이 있다. 특히 많은 문화가 섞여 있는 만큼 전 세계의 음식을 맛볼 수 있는데 간이 정말 세다는 것을 알아두자. 처음 브라질에 갔을 때는 턱이 아릴 만큼 음식이 짜서 주문할 때마다 꼭 이 말을 해야 했다. "Sem sal, por favor." 소금을 아예 빼 달란 말이었다. 하지만 더운 나라에서 수개월을 지내니 자연스레 짠 음식을 찾게 되었고 어느 순간 그 말을 안 하게 되었다.

    
    

7.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브라질의 치안

    
     

우리가 브라질이 위험한 나라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대한민국의 치안이 너무 좋기 때문이다. 특히 범죄에 대한 경각심이 낮은 한국인들은 브라질에서 종종 범죄의 대상이 될 때가 있기 때문에 이 글을 주의해서 읽기 바란다.
    

브라질에서 일어나는 많은 범죄는 마약과 갱단에 연루되어있다. 때문에 외국인인 우리가 총격 사고나 살해의 위협을 당할 확률은 현저히 낮다. 하지만 얼마든지 크고 작은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특히 고가의 소지품을 아무데서나 대놓고 사용하는 한국인들은 얼마든지 표적이 될 수 있다. 지갑을 뒷주머니에 넣는다던지, 차에 물건을 두고 내린다던지, 거리에서 비싼 시계를 차고 다닌다던지 등의 사소한 습관이 위험을 초래한다.
    

하지만 이런 부분을 조심한다면 문제없이 일상생활이 가능하다. 특히 쇼핑몰, 레스토랑, 백화점과 같은 시설은 오히려 경비가 더 철저하다. 따라서 경비망이 잘 세워져 있는 곳을 알아두고, 운전할 때 파벨라 Pavela를 피해 갈 수 있는 길을 외워둔다면 불의한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 따라서 브라질 여행을 하거나 거주를 한다면 현지인들에게 위험한 동네의 이름을 물어보고 안전하게 다닐 수 있는 길을 미리 알아두자.

     


    

지금까지 2년간 살았던 브라질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을 소소하게 나누어 보았다. 이 글은 브라질에 대한 팩트체크보다는 그저 더 넓은 세상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을 자극하기 위해 쓰였다. 따라서 이 글을 가볍고 신선한 정도로만 받아들이고 두 발로 직접 브라질 땅을 밟아보고 자신만의 경험과 인상을 쌓아보는 건 어떨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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