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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해 Jan 04. 2021

프롤로그

회사가 없다

7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잡코리아를 보는 나도, 면접도, 입사도, 정치도, 퇴사도 너무 지겨웠다. 지치기도 했고.

보통 이러면 회사를 차리던데. 나는 사회와 등을 졌다. 이제는 그만하고 싶었으니까.

지금은 바뀌었을까. 사회란 곳이, 회사란 곳이.  


20대 초반 취업준비생일 때는 초대졸이라고, 조금 지나서는 신입이라고, 조금 더 지나서는 나이가 찼다고. 이래저래 안된다는 이야기를 10년 동안 들었다. 그래도 어찌 됐든 입사는 됐다. 나란 사람을 뽑아주는 회사들은 보통 이랬다.



이 사람, 대체 뭐지?

 

 

아, 지금쯤이면 참고 다닐 수 있을 것 같다! 싶은 회사다. 점심시간이 되면 삼삼오오 모여 맛집도 찾아다녔고 월말에는 분에 넘는 회식도 했다. 잦은 야근도 꾸짖는 상사도 없었다.


우리 팀은 나와 입사 동기인 기자 한 명과 차장님 한 분이 전부였다.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셋이 다음 달 기사 배분을 위한 회의를 할 때였다. 대구 지하철 화재가 대표 꼭지였고 분량도 어마어마했다. 당연히 차장님이 담당할 거라 믿었는데 여차저차 나와 동기가 차장님께 등 떠민 모양새가 되어버렸다.

다음 날 아침, 사무실에 들어서면서부터 차장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딱히 통화 내용을 숨기는 것 같지도 않았다. 아버지와 통화 중이었는데 내용인즉슨 어쩌다 대표 꼭지를 떠맡게 됐는데 아버지가 대신 써주셨으면 좋겠다는 거였다. 몇 군데 전화를 걸어 대구의 상황을 물으며 취재를 하는 것 같기도 했으나 며칠 후 결국 아버지가 기사를 써주셨다.


대단한 아버지를 두신 차장님이었다. 문제가 생기면 아버지와 통화를 했고 그럼 바로 해결이 되었다. 사랑 많이 받고자란 늦둥이 아들의 느낌이랄까. 하나부터 열까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와중에도 그분은 참, 밝았다. 기자, 사진작가, 디자이너 모두가 콕 짚어 '그 사람 때문에' 힘들다 아우성일 때도 회사는 차장님의 손을 들어주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한다는 말은 진리였다. 빈번하게 일어나는 이런 상황에서 회사가 윗사람을 자르는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지금까지도 미스터리한 것은 아름다운 헤어짐이 아니었음에도 차장님은 몇 년 간 때때마다 그렇게 내게 안부 전화를 했다.


잘 지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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