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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해 Dec 08. 2021

갑질이 싫다

을이라서 좋다


대화를 나눌 때, 나는 늘 상대방이 '기분 나쁘지 않게' 이야기하는 데에만 초점을 맞췄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나고 십 년이 지나니 어느 순간 을이 되어 있었다.


지난 주말, 배달 어플로 삼계탕 가게에서 콜라를 시키며 삼계탕도 함께 주문을 했다. 그렇다. 우리에게는 삼계탕보다 콜라가 더 중했다. 그런데 애타게 기다렸던 콜라는 안 오고 삼계탕만 온 게 아닌가. 가게에 전화를 걸었더니 깜박했다고, 콜라 금액을 바로 계좌 이체해주겠다고 했다. 네네, 하며 끊으려는 찰나 남편이 지금 바로 콜라 보내주라고, 멀리서 크게 외쳤다. 스피커폰이었다. 그게 배달료를 내야 해서요, 하니 남편은 그건 그쪽 사정이고, 그쪽에서 잘못한 거니까 어쨌든 보내달라고 했다. 그렇게 우린 끝내 콜라를 받아냈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그냥 받고 편의점 갔다 오면 되지!"

"아니지. 편의점 안 가려고 시킨 건데. 저쪽에서 잘못한 건데. 정 못 오겠으면 콜라 금액에 배달료까지 줘야지."


이 말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니 자기도 분명 네네, 하고 끊었겠지만 남편이 잘못한 건 하나도 없다고, 그게 맞는 거라고 했다. 비슷한 일화를 한 커뮤니티에서 봤다. 그 사람은 가게 남자 사장님으로부터 상욕을 들었다고 했다. 후에 사과를 받긴 했지만 당시에는 손이 덜덜 떨렸다고. 그 글을 못 봤으면 모를까, 보고 나서는 더욱 말을 할 수 없었다. 손님이 왕이었던 시대는 갔다. 이젠 더 강해 보이는 쪽이 왕이 . 

 



초등학교 저학년 언젠가, 처음으로 혼자 미용실에 간 날이었다. 앞머리 이만큼만 자르면 될까? 괜찮아? 더 자를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겨우겨우 답을 하던 순간 미용사는 앞머리를 드라이어있는 힘껏 위로 올린 다음 동그랗게 말아 스프레이를 쏴-악 뿌렸다. 아, 이건 정말 너무너무 싫은데 싫다고 할 수 없었다.  뭐, 이미 벌어진 일이기도 했고. 한 손으로 앞머리를 꾹 누르며 누가 볼세라 미친 듯이 집으로 달려왔었다.  


지금도 미용실에 가면 네네, 괜찮아요, 만 하다가 온다. 더 짧게요, 더 잘라주세요, 더요! 몇 번을 계속 말하는 것도 진상 아서. 세상 별별 갑들과 마주 할 텐데 내가 그 갑은 되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에 사로잡혀 아무 말을 못 하고 나오기 일쑤다.


정수기 회사나 소독업체에서 오셔도 마찬가지다. 가까이에서 보자니 감시하는 것 같고, 거실 소파에 앉아 내 볼일 보자니 갑질 같아서 멀찍이 떨어져 무심한 듯 지켜봤다. 나가는 길 배웅하면 다들 이런 사람(집) 처음이라고들 하셨.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하는, 어떻게 해야 서로 불편하지 않은지 가르쳐줬으면 좋겠다. 

  



이번에는 좋은 게 좋은 거란 걸, 내 아이에게도 강요한 게 문제가 됐다.


친구 A가 그네를 타러 가면 B와 C는 남은 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달렸다. 매번 조금 더 빠른 B가 먼저 도착해 그네에 올랐고 늦게 도착한 C는 B의 자리를 빼앗으려 안간힘을 썼다.

엄마인 난 그때마다 정색하며 내 아이를 타일렀다. 한 번은 양보해줄 수 있지 않냐고. 어떻게 매번 먼저 타야 하느냐고.

이번에도 역시 사람들에게 자문을 구했고 다들 한결같이 나를 탓했다. 달리기를 해서 이긴 거니 먼저 타는 게 맞다고, C가 기다렸다가 타는 게 맞다고, 나라면 정정당당하게 이긴 아들이 자랑스러워 할 수 있게 힘을 더해줄 거라고.


맞다. 좋은 게 좋은 거다, 라는 건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누구에게 강요하거나, 탓할 게 아니었다. 자기 몫은 더럽게 잘 챙긴다고, 어찌 저렇게 지 할 말 다하고 사냐고, 그 누군가를  비난했던 내가 저질이었다.


가끔 갑질의 현장을 지켜볼 때가 있다. 제삼자의 눈으로 보면 참으로 갑갑했다. 누군가는 할 말도 제대로 못 하는 나를 보며 갑갑했을 것이다. 하지만 난, 네가 갑이라서 내가 을이 된  게 아니니까, 괜찮다. 을이 좋다. 누구에게도 갑이 되고 싶지는 않다. 갑에게 갑질은 본능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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