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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해 Feb 08. 2022

위선이 싫다

지금, 여기, 지킬 앤 하이드



※ 필자는 이전(링크) 글을 올릴 만한 자격이 충분치 않았음을 인정합니다.



누군가 도와달라 말하기도 전에 눈치껏 티 나지 않게 도와주는 사람, 항상 도와줄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은 태생부터 결이 다르다. '션'과 같은 사람이랄까. 마라톤을 해도, 팔찌 하나를 사도 누군가를 도왔다. 함께 헌혈을 한 뒤에 영화를 보며 데이트를 하는, 나눔과 봉사가 일상인 사람들이 하는 행동은 그 자체로 '선한 영향력'이 된다. 그런 그들을 보며 '와, 대단하네!' 박수나 쳤던 사람이 그들과 같은 부류인 척 글을 썼다. 혈소판 성분 헌혈 부탁드립니다 라고.


글을 올린 후 많은 생각을 했다. 당시에는 정말 단 한 명이라도 내 글을 보고 동참해주기를 바라는 마음뿐이었는데 지나고 보니 세상 가증스러웠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을 돕겠다고, 내가? 헌혈 한 번 해보지 않은, 내가? 나는 (이러저러한 이유로) 할 수 없지만, 이 글을 본 너는 (가능하다면) 해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결코 해 보이지 않았다. 내가 아니까. 나는 아니니까.


그 누가 그 글을 보고 동참하고 싶을까.




대학병원 수납 창구 앞 대기석. 여자가 수유쿠션을 허리에 끼고 아이를 안고 있었다. 분유 뚜껑을 열다 떨어뜨린 여자는 바로 아이의 아빠에게 시선을 돌렸다. 아이의 아빠가 와서 주워주기를 기다리는 듯했다. 우는 아이를 달래며 분주히 분유를 먹이는 여자에게 얼른 다가가 뚜껑을 주워주는 게 도리겠지만 난 가만히 있었다. 아이의 아빠를 기다리는 여자의 시선을 보았으니까. 아이의 아빠가 그리 멀리 있지 않았으니까. 핑계도 참...


분리수거장 안에서 경비 아저씨가 빙판에 넘어져 사고가 난 적이 있었다. 동료 경비 아저씨가 부축을 하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그 옆을 지나는 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다 그냥 돌아왔었다. 딴에는 안 괜찮아 보이는데 괜찮냐고 여쭙는 게, 옆에 있는 게 되려 더 신경이 쓰일 것 같았다. 역시 핑계...

결이 다른 사람이었다면 뭐가 달라도 달랐겠지. 이렇게?


한참을 뛰어놀던 아이들이 미끄럼틀 주변에 뿌려진 쓰레기 주위로 몰려들었다. 그곳엔 돗자리 대신 앉았을 대형 박스들과 일회용기, 남은 음식물들이 뒤섞여있었다. 여긴 지저분하니까 다른 데 가서 놀아!라고 말하는 나와는 다르게, 한 아이의 엄마는 맨손으로 주워 쓰레기통에 버리고 있었다. 이를 테면 이런 사람? 난 늘 그 정도까지는 도달하지 못했다.


시댁 식구들과 뷔페를 가도 나는 우리 식구 먹을 것만 겨우 챙기는 반면, 남편의 누나(형님)는 어머님, 아버님, 할머니에 우리가 같이 먹을 음식들까지 모두 담느라 바쁘게 움직였다. 친정아버지 산소에 가도 오빠의 아내(새언니)는 일일이 손으로 잡초를 뽑고 낙엽을 주웠다. 나와는 다르게.




세상에는 선함이 몸에 밴, 그 누구와도 적을 지지 않는, 화내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사람들이 많다. 난 왜 매번 저 선까지는 닿지 않을까, 태생이 착한 사람이면 얼마나 좋을까! 많은 날, 그들의 선함을 부러워했다. 


이건 아마도 타고나기를 착하지 않은 사람이 착한 사람이고 싶어 생기는 부작용 같다. 남이 하면 진심인데 내가 하면 위선 같고, 남이 하는 건 (내가 봤을 땐) 호의로 보이는데 내가 하면 (남들 눈에) 오지랖으로 보일 것 같았다. 


고구마 백 개를 먹은 듯 꽉꽉 막히지만, 어쩌겠나. 호의와 오지랖의 차이 모르는 내가 몇날며칠 고민한다고 나올 답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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