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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해 Mar 24. 2022

보여주기식이 싫다

나만 아니면 될까


아이가 어린이집 다닐 때에는 매일 키즈노트의 사진을 통해 아이의 오늘을 대략 파악할 수 있었다. 뭔가를 만든 날은 완성작을 들고 해맑게 웃으며 사진을 찍었고, 체험이나 행사를 하면 배경 앞에서 소품과 함께 V를 했다. 그런 날, 오늘 뭐 했냐는 물음에 아이는 늘 같은 대답을 했다. 사진 찍었어. 활동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듣지 못했다. 재미있었다는 이야기 역시 매우 드물었다. 키즈노트에 올라오는 글은 같은 반 친구들 모두 동일한 복붙이었으며 집으로 가져오는 작품 대부분은 선생님의 솜씨였다. 누구를 위한 글이며, 작품이며, 사진이며, 행사일까?


어린이집에 간 첫 해의 어버이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얼마나 감동적일까. 고사리 같은 손으로 만들었을 카네이션과 카드를 받고 눈시울이 붉어지는 상상을 했다. 그리고 마침내 다가온 어버이날. '엄마 아빠 사랑해요'라고 적힌 리본 장식을 목에 걸고 나오는 아들을 보며 귀엽네, 란 말 밖에 나오지 않았다. 잠자리에 누운 아들이 뜬금포로 '난 엄마가 제일 좋아!"라고 하는 말이 더 감동적이지, 그런 건 하나도 와닿지 않았다.


원에서는 분명 엄마들이 그렇게 해주기를 원해요, 좋아해요, 기대해요!라고 말하겠지만 매일같이 오리고, 붙이고, 색칠하는 사진들이 뭐 그리 기대가 되며, 다 거기서 거기인 행사 사진들을 뭐 그리 원할까. 사진을 보면서 아이는 이 말을 자주 했다. 나, 이거 한 번 밖에 못 했다? 그렇게 한 번이라도 체험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어주는 게 목적이었다면 할 말 없지만. 사진 촬영을 위한 체험만은 아니기를, 늘 바랐다.  


엄마가 기대하는 건 "오늘 되게 재미있었어!"란 아이의 한마디. 소소하게는 하원할 때 담임선생님께서 말씀해주시는 아이와 관련된 짧은 에피소드!  그게 그렇게 좋았다. 사진이나 완성 작품이 아니라.




저 사람들은 매일 저렇게 먹나? 브런치 카페 메뉴들로 구성된 혹은 저탄고지 식단으로? 코스 요리처럼? 나처럼 밥이랑 국, 찌개, 멸치볶음, 진미채 이런 건 안 먹나? 어쩜 반찬 하나하나 저렇게 정갈하게 잘 담았을까, 그런데 저 반찬들은 왜 다 처음 보는 거 같지?


'다들' 저렇게 사는데 '나만' 이렇게 사나, 자괴감에 빠져있던 어느 날 지인의 SNS를 봤다. 아메리카노 한 잔, 아이패드 화면에 보이는 외국 작가의 소설책 표지, 까눌레... 이 세 가지 소품을 적절하게 배치한 사진 한 장! 내가 갖지 못한 능력이 그때 비로소 보였다. 연출력! 똑같이 아메리카노를 먹고 책을 읽어도, 난 절대 저렇게 사진을 못 찍었다. 웃긴 건 해보려고는 했다는 거! 배치도, 조명도 엉망이었지만 무엇보다 '그렇게 연출'을 하고 있는 내가 너무 싫었다. 굳이 왜 그렇게까지 하며 그런 사진을 남겨야 하는데?라는 물음에 나는 도무지 답을 찾을 수 없었다. SNS에 올리려고? 아 그건 정말 싫다. 저들은 뭐라고 말할까. 오늘을 기억하려고? 그럼 있는 그대로가 좋지 않을까?


놀랍게도 가식이든 거짓이든 '사진'은 '사실'이 되었다. 다들 그렇게 '기억하고 싶어서' 환하게 웃으며 V를 하고, 어깨동무를 하며 사진을 찍는 걸지도 모른다. 속사정이야 어쨌든. 나는 시간이 흘러야 나를 속일 수 있지만 남은? 그날, 그 사진에 속고 만다. 그리고 그걸 즐기는 사람들은 대개 '연출력'이 뛰어났다. 비단 사진뿐일까.




집은 쓰레기 소굴인데 세상 삐까뻔쩍하게 치장해야만 집을 나서는 사람들이 있다. 겉모습이, 남들의 시선이 중요한 사람들. 이들 보통 남의 옷매무새를 지적했다. 명품 하나는 걸쳐야지. 있어 보이게. 그게 다 무슨 소용이냐고! 소리쳐도 그들에겐 절대 가닿지 않았다.


"에이, 너도 은근히 그런 거 볼 걸?"

다들 그럴 거라는 생각! 보여주기식의 모든 면면들이 그랬다. 또한 전시행정이 여전한 이유다.  시국에  국민의 몇 %가 3차까지 백신 접종을 마쳤는지가 뭐가 중요하냐고. 유치원 OT에 어떤 엄마가 무슨 브랜드의 가방을 들었는지가 왜 중요하냐고. 


세상이 그러한데 이게 과연 나만 아니면 돼!로 끝날 문제일까. 그러기엔 이렇게나 신경을 쓰잖아...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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