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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한 Jun 06. 2022

나에게 선물할 직업

토요 글쓰기 모임 [끄적이는 소모임] #3

22.06.05



나는 이번 주제를 보고 예전에 적었던 글이 생각났다. 아마 그 글의 부제는 나에게 있어 가장 불가능하지만 제일 이루고 싶은 꿈이었을 것이다. 지금 와서 보면 조금 유치하지만 사실 이룰 수 없는 꿈을 하나쯤 품는 건 꽤 멋진 일이라고 생각한다. 닿지 않을수록 낭만적이니까. 그리하여 이번 주제는 어찌 보면 장래희망과 직업보다는 추상적인 그 ‘꿈’이라는 단어 자체에 가깝다고 느껴진다. 그러한 게 과연 어른이 된 지금의 나에게는 남아있을까 싶지만, 이루진 못하지만 가까이 가고 싶고, 관련된 것들을 보면 가슴이 뛰고, 열망하는 눈길로 바라볼 수 있는 게 존재한다면 살아가는 데 있어 기쁨을 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그런 것이 나에게 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낀다.


사족이 길었다. 못 이룰 꿈에 대해 고백하자면 사실 ‘비행기 조종’이다.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르니 빠르게 몇 마디를 덭붙여보자면, 우선 나는 높은 곳을 좋아하고 하늘을 나는듯한 느낌 또한 좋아한다. 그리고 여기서 내가 말하는 비행기는 엄청나게 큰 여객기도, 멋들어진 헬리콥터도 아닌 그저 1인분의 경비행기이다.


‘하늘을 나는 꿈이 있어요’라는 말과 동시에 함께 풀고 싶은 썰이 있는데, 가끔 주변 사람들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으면 푸는 나의 추억이다. 때는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 우리 집에는 네발 오토바이가 있었다. 나는 아빠 뒤에 타고 바람을 맞으며 달리는 것을 꽤나 좋아했다. 근데 거기까지만 했었어야 했는데 그 당시의 나, 하늘을 나는 주인공들이 나오는 만화영화에 한참 빠져있어서인지 나 스스로도 하늘을 날 수 있다고 믿었다. 귀엽게도. 아니, 가엽게도. 그 뒷이야기는 너무 머쓱해서 빨리 말해버리고 싶다. 나는 결국 어느 날 달리는 오토바이에서 뛰어내려 크게 상처가 났다고. 그래서 그 순수의 영광은 아직까지도 무릎에 증거처럼 존재한다고.

물론 그때만큼 순수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하늘에 떠있는 기분은 좋아서, 몇 번의 번지점프와 패러글라이딩에도 도전해 보았다. 언젠가는 꼭 스카이다이빙도 해보고 싶다.


언젠가는 꼭 비행기 조종도 해보고 싶다,라고 끝맺지 않은 이유는 눈이 어느 정도 안 좋은 사람은 조종사 자격 조건에 해당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느 정도 현실을 깨닫게 된 어른인 ‘나’는 조금만 슬퍼할 수 있다. 나에게는 하늘을 나는 그 느낌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책’이다.

조금 재미없을 수 있는 답변이지만 다음으로 내가 소개하고 싶은 구절을 보면 나를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비행기 아래 언덕들은 벌써 황금빛 황혼 속에 여기저기 그 그림자를 짙게 드리우고 있었다. 평야는 환하게 빛나고 있었으나, 해가 지지 않는 빛이었다. 이 지방에서는 겨울이 다 지나도 하얀 눈이 평야에 오랫동안 남아 있는 것처럼 황금빛 노을도 대지에 오래 남아 있었다.

지구 최남단의 땅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를 향하여 파타고니아 노선 우편기를 조종하고 있는 파비앵은 어떤 항구에 비치는 물 같은 신호만 봐도 곧 밤이 시작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 고요함만 봐도, 잔잔한 구름들이 그려놓은 새털 같은 주름만 봐도, 그는 밤이 다가옴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이제 거대하고도 평온한 정박지로 접어들고 있었다.”




실제로 조종사 면허도 있었고, 공군, 항공 회사에서도 몸을 담았으며, 우편 비행 일도 했던

생텍쥐페리가 쓴 ‘야간비행’의 첫 구절이다.


나는 위에 저 구절을 읽으며 상상을 했다. 아주 어두운 하늘, 기체 아래로는 네온들이 바람에 흔들리다 이내 사라지고 그 이후는 포근한 밤의 세계가 시작되는 그런, 고요하고 고유한 안정의 세계. 언젠가 말레이시아로 향하는 아주 늦은 밤 비행기를 탔을 때 깜깜한 기내 안에서 창문으로 아래를 내려다보았던 그 순간이 겹쳐 보이기도 한다.


여기까지 생각해 보면 못 이룰 꿈은 마음속에서, 머릿속에서, 무언가를 투영해서, 무언가를 통해서, 훨훨 펼쳐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다. 그렇다. 언젠간 어떻게든 나에게 새 직업을 선물할 수 있다면 나는 조금 생각해 보다가 말할 거다. 나는 하늘을 날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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