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눈물자국

깨진 물컵을 보며 운 적 있나요

#1 하나의 눈물은 하나의 기억이지

by 유운



내가 오랫동안 가지고 있던 것들을 들여다보려고 한다. 호수에 얼굴을 비치는 것과 같이 내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다만 그 호수엔 먼지와 물자국이 많이 껴있을 뿐. 너무 오래되어 내 자신에게도 낯설어져 버린 과거의 나를 돌아보는 것은 약간 부끄럽지만, 늦은 밤 네온사인이 넘치는 도시를 창밖으로 보는 것과 같은 신비로운 황홀감이 느껴지는 것도 같다. 아마 나는 과거의 나를 꽤 좋아하는 거지. 내가 오늘 들여다볼 나는 그러니까 육 년 전의 나. 지금의 나와는 359도 정도 다른 나는 깨진 물컵을 보며 울고 있는 모습이다.



그때 나는 왜 울었을까.



이건 정말 아주 짧은 순간에 눈앞에서 산산조각이 나버린 물컵에 관한 이야기다. 그 당시 한국에 잠깐 돌아갔을 때, 즉 비행기에서 내려 집에 도착한 순간엔 까만 새벽이 되어가는 시간이었다. 오랜만에 나를 본 엄마는 쉼 없이 그동안의 일들을 조잘대는 나를 보고 웃으며 “미숫가루 타 줄까”물어보셨다.

미숫가루는 내가 어릴 때부터 좋아하던 간식이었다. 평소 입도 짧고 편식도 심했던 나에겐 미숫가루는 아주 간편하고 영양만점인 한 끼 식사였다. 그래서 엄마는 할머니에게 받아오기도 하고, 직접 방앗간에 가서 갈아오시기도 하셨다. 그래서 매번 한국 온 날이면 엄마는 똑같이 물어오시고는 했다. '미숫가루 타줄까'



어쩌면 나에게는 집으로 돌아왔다는 의미일 수도 있겠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을 떠나 유학생활을 하는 동안 먹지 못하게 된 미숫가루는, 내가 일 년에 두어 번씩 한국에 돌아가서야만 먹게 되는 특별한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미숫가루를 타주는 엄마를 보다가, 우리 집 유리컵 안에 담긴 오묘한 색의 음료를 보다가, 한입 딱 마시면 낯익은 맛이 느껴지는 감각은 집으로 돌아왔다는 안도감과 편안함을 주었다. 그동안 그리웠던 그 모든 것들이 그 음료 안에 스며들어있는 것처럼.



그날도 엄마는 막 한국에 도착한 나를 위해 길쭉하고 투명한 물컵 안에 타주셨다. 새로운 물컵이네, 나는 이리저리 만지작거렸다. 유리컵에는 파도 위에서 사람들이 배를 젓고 있는 모습이 크게 그려져 있었다. 나는 파도 그림이 맘에 들었다. 그림의 침울한 색도 마음에 들고 무엇보다 물컵 안에 물들이 페인팅 된 그림 뒤로 비치면서 출렁거리는 것이 파도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나는 한국에 있는 일주일 동안 매일 그 컵으로 물을 마시고, 우유를 마시고, 미숫가루를 마시고, 홍초를 마시고, 녹차라떼를 마셨다. 그 컵을 사랑하게 된 게 아닐까. 내가 만든 컵인 양 매일 그 컵으로 음료를 마시며 책을 읽었다. 평화로운 시간이었다.



한 달 뒤 한국을 떠나는 날 엄마는 그 컵을 싸주셨다. 깨지지 않게 옷으로 칭칭 감아서 가방에 넣어주셨다. 어차피 다음 방학이면 돌아올 텐데 짐 많이 만들지 말라면서도 이 컵은 엄마가 먼저 가져가라고 하셨다. 그 컵에 담긴 게 이 컵으로 뭐든 좀 많이 마시고 먹으면서 건강 좀 챙기라는 엄마의 염려인 것을 내가 어떻게 모를 수 있을까. 나는 떠나서도 엄마의 당부처럼 그 컵으로 물도 자주 마시고 코코아를 타먹고 우유를 붓고 시리얼도 넣어서 아침으로 먹기도 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사진 찍어서 엄마한테 보내면 '잘했네'하고 답장을 받았다.



한국을 떠나온 지 한 달째 되던 날 막 시리얼을 다 먹고 컵을 씻으려고 화장실에 갔을 때였다. 잠시 손을 씻으려고 세면대에다 올려놨을 뿐인데 쨍그랑하고 컵이 깨지는 소리가 났다. 그저 부딪히는 소리라고 생각했는데 고개를 들어보니 산산조각이 나있었다. 유리가 이렇게 연약할 줄이야. 까먹고 있었다. 유리조각들을 하나하나 집어 들었다. 마음이 문득 쓰라렸다. 결국 이렇게 쉽게 깨져버릴 거였다면 한국에서 갖고 오지 말걸. 엄마가 미숫가루 타주는 컵이었는데 라는 생각에 미치자 눈앞이 흐려졌다. 그저 컵일 뿐인데 우리 집을 떠올리게 하는 유일한 물건이 끝내 사라져 버린 것 같았다. 우리 집과의 어떤 무언가를 영영 끊기게 만든 것처럼, 외딴 타지에서 다시금 홀로 남은 것처럼 괜히 마음이 아팠다. 그 유리조각이 내 손을 베어 피가 나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일부러 조각을 손바닥 위에 하나하나 올려 쥐어도 피는 나오지 않았다. 피가 났더라면 내 스스로도 이해되지 않는 그 울음을 피가 났다는 걸로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했지만, 그래 나는 이 물컵이 깨져서 울어버렸어 하고 자백해 버렸다. 한낱 유리컵일지라도 내겐 돌아갈 곳이었으니까.



조각나버렸음에도 도저히 버릴 수 없어서 유리 조각 몇 개를 책장 위에다 올려두었다. 누군가 우리 집에 와서 이 유리를 보고 이게 뭐길래 안 버리고 있어 하면, 나는 우리 집 조각들이야- 할 것이다. 유리는 연약하고 우리 집은 너무 멀다는 것이 다시금 떠올라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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