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사람, 믿을 만한가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단순히 ‘예’ 또는 ‘아니오’가 아니다. 신뢰란 ‘무엇을 어떻게 믿느냐'의 문제이기도 하다. 최근 노터데임대학교 멘도자 경영대학원 브리태니 솔로몬(Brittany C. Solomon) 교수의 연구는 조직 내에서 신뢰의 구조를 해석하는 방식의 차이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단순히 정치적 성향이 다른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어떤 프레임으로 보느냐에 따라 신뢰 수준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Solomon은 신뢰(trustworthiness)를 두 가지 프레임으로 구분한다.
1. 역할 기반 신뢰(Role Trustworthiness, 저수준 해석 Low Construal)
- 상대방이 역할을 잘 수행하는가?: “그는 마감 기한을 잘 지켜.”, “회사의 정책을 잘 따르지.”
이러한 판단은 행동의 구체성과 가시성에 기초하며, 보수주의 성향과 더 밀접하게 연결된다. 조직 안에서의 행동과 결과만 보고 평가하려 한다.
2. 인격 기반 신뢰(Person Trustworthiness, 고수준 해석 High Construal)
- 그 사람의 전반적인 인격은 신뢰할 만한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심이 있어.”, “불쾌한 농담을 하지 않는 사람이야.”
이러한 판단은 그 사람의 성향과 가치관에 기반하며, 진보적 성향이 더 선호하는 평가 방식이다. 조직을 떠나 사람 자체를 보려 한다.
출처: Solomon, B. C. (2025). Liberal versus conservative distrust: A construal-level approach to dissimilarity in the workplace. Journal of Applied Psychology.
이 두 관점은 전통적인 신뢰의 세 구성요소—능력(Ability), 호의(Benevolence), 진실성(Integrity)—와도 맞물려 있으며, 같은 신뢰 요소라 하더라도 해석 수준(construal level)에 따라 해석 방식이 달라진다.
‘능력’이라는 요소를 보더라도,
- Role-Based 관점(저수준 해석)에서는 “그는 프로젝트 마감 기한을 잘 지킨다.”
- Person-Based 관점(고수준 해석)에서는 “그는 복잡한 상황에서도 자기 관리를 잘한다.”
‘호의(Benevolence)’도 마찬가지다.
- Role-Based: “신입 팀원들을 도와주려 한다.”
- Person-Based: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감과 배려가 있다.”
‘진실성(Integrity)’도 달리 해석된다.
- Role-Based: “회사의 규정을 성실히 따른다.”
- Person-Based: “비하 발언이나 불쾌한 농담은 하지 않는다.”
이처럼 같은 신뢰 요소라도, 관찰되는 단서와 해석 방식은 전혀 다르다. 역할 기반 신뢰는 눈에 보이는 행동에 초점을 맞추고, 인격 기반 신뢰는 그 행동의 배후에 있는 가치와 성향에 주목한다.
진보적 성향의 A는 B의 일부 발언이 성차별적이라고 느끼고 불편함을 표시했다. 그러나 보수 성향의 B는 “내가 실수한 게 뭐가 있냐, 일은 잘하고 있잖아”라고 반응했다. A는 사람 자체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고, B는 일로만 평가받고 싶었다. 이처럼 신뢰의 기준이 다르면, 신뢰가 무너지는 방식도 다르다. 이 상황에서 진보적인 사람들은 관계가 깨졌다고 느끼고, 거리 두기를 시작한다. 보수주의자는 '일만 잘하면 되는 거 아닌가?'라며, 상대가 느끼는 갈등이 과도하다고 인식한다.
1. 신뢰를 명확히 ‘역할 중심’과 ‘인격 중심’으로 분리하라.
팀 내에서 신뢰에 대한 사고방식이 다를 수 있음을 구성원에게 설명하라. 단순히 신뢰는 중요하다가 아니라, 누군가는 역할 수행을 기준으로, 누군가는 사람 자체를 기준으로 신뢰를 형성한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2. 구성원의 관점에 따라 피드백 방식을 달리하라.
보수주의적 구성원에게는 “이번 마감은 잘 지켰어요."와 같은 행동 기반 피드백이 효과적이고, 진보적 구성원에게는 “당신의 신중한 배려가 고마웠어요."와 같은 정체성 기반 피드백이 효과적이다. 이 방식은 갈등 중재에도 매우 유용하다.
3. 팀 빌딩에서 ‘심리적 거리’를 줄이는 설계를 하라.
“우리는 모두 다른 정치적 견해를 가졌지만, 함께 일할 수 있다.”라는 추상적 문장을 넘어서, “업무에서 보여준 태도뿐 아니라, 서로의 가치관을 존중하려는 시도”를 병행해야 진짜 신뢰가 쌓인다.
사람을 평가하는 관점, 곧 해석 수준(Construal Level)에 따라 신뢰는 다르게 구성된다. 어떤 사람은 구체적 행동을 보고 신뢰를 만들고 어떤 사람은 전반적 인격을 보고 신뢰를 판단한다.
이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같은 팀인데도 서로를 믿지 못하는 이유”를 찾지 못한다. 조직 내에서 함께 일할 수 있으려면 단지 신뢰하라고 말할 게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신뢰를 형성하는지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