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편 안의 적(The Enemy Within One’s Own Ranks)”
군사 작전에서 자주 쓰이는 이 표현은, 현대 조직에도 자주 등장한다. 우리는 조직 외부의 경쟁자, 고객, 시장 변화를 끊임없이 경계하지만, 실제로는 조직 내부에서 파괴적 영향을 미치는 누군가가 훨씬 더 큰 위협이 된다. 이들은 종종 매우 유능해 보이고, 말을 잘하며, 사람들을 압도하는 리더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독일 기센대학교(Justus-Liebig-University Giessen) 산업 및 조직심리학과 렌케 로트(Lenke Roth)와 우테-크리스티네 클레헤(Ute-Christine Klehe) 교수는 2025년 이를 정면으로 다룬 메타연구를 발표했다. 제목은 도발적이다. The Enemy Within One’s Own Ranks: Meta-Analysis on the Effects of Psychopathy on Workplace-Related Behavior
조직 내부에 숨어 있는 사이코패시 성향 구성원이 일, 관계, 성과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다룬 대형 메타분석 연구다.
사이코패시(psychopathy)는 더 이상 범죄자 진단명이 아니다. 심리학자들은 오래전부터 일반 조직에도 이 성향을 지닌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관찰해 왔다. 그들은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고, 상대를 조종하며,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인간관계를 수단화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이들이 조직 내에서 항상 문제아는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때때로 성과가 높고, 영향력도 크며, 조직 내에서 슈퍼스타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이런 모순된 특성을 이해하기 위해, 심리학자들은 사이코패시를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눈다.
로트와 클레헤 교수는 기존의 166개 연구, 약 5만 명의 데이터를 분석해 이 구분을 구조적으로 정리했다.
Primary는 겉보기엔 괜찮아 보이지만, 내면의 윤리 결핍과 조작성으로 조직을 무너뜨린다. Secondary는 감정과 행동 통제가 안 되며, 팀 내 갈등을 만들고 사람들을 소진시킨다.
사이코패시 성향은 평균적으로 직무성과를 감소시키고, 조직시민행동(협력)을 줄이며, 반생산적 과업 행동(괴롭힘, 반사회적 행동, 불법적 행위)을 증가시킨다. 특히 중요한 발견은 다음과 같다.
- Primary psychopathy는 단기적으로 유능해 보일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조직의 도덕적 기준을 허물고, 신뢰를 무너뜨림
- Secondary psychopathy는 즉각적으로 팀 갈등, 책임 회피, 정서적 소진을 유발
이들은 조직 내에서 리더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문제는, 조직이 이들을 좋아할 수 있다는 것이다.
Primary psychopath는 표면적으로는 뛰어난 커뮤니케이터다. 냉철하고 자신감 있으며, 때로는 카리스마까지 갖춘 것처럼 보인다. 이들은 감정을 전략적으로 사용할 줄 알고, 조직정치를 한다. 그래서 우리는 때때로 ‘말을 잘하는 사람 = 리더’, ‘감정이 없는 사람 = 합리적이다’라고 판단한다. 이들은 조직의 룰을 따르기보다, 조직의 룰을 이용한다. 실제로 이들은 회색지대를 이용해 권력을 쥐고, 타인의 실수를 발판 삼아 자신의 입지를 강화한다.
사이코패시 성향은 일반적인 무능과는 차원이 다르다.
- 이들은 공감하지 않고도 사람을 다룬다.
- 윤리를 신경 쓰지 않고도, 성과를 내는 방법을 안다.
- 시스템의 허점을 파악하고, 제도를 수단으로 삼는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조직은 느리게, 그러나 깊게 병든다. 구성원들은 불안해지고, 의심이 퍼지며, 누구도 신뢰하지 않는 분위기가 조성된다. 그들의 전략이 조직문화로 자리 잡는 순간, 심리적 붕괴가 시작된다.
사이코패시 성향은 사람을 해치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을 이용해 조직을 무너뜨린다. 그래서 대응도 사람 중심과 제도 중심을 함께 갖춰야 한다.
1. 결과만이 아니라 ‘과정’을 평가하라.
결과 중심의 평가는 사이코패시의 위장된 유능함을 강화시킨다. 단기 성과는 높을 수 있지만, 팀워크 파괴, 신뢰 저하, 윤리 침식과 같은 보이지 않는 손실은 오히려 더 크다. 따라서 윤리적 기준, 협업 방식, 감정적 영향력을 포함한 프로세스 기반 평가 체계가 필수다.
예: "이 사람이 얼마나 성과를 냈는가?"보다 "그 성과를 내는 방식은 조직에 어떤 정서적 영향을 주었는가?"를 함께 묻자.
2. '불안을 유발하는 리더'에 주목하라.
겉으로는 유능해 보이고 말도 잘 하지만, 사람들이 심리적 거리감을 유지하거나 조심스러워하는 리더가 있다면 주의가 필요하다. 특히 팀원이 실수했을 때 공개적으로 비난하고, 자신의 잘못은 절대 인정하지 않고 책임을 전가하거나, 감정이 없는 듯 보이나 조용히 압박을 가한다면 사이코패시일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 구성원들이 리더의 등장으로 불안을 느낀다면 100%다. 불안은 사이코패시 리더에 대한 집단의 무의식적 반응이다.
3. 정서적 감응력(emotional attunement) 문화를 키워라.
사이코패시 성향의 사람은 타인의 감정을 읽지 못하거나, 계산적으로 조작한다. 이를 막기 위해선 리더와 구성원 모두가 감정을 표현하고 조율하는 문화가 중요하다.
“그 얘기를 들었을 때 기분이 어땠어요?”, 이 질문 하나가 조직의 면역력을 키운다.
4. 조직 시스템의 윤리 체계를 점검하라.
사이코패시는 시스템의 회색지대와 허점을 탐지하고 이용한다. 명확한 책임 구조, 불투명한 승진 규정, 권한 남용이 용인되는 문화를 통해 자란다. 그래서 시스템 자체에 투명성(의사결정과정 공개), 공정성(절차적 정의와 이의제기 가능성), 책임 구조화(위임된 권한에 대한 명확한 책무 기준)를 강화해야 한다.
5. CARAT과 같은 심리검사를 통해 성격지능을 높여라
조직은 구성원의 성격을 단순히 유형으로 분류하는 것이 아니라, 그 성격이 어떻게 관계를 만들고 영향을 주는지를 읽는 지능이 필요하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성격지능(Personal Intelligence)이라 부른다. CARAT은 그 기반이 될 수 있다. 자신과 타인의 성향을 12개 핵심 심리 요인(CARAT Factor)으로 구체화함으로써 누가 회복탄력적인지, 누가 형평민감성이 높은지, 어떤 방식으로 조작적 의도를 가질 가능성이 있는지를 조직 안에서 정밀하게 파악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마키아벨리즘과 사이코패시 점수가 높은 구성원은 권력 수단화를 시도할 가능성이 있으며 조직신뢰 점수가 낮은 구성원은 제도적 공백을 불신하고 독자적 행동으로 전환할 위험이 있다. 진짜 조직 지능은, 사람을 빠르게 분류하는 데 있지 않고, 사람을 깊게 해석하고 구조에 반영하는 데 있다.
사이코패시는 더 이상 조직 밖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들은 당신의 회의실 안에 있을 수 있고, 칭찬받는 상사일 수도 있다. 문제는, 그들이 조직을 잠식할 때까지 아무도 몰라본다는 것이다.
조직의 적은, 종종 외부가 아니라 우리 안의 내부자다.
그들을 구별하는 힘이 바로 심리적 통찰이다.
논문에 소개된 Primary와 Secondary Psychopathy의 특성과 진단 도구를 아래에 번역해 제시한다.
출처: Roth, L., & Klehe, U. C. (2025). The enemy within one’s own ranks: Meta-analysis on the effects of psychopathy on workplace-related behavior. Journal of Applied Psychology.
1. 내가 하는 일이 다른 사람을 해친다고 해서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비열함)
2. 나는 타고난 리더다. (대담함)
3. 다른 많은 사람들이 당황할 상황에서도 나는 침착함을 유지할 수 있다. (스트레스 면역)
4.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화가 났을 때에도 나는 보통 매력으로 그들을 설득할 수 있다. (사회적 영향력)
5. 나는 다른 사람을 해치는 것에 대해 결코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무정함)
6. 나에게 옳은 것은 내가 해낼 수 있는 모든 것이다. (Primary Psychopathy)
7.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그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해서 내가 원하는 것을 하게 한다. (Primary Psychopathy)
8. 나는 관심을 끄는 것을 좋아한다. (관심 추구)
1. 나는 종종 즉각적인 필요에 따라 행동한다.(통제력 상실)
2. 나는 내 행동의 결과를 고려하지 않아서 곤경에 처한다.(통제력 상실)
3. 나는 종종 같은 판단 실수를 반복한다.(무계획성)
4. 나는 종종 스릴을 위해 위험한 일을 했다.(변덕스러운 생활 방식)
5. 나는 아무것도 미리 계획하지 않는다.(secondary psychopathy)
6. 좌절할 때, 나는 종종 화를 내서 분출한다.(secondary psychopathy)
7. 나는 어떤 사람에게는 못되고 무뚝뚝하다.(적대감)
8. 나는 실제로 지킬 생각이 없는 약속을 한다.(무책임)
아래는 CARAT을 학습하고 활용할 수 있는 과정에 대한 안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