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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빡했다’는 말의 심리학

by 박진우

“31도에 10시간 방치된 3살 아이 사망…부모는 ‘깜빡했다’”


오늘자(2025년 5월 2일) 매일경제 기사 제목이다(https://m.mk.co.kr/news/society/11307446).


브라질 비데이라에서 미겔 안투네스 베르사리(3세·남)가 사망했다. 당시 미겔은 새엄마가 운전하던 자동차 뒷좌석에서 잠들었다가 그대로 방치됐다. 미겔은 10시간이 지난 뒤 숨진 채 발견됐다.

미겔의 새엄마는 오전 7시께 남편을 직장에 데려다주고 귀가했고, 미겔이 타고 있다는 사실을 잊은 채 홀로 하차했다. 그리고 오후 5시께 다시 차량을 찾았다가 미겔의 시신을 발견한 것으로 전해졌다.


“깜빡했다.” 이 한 마디는 사람들의 분노와 비난을 불러일으켰다. '어떻게 자기 아이를 잊을 수 있느냐'는 비판은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심리학자들은 여기에 다른 질문을 던진다.


“왜 이런 일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가?”


RM(retrospective memory)과 PM(prospective memory): 기억의 두 얼굴


“사람들은 자기가 아이를 잊을 리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뇌는 그렇게 설계되지 않았다.”


실제 미국에서는 지난 20년간 400명 이상의 아이가 뜨거운 차량 안에서 목숨을 잃었다. 이 중 상당수는 사랑 많고 평소 주의 깊은 부모들이었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이는 나쁜 부모이거나 새엄마였기 때문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인간 인지 시스템의 한계에서 비롯된 비극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어린이집 차량 안에 방치돼 숨진 아이의 사건이 사회적 충격을 준 적이 있다.


미국 사우스 플로리다 대학교 심리학과 분자약리학 및 생리학 전공(Departments of Psychology, Molecular Pharmacology and Physiology) 데이비드 다이아몬드(David Diamond) 교수는 이를 <잊혀진 아기 증후군(Forgotten Baby Syndrome)>이라 명명하며, 인간 기억 시스템의 특성과 한계로 설명한다. 그는 기억을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한다.


- 회고 기억(retrospective memory, RM)

- 미래 기억(prospective memory, PM)


회고 기억(RM)은 과거의 정보를 저장하고 회상하는 기능이다. 윌리엄 제임스가 감정적 경험은 뇌에 흉터(scar)를 남긴다고 표현했듯, 모든 과거 경험은 뇌에 신경학적 흔적을 남긴다. 이 기억은 다시 명시적(explicit)과 암묵적(implicit) 기억으로 나뉜다. 명시적 회고기억은 의식적인 기억(예: 전화번호, 생일 기억하기), 암묵적 회고기억은 습관적 기억(habit memory)이다. 습관적 기억은 의식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수행되는 기술로, 자전거 타기, 운전, 운동 기술 등이 이에 해당한다.


반면, 미래 기억(PM)은 과거에 저장된 정보를 이용해 미래의 행동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기능이다. 예를 들어, 점심 후 동료에게 전화 걸기, 잠자기 전에 약 먹기, 퇴근길에 세탁소 들르기 등이다. 이러한 PM은 매일 반복되며, 계획 수립, 기억 유지, 적절한 시점에 행동 실행, 행동 완료 확인의 일련의 과정을 필요로 한다.


다이아몬드 교수는 암묵적 회고 기억(RM-implicit)과 미래 기억(PM)의 경합(conflict)과정에서 비극이 발생한다고 설명한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내려줘야 하는 비일상적 계획(PM)은 루틴에 포함되지 않은 임시적 목표다. 하지만 출근길에 뇌는 자동항법 모드, 즉 암묵적 회고기억인 습관기억(habit memory)을 따라 직장으로 향한다. 이때 습관 기억이 미래 기억을 덮어버리면, 아이를 내려줘야 한다는 계획은 뇌에서 사라진다. 결국, 아이를 이미 내려줬다는 잘못된 인식이 생성되고, 아이가 뒷좌석에 남아있다는 사실은 의식에 떠오르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깜빡했다’는 말의 심리적 메커니즘이다(Diamond, D. M. (2019). When a child dies of heatstroke after a parent or caretaker unknowingly leaves the child in a car: How does it happen and is it a crime?. Medicine, Science and the Law, 59(2), 115-126.).


주의 협착(attentional narrowing)과 정상성 편향(normalcy bias)


오늘자 매경 기사의 사건은 새엄마의 의도된 부주의로 설명될 수 있을까? 심리학은 여기에 주의 협착(attentional narrowing)과 정상성 편향(normalcy bias)이라는 심리 메커니즘을 지목한다. 스트레스, 업무 압박, 스마트폰 알림이 난무하는 출근길에 우리의 뇌는 필수적 정보만 남기고 나머지를 필터링한다. 그 필터링 과정에서 아이가 차에 여전히 있다는 비일상적 사실은 삭제될 위험이 크다. 이때 경고 신호는 무시되거나 아예 떠오르지 않는다. 그리고 사람들은 자신은 절대 그런 실수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이 과신은 예방 행동(알람 설정, 차량 확인 루틴)을 습관화하지 못하게 만든다.


이러한 사고를 개인의 부주의라는 도덕적 문제로 축소하는 대신, 심리학적, 인지적 문제로 이해하는 인식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아이 카시트에 신발이나 지갑을 두는 습관이 있다면 차를 떠날 때 스마트폰에서 반드시 뒷좌석을 확인하게 하는 알림 장치와 같은 외부 기억 보조 장치를 활용하거나, 아이가 탑승할 때 ‘백미러 확인 → 뒷좌석 문 열기 → 카시트 확인’을 루틴화해 습관을 쌓는(habit stacking) 방식이다. 이런 행동 설계 없이 인간의 뇌가 만들어내는 한계를 극복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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