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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판은 빠르지만, 진실은 느리다

by 박진우

감정 기반 평판이 어떻게 사람의 속성을 사실처럼 만드는가?


누군가가 회의 중 공개적으로 질책당했다. 상사의 말투는 단호했다.

“이건 무책임한 대응이에요. 다음에는 이런 결과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세요.”

같은 자리에 앉아 있던 당신은 그 과정에 대해 아무런 정보도 없지만, 이미 판단은 끝났다.

'그 사람... 문제가 있는 것이 확실해.'


이처럼 우리는 행동을 직접 보지 않아도, 평가(특히 비난)를 보고 속성(attribute)을 추론한다. 이건 단순한 직감이 아니다. 심리학적으로 입증된 정교한 사고의 메커니즘이다.


최근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에 게재된 연구는 이렇게 말한다.


비난만 보고도 사람을 정확히 해석할 수 있다


스탠포드대학교 심리학과 재커리 데이비스(Zachary J. Davis) 교수 등의 연구진은 사람들이 행동을 전혀 보지 않고도, 평가만 보고 문제의 원인을 정교하게 추론한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실험 구조는 간단했다. 참가자들에게 두 인물(1과 2)이 등장하는 짧은 시나리오를 보여준 후, 누가 더 많이 칭찬 혹은 비난받았는지만 알려준다.


예를 들면 이렇다.


Requester fell over while playing soccer with Person 1 and Person 2. Both Person 1 and Person 2 stepped on Requester. Requester blamed Person 1 more/less than Person 2 for stepping on them. Who stepped on Requester on purpose / by accident?


축구하다 밟혔는데, 사람 1을 사람 2에 비해 더 많이 비난했다면, 누구를 고의라고 여길까?


이런 식으로 총 15개의 시나리오가 제시되었고, 참가자들은 평가 결과만 보고도 인물의 속성을 일관되게 추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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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Davis, Z. J., Allen, K. R., Kleiman-Weiner, M., Jara-Ettinger, J., & Gerstenberg, T. (2025). Inference from social evaluation.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129(3), 439–476.


참가자들은 능력, 노력, 지식, 의도, 사회적 역할 중 어떤 속성이 문제였는지를 75~90% 확률로 일관되게 예측했다. 예컨대 effort(노력) 시나리오에선 90% 이상이 노력 부족 인물을 정확히 골랐다. 실제 어떤 행동을 했는지에 관한 정보가 없어도 판단은 작동했다. 단지 누가 질책당했는가, 그 정보만으로도 충분했다.


사람은 비난을 보고, 능력을 추론한다


행동보다 비난(평판)이 더 강하게 판단에 영향을 미친다


그가 실제 무능한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비난받았다는 사실만으로, 사람들은 이미 그를 무능하다고 추론한다. 그리고 그 추론은 놀라울 정도로 일관되지만, 반드시 정확하진 않다. 왜냐하면 그 기반은 ‘행동’이 아니라 ‘감정적 평가’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실제 행동을 보기 전에, 이미 그 사람에 대한 평가를 끝낸다. 심리학은 이 현상을 ‘역방향 인과추론(reverse causal inference)’이라 부른다. 사람은 결과(비난, 실패, 칭찬)를 먼저 보고 그 원인을 역방향으로 재구성한다. 사실 이건 오류라기 보다는 정보가 부족한 상황에서 작동하는 가장 빠른 생존 전략이다.


Davis 교수는 이를 베이지안 모델로 설명한다. 우리는 정보를 충분히 갖고 있지 않을 때, 관찰 가능한 결과(예: 질책)에서 출발해 가장 가능성 높은 원인을 계산한다. 사람들이 베이지안에 근거해 판단한다는 것은 충동이 아니라, 정보 부족 상태에서 작동하는 합리적 추론 전략이라는 것이다. 그렇다. 당신은 잘못 생각한 게 아니라, 틀릴 수밖에 없는 구조에서 정확히 작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구글의 검색 방식이 대표적인 베이지안 추론이다. 당신이 검색창에 단어 하나를 입력하면, 구글은 이미 당신의 검색 이력, 지역, 시간대 등을 알고 있다. 예를 들어, "tiger"를 검색하면, 구글은 사용자의 이전 검색 패턴(=사전 확률)을 기반으로, 현재 입력한 키워드(=새로운 증거)에 따라 가장 가능성 높은 결과를 보여준다. 누군가가 검색하면 동물 호랑이가, 또 다른 누군가에겐 오니츠카 타이거가 상위에 랭크될 수 있다. 만약 당신이 동남아를 여행 중에 검색했다면 Tiger Beer가 상단에 나올 수 있다. 이게 바로 베이지안 방식이다.


그런데 그 구조가 만든 결과는 무엇인가?


행동은 사라지고, 감정만 기억된다.


평가자는 우연히 권력을 쥐고 있고 구성원들은 정확하게 오해한 채 동조한다.


조직에선 이 메커니즘이 더욱 위험하다. 상사의 질책은 종종 감정 기반이다. 그러나 그 감정 표현은 조직 내 판단 기준처럼 기능한다. 팀원들은 비난의 강도만 보고 속성을 추론한다. 그리고 그 평가는 낙인(labelling)이 된다.


그러므로 조직이 해야 할 질문은


1. 지금 누군가가 ‘문제 있는 사람’으로 낙인찍혔다면, 그건 행동에 기반한 판단인가, 평판에 기반한 추정인가?

2. 우리는 정서적 표현을 정보로 오인하고 있진 않은가?

3. 팀장은 사실을 말하고 있는가, 아니면 느낌을 진실처럼 말하고 있는가?


그리고 리더는 감정을 던질 권리가 아니라, 의도를 설명할 책임이 있다


'왜 그런 감정을 가졌는가?'를 설명하지 않는 감정 표현은 팀 전체의 추론 메커니즘을 왜곡한다. '무능하다'는 낙인은 사실일 수도 있고, 그저 누군가가 화냈다는 사실에 근거한 ‘집단적 착각’일 수도 있다. 좋은 리더십은 정보가 불충분한 상황에서도 판단을 유보할 수 있는 용기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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