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이어지는 폭염에 창을 열어둔 채 방바닥에 누워있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은 나날이었다. 그렇다, 당시 나는 에어컨도 (당연히) 없었지만 선풍기도 없었다. 매일 15시간씩 일하다 번아웃이 와서-최저시급도 사대보험도 퇴직금도 다 꿈나라 이야기였던 시절이다- 다 집어던지고 집에 누워있기만 할 때였다. 도무지 견디기 힘들었던 어느 날 (냉장고에 냉동실도 없어서 얼음을 얼릴 수도 없었다) 벌떡 일어나 겨울 외투와 가방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항상 잔돈이 생기면 주머니나 가방에 아무렇게나 넣어두고 잊기 일쑤였기에. 돈도 없으면서 딱히 소중히 여기지도 않는 인간이었다. 그렇게 각종 주머니를 뒤적여 나온 돈을 모았더니 2만 원이 되었다. 수중에 있던 3천 원을 더해 근처 팬시점까지 걸어갔다. 30분쯤 걸어 도착해 곧장 선풍기 코너로 갔다. 내가 가진 돈으로는 일반 선풍기는 어림도 없었고 탁상형 정도의 미니 선풍기를 겨우 살 수 있었다. 3만 원이 넘지 않는 선풍기가 거의 없었으므로 나는 선택의 여지 없이 내가 지불할 수 있는 금액의 2만 천 원짜리 선풍기를 샀다. 선풍기는 너무 작아서 내 품에 쏙 들어왔다. 2만 원짜리 선풍기는 틀어놓으면 소리는 요란한데 바람은 대체 어디로 가는 건지 알 수 없는 방향으로 돌아갔다. 시원함보다는 그저 선풍기가 있다는 위안으로 여름을 난 지도 모르겠다. 바로 그 선풍기가 며칠 전 날개가 빠져 분해를 해야했다. 분명 십자드라이버가 있는데 어디 있는지 찾을 수가 없어서 일자 드라이버로 어떻게든 분해는 했다. 청소도 하고 날개도 다시 달았는데 십자드라이버 없이는 결합을 할 수 없는 구조였다. 어쩔 수 없이 잘 맞춘 뒤 리본을 묶어 주었다. 우리 집 고양이들보다 훨씬 더 나이가 많은 선풍기는 다소 발레 코어가 된 채로 이제는 익숙하게 꽤 시원한 바람을 내보내고 있다. 지금은 에어컨도 있고 선풍기도 마음먹으면 크고 시원한 걸 살 수도 있지만, 누구라도 전 재산을 털어 샀던 선풍기를 쉽게 버리기는 힘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