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행위와 인식에 대한 지적 호기심
제목: 땅거미 질 때 샌디에이고에서 로스앤젤레스로 운전하며 소형 디지털 녹음기에 구술한, 막연히 LA/운전 시들이라고 생각하는 작품들의 모음(이하 “땅거미”)
지금 시대에 부족한 것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아방가르드, 실험문학, 시대로부터의 탈출이다. (127쪽)
인간의 행위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는 것일까요?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꼭 그렇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자신의 행위에 이유를 찾지 못하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인간은 이유 있는 행위와 이유 없는 행위 모두를 아우르는 존재가 아닐까 싶습니다. 어느 한쪽만으로는 온전한 설명이 어렵기 때문이지요. 이유를 알 수 없는 행동, 즉 무의식적 행위에 대한 연구를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라고 합니다. 이해할 수 없는 행위의 근원을 인간의 무의식에서 설명하는 학문이지요. 이 연구는 인간 이해의 폭을 무의식의 영역으로까지 넓힌 획기적인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20세기 초 문학에서도 정신분석학의 영향을 받은, 형식적 실험을 시도한 문학기법이 나타납니다. ‘의식이 흐름 기법’이나, ‘자동기술법’ 등이 그것인데요. 의식의 흐름기법은 ‘마음속의 심리적 변화를 어떠한 여과장치 없이 날것 그대로 전달하고자 하는 기법’으로 따옴표나 구두점이 사라지고 문장이 유동적으로 흐르거나 임의로 중단되기도(Pericles Lewis) 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자동기술법은 ‘특정한 의식이나 의도 없이 무의식의 세계에서 발현되는 이미지를 그대로 기록하는 방법’을 의미하고요. 이런 문학사조는 고정관념이나 틀에서 벗어나 비논리적이고 비합리적인 영역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사건이나 사물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이성의 작용이 제거된 상황에서 자동으로 떠오르는 그대로를 기술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표현된 사건은 이미 가공된 새로운 사건이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정지돈의 소설집 「땅거미」는 형식 면에서 의식의 흐름기법과 자동기술법을 전방위적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문장에 따옴표가 없고 이야기의 흐름도 들쑥날쑥합니다. 「지금은 영웅이 행동할 시간이다」라는 글에서는 아예 ‘엔씨는 번역 원고가 스스로 진행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95쪽)’라는 문장이 등장할 정도입니다. 그래서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게다가 윌리엄 제임스, 앙드레 브르통, 자클린 랑바, 루이 아라공, 프리다 칼로 등 실존했던 작가가 직접 등장하여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도 흐릿합니다. 매우 난해하지요. 마치 한국의 대표 모더니스트인 이상의 글처럼 말입니다.
이 소설은 문장과 문장 사이, 의미와 의미 사이에 존재하는 공간을 상상력과 깊은 사고로 채워야 하는 매우 지적이고 탐구적인 소설입니다. 더불어 안은별 문화연구자가 밝힌 것처럼 ‘예술 작품의 무엇을 재현하는가가 아니라 그것이 어떠한 사건이며 어떻게 작동하는가, 어떤 새로운 가능성을 생산하는가’를 이야기하는 책입니다. 문학에 대한, 인간에 대한 인식의 장을 넓게 펼치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