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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약속, 뒤렌마트

by 나즌아빠

선택에 대한 단상


사람은 살면서 많은 것을 결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선택은 최선이길 바랍니다. 최소한 최악은 면하고자 하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만의 선택 기준을 세우게 됩니다. 자신이 겪은 다양한 경험을 생각하기도 하고 선택결과에 대해 미리 곱씹어 보기도 합니다. 자기 선택에 대해 후회하지 않거나 혹은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자기 노력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선택이 항상 만족스러운 결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장고 끝에 악수라고 뼈아픈 후회를 할 때도 있지요. (누군가는 선거 후에 자신의 손가락을 자르고 싶다고 하는 경우도 있더군요) 그렇다고 선택을 피할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선택 앞에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쉽지 않은 질문입니다.

뒤렌마트의 소설 '약속'은 이런 질문에 대한 하나의 사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연쇄살인범을 찾기 위해 경찰국장 H박사와 경감 ‘마태’는 사건 해결을 위해 서로 다른 수사방식을 택합니다. 그 과정에서 인간의 생각과 감정 그리고 행동을 추리소설이라는 형태로 흥미진진하게 표현하고 있지요.

먼저, 경찰국장은 연쇄살인범을 찾는 방식을 건조하게 제시합니다.


“경찰력에는 한계가 있고 또 그럴 수밖에 없다네. 실제로 세상에선 무슨 일이든 가능하다네. 아무리 개연성이 희박한 일이더라도 말일세. 하지만 우리는 확률이 큰 것을 출발점으로 할 수밖에 없다네. 우리는 폰 군텐이 어김없는 범인이라고는 말할 수 없지. 근본적으로는 결코 그렇게 단정할 수가 없어. 그렇긴 해도 개연성으로 볼 때 그를 범인으로 볼 수 있겠지. 우리가 미지의 범인을 날조해내지 않는 한 그 행상은 문제의 과녁에 들어오는 유일한 인물이었던 거야.” (97쪽)


범인을 찾는 선택의 기준으로 ‘경찰력의 한계’라는 현실적인 부분과 범인일 수 있다는 ‘확률과 개연성이 높은 사람’을 택하게 됩니다. 손쉽게 일을 처리하는 방식입니다. 그런데 주인공 경찰 마태는 다른 선택을 합니다. 피해자의 엄마와 생명을 걸고 범인을 찾겠다고 한 ‘약속’과 경찰의 사명을 위해 그는 사건의 정황 증거와 단서들 그리고 추리를 통해 범인을 유인하는 방법을 선택합니다. 사람을 미끼로 사용해서 범인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매우 위험하고 비윤리적인 선택입니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소설에서도 이를 걱정하는 표현이 나옵니다.


“우리는 기다리고 또 기다렸습니다. 이제 우리의 관심사는 근본적으로 그 소녀도 살인범도 아니었습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바로 마태였어요. 그의 생각이 옳았음이 입증되고 그가 목표에 도달하는 것이 중요했단 말입니다. 안 그러면 큰 불행이 벌어질 테니까요. 우리 모두가 그것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169쪽)


두 사람의 선택은 현실적인 상황과 가치를 추구해야 하는 상황 사이에서 갈등하는 우리의 모습을 대변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어떤 선택을 하던지 개인마다 다를 수 있고 그 기준 또한 정해진 바가 없으니 여전히 선택은 어려운 질문입니다. 다만, 선택의 기준을 확장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사고의 폭을 넓히는 것이 필요함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선택의 결과로써 후회를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소설에서처럼 범인을 찾는 선택이라면 피해를 예방하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무릇 사건이란 수학 공식처럼 맞아떨어지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 우연적인 것, 예측할 수 없는 것, 헤아릴 수 없는 것들 역시 엄청나게 큰 역할을 하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 수사 법칙은 다만 확률과 통계에 토대를 둘뿐, 인과율은 무시합니다. 그 법칙들은 보편적으로는 들어맞지만 특수한 경우에는 맞지를 않아요.”(20쪽)


자 그럼 가장 중요한 것이 남았네요. 과연 마태는 연쇄살인범을 찾았을까요? 마지막 반전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소설은 요즘의 추리소설을 능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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