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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하영 Jan 04. 2024

겨울방학 평일 첫 외출_2

사실 너희와 함께면 어디라도 좋아.

우리 셋이 처음으로 영화관에서 함께 볼 영화 제목은 아마 평생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신차원! 짱구는 못 말려 더 무비 초능력 대결전 ~날아라 수제김밥~'이기 때문이다.


마침 방학을 맞아 둘째가 좋아하는 뽀로로, 옥토넛, 또 첫째가 좋아하는 트롤도 개봉한 상태였다. 한 마디로 우리 아이들이 좋아하는 영화 대잔치였다. 한 번 더 와야 하나 싶을 정도로 쟁쟁한 대작들 사이에서 짱구를 선택한 건 첫째가 가장 즐겨보는 애니메이션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첫째에게는 평소에 미안한 게 많았다. 말귀를 알아듣는다는 이유만으로 이해를 요구하고 동생에게 관용을 베풀길 강요했다. 말귀를 알아듣기에 첫째의 편을 더 들어주고 첫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했지만 둘째의 울음소리 앞에서는 그런 다짐이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렸다.


그래서 이번만큼은 둘째 복숭이가 양보해도 되겠다 싶었다. 거기다 둘째는 변수가 많았다. 아무리 좋아하는 캐릭터가 나온다고 해도 깜깜한 영화관에서 큰 사운드로 영화가 나오는 걸 얼마나 버텨줄지 가늠 초차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화관 안에서 십 분이어도 좋았고 이십 분이어도 좋으니 조용히 있을 수만 있으면 다행이겠다 싶었다.  


아이들과 여러 이벤트를 겪어나가며 내가 하게 된 일이 있는데, 내 기준에 꽤 큰일을 하기 전에 바로 마음을 비워놓는 것이었다. 미리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떠올려보는 것도 그 일환이었다. 머릿속으로만 겪어보아도 어느 정도의 배포가 생겨났다. 그러고 나면 그 어떤 상황에서도 허둥대지 않고 잔잔한 물결이 이는 정도로 차분히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이다.


네 살 둘째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은 잠투정으로 인해 큰 소리를 낸다거나, 분위기에 놀라 까무러치게 놀라 운다거나, 앉히자마자 바로 나가거나 등이 있었다. 쉬지 않고 내게 말을 걸면 또 어떡하지? 나올 수 있는 상황을 다 떠올려 보았다. 그러면 결론은 한 가지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아이를 데리고 상영관 밖으로 나가는 것이다. 그거면 충분했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첫째 복덩이에게도 미리 언질을 해놓았다. 다행히 이제 초등학교 삼 학년이 될 첫째 복덩이는 예상보다 엄청나게 씩씩했다. 내가 나가더라도 상영관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어서 그런지 혼자서도 끝까지 다 보고 나올 수 있다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 이렇게 커서 상황을 이해하고 혼자서도 깜깜한 상영관에서 있을 수 있게 되었을까 새삼 아이가 훌쩍 자란 게 느껴졌다.


먹는 것에 있어서 늘 진심인 우리는 전날부터 말이 잘 통했다. 이제는 기대만 남아있었다. 영화관에서만 맛볼 수 있는 갓 튀긴 팝콘은 침샘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팝콘을 먹을 생각만으로도 구름 위를 떠다니는 것처럼 행복했다. 재밌는 영화를 보며 아삭아삭한 팝콘을 씹는 게 정말 얼마만인가. 변수를 떠올리더라도 정말 오랜만에 방문하는 영화관은 설렘을 주기에 충분했다.


드디어 당일날이 되었다. 영화 예매 시간이 둘째 낮잠 시간과 겹치는 게 좀 불안했지만 온전히 나 혼자 아이들을 데리고 방학에 첫 외출을 한다는 게 너무나 뿌듯했다.


너무 일찍 들어가 있으면 광고를 하는 동안 벌써 흥미를 잃고 칭얼댈까 봐 시간에 최대한 맞춰 가기로 했는데 거기서부터 조금씩 엇나가기 시작했다. 어른 걸음으로 시간을 짰는지 생각보다 시간이 촉박했던 것이다. 그래도 겨우겨우 시간에 맞춰 팝콘과 아이들용 주스, 내 탄산까지 야무지게 사서 영화관에 들어갔다. 그리고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그로부터 무려 한 시간가량을 첫째, 둘째와 함께 상영관 안에 있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더는 바랄 게 없었다.


제일 재밌어지려고 하는 찰나 이제 이 티브이는 보지 않겠다며 칭얼대는 둘째 아이를 안아 들고 나왔는데, 나도 짱구를 무척이나 좋아하는지라 조금 아쉽긴 했지만 막 억울하거나 슬프지는 않았다. 이 작은 만큼 더 매운 천방지축 둘째 복숭이가 한 시간이나 얌전히 영화를 봐주었다니, 정말 너무나 기특하고 자랑스러웠기 때문이다.


둘째는 상영관 앞에 앉아 휴대폰으로 유튜브를 틀어줬는데 한 십 분도 채 보지 못하고 스르르 잠이 들었다. 엄청 칭얼댈 수도 있었을 텐데 이 정도 해준 것만 해도 선물을 받은 것만 같았다. 탄산 하나를 주스로 바꾼 것도 도움이 많이 됐는데 아이는 약간 긴장을 한다 싶으면 연신 그 주스를 빨아먹었기 때문이다. 첫 영화관 나들이가 이렇게까지 수월할 수 있다니. 그간 했던 걱정이 다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듯했다. 나는 심장이 콩알만 해서 미리 고민이나 걱정을 수없이 하는데 실로 일어나는 건 그중 하나가 될까 말 까다. 이번에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조금 덜 걱정하고 살아도 되겠다고 말이다.


평소에도 좀 덜 긴장하고, 덜 걱정해도 될 텐데 아이들과 관련해서는 그게 잘 되질 않았다. 그래도 나는 걱정했던 일이 안 일어나는 게 낫지, 덜컥 예비 없이 당황스러운 일을 겪는 게 아직은 더 싫긴 하다. 이것도 조금씩 나아지겠지, 이렇게 자주 데리고 다니다 보면 더 단단한 멘탈이 될 수 있겠지. 엄마인 나는 나의 성장도 기대가 된다.


아이들과 앞으로 가야 할 곳들이 기대되는 건 비단 아이들 뿐은 아닐 것이다. 나도 실은 엄청나게 들뜨고 기대가 된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두 꼬물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어찌 긴장의 연속이기만 할까. 영화관 안에서도 영화를 안 보고 우리 두 아가들 얼굴만 봐도 그리 재미있으니 말이다. 아이들을 보는 게 너무나 행복하다. 가끔은 어떻게 저렇게 작은 인형이 눈도 깜빡이고 말도 하지 신기할 정도이다. 그리고 이 몰랑몰랑한 아이들이 내가 낳은 아이라 매일 함께할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기까지 한다. 우리 집에서 아기 소리가 나고, 둘이 노는 모습을 지켜보면 뿌듯함이 저 깊은 곳에서부터 차오른다.


일부로 첫 외출은 가벼운 영화관을 골랐지만, 덕분에 자신감이 풀로 충천되었다. 왠지 더 먼 곳에 가더라도 둘을 잘 보살피고, 임무를 무사히 완수하고 돌아올 수 있을 것만 같다.


아... 가장 중요한 일을 적지 않았다. 둘째와 상영관 밖으로 나가고 1시간이 더 지나 영화가 끝났을 때까지도 둘째는 깨질 않았다. 오히려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나는 고민도 없이 아이를 들어 안았는데 그 길로 10분을 걸어간 후 지하철 두 정거장을 지나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잠이 들어 축 늘어진 아이를 드는 건 정말 쉽지 않았다. 고개가 처진 방향으로 무게가 쏠리는데 얼마나 무겁던지 아이가 이렇게 무거운지 상상도 못 했다. 팔이 떨어져 내리고 어깨가 내려앉을 것만 같았다.


그래도 그 와중에 오랜만에 나왔다고 첫째에게 가는 길 먹고 싶은 걸 하나 고르라고 했는데 요즘 초등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은 탕후루를 골랐다. 산타모양을 한 여러 과일이 섞인 탕후르였는데 어른인 내가 봐도 너무 예뻐서라도 사 먹고 싶었다. 탕후루를 받기 전에 이미 팔이 후들거려 정신을 바짝 차려야만 했다.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리는 느낌이었다. 탕후루를 받아 들자 그래도 큰 일을 덜었다는 생각에 홀가분함이 밀려왔다. 이제는 곧장 집으로 가서 이 아이를 금방이라도 내려놓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지하철에 들어서자 이제는 약간 비틀거리기까지 했다. 그때부터였다. 주변의 따뜻한 시선이 느껴진 게 말이다. 두 정거장을 가서 내리면 되니까 서서 가야지 했는데 어떤 아저씨 한 분께서 저기 자리가 있다며 앉으라고 알려주셨다. 너무 감사했지만 금방 내린다고 하는 사이 그곳에 다른 분이 앉았는데 아저씨는 포기하지 않고 다른 빈자리를 알려주시며 내가 앉을 수 있게 도와주셨다. 일면식도 없던 사이인데 이렇게 친절할 수가 있다니. 나도 누군가에게 그렇게 따뜻한 사람이 되어줄 수 있을까? 그럴 수만 있다면. 나는 종종 아이들을 데리고 길을 나서면 길 한복판에서 하늘이 내려준 천사 같은 분들을 만나게 되는데 오늘도 그날 같았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겨우 지하철에서 내려 올라가려 하는데 아주머니 한 분께서 나를 불렀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라고 말이다. 아주머니는 내가 갈 때까지 기다려주시는 건 물론 잘 탈 수 있도록 이끌어주셨다. 아이를 안고 있느라 바로 근처에 누가 있는지도 몰랐던 내게 이렇게 도움의 손길이 쏟아졌다. 세상이 이렇게 따뜻한 곳이라는 걸 또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여러 분의 도움 덕분에 집까지 무사히 와 아이를 침대에 눕힐 수 있었다. 이제 내게도 잠시 간의 휴식 시간이 찾아오겠지.


기대가 무색하게 눕히자마자 아이가 벌떡 일어났다. 아이가 자면 할 일들을 미리 생각해 놓았는데 이렇게 고생고생을 시키고 집에 오자마자 눈을 번쩍 뜨다니. 이마를 치고 탄복할 노릇이었다. 그 예민함으로 내가 비틀거릴 때나 좀 일어나 보지 할 말이 잔뜩이었지만 저 작고 소중한 아이에게 탄식을 해봤자 알아들을 리 없었다. 그저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아이를 한 번 바라보는 것으로 내 속마음을 대신했다.


하지만 이 아이는 알까. 내 팔이 두 동강이 나는 일이 있더라도 나는 널 안은 걸 후회하지 않을 거라는 걸 말이다. 내 모든 걸 다 내어놓아도 좋을 만큼 아이는 내게 소중하다. 첫째 아이는 앵두같이 붉고 작은 입으로 이제까지 본 짱구 중에 이게 제일 재밌었다는 말을 했다. 어쩜 저렇게 작은 입으로 쉴 새 없이 말을 할 수 있는지 경이롭기까지 하다. 그리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는데 내가 더 행복했다.


방학은 내가 그동안 못한 걸 아이들에게 하나씩 하나씩 해줄 수 있는 귀한 시간이다. 집에 있을 때조차도 허투루 하루를 넘길 수 없는 이유이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면 방학이 끝날 때쯤 아이들과 훨씬 더 친해진다. 평소에도 같이 사니 이보다 친해질 수 있을까 싶은데 방학을 하고 하루를 온전히 함께 있으면 정말 방학 전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아이에 대해 알게 된다. 나는 그래서 아이의 방학이 좋다. 앞으로 아이와 보낼 방학이 잔뜩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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