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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끄루쓰 Jun 05. 2022

피사체가 되는 순간

 피어나는 연결을 긍정하고 싶어서 끄적였다

피사체가 되는 순간 나는 영원히 거기, 그 사진 속에 멈춰있는 것인데

그때의 나를 그대로 오래도록 담아낸다는 게 생각보다 설레는 이란 걸 이제야 알게 되었다.


버스를 타고 부암동에 가는 길이었다. 버스는 빨간불을 만나 국민대 정문을 지나치다 잠시 멈춰  있었다. 창문 너머로 국민대학교 정문 전경을 찍고 있던 이름 모를 사진작가가 보였다.(작가였을까) 

그는 얼굴을 큼지막한 카메라로 한껏 가려놓고. 마치 몸 전체가 거대한 사진기가 된 것처럼 이리저리 자세를 비틀었다. 원하는 그림이 나올 때까지. 


분명 그의 렌즈는 국민대 정문을 향해 있었지만, 그의 렌즈와 정문 사이에는 수많은 피사체들이 놓여있었다. 정문 양옆에 일렬로 서 있는 푸른 나무들, 학사모를 쓴 곰돌이같은 국민대 마스코트 동상, 옹기종기 에코백을 매고 등교하는 대학생들, 도로 위에 서있던 크고 작은 자동차, - 그 중 우뚝 서있던 싱그러운 연초록 버스. 그리고 그것을 둘러싼 창문들. 그 창문들 중 한 자리를 차지한 나.


그 때의 나는 버스 안에서 창밖을 내다보며 카메라 렌즈와 눈을 맞추고 있었고, 분명 나를 담으려 한 건 아니겠지만, 그 찰나에 불가피하게 나 또한 사진 속에 담겼으리라.

 거대한 국민대학교의 정경이 주인공인 사진 속에서 아무런 존재감이 없을 걸 알면서도.

괜히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머리도 한 번 만져보고. 옅은 미소도 지어보았다. 어쨌든 순간의 내가 영원히 그 사진에 담길 테니까.


그러면 그 사진과 만나게 될 수많은 사람들이 나와 눈을 맞추게 되겠지. 그렇게 사진 속에서 머물고 머물다가 아주 나중에 어떤 이가 귀퉁이의 내 존재를 발견하게 된다면,

내가 인식된 그곳에서 또 새로운 연결들이 꽃처럼 피어날 것이고, 그 연결들을 시작으로 우연이라던가 인연이라던가 반가움 또는 예상치 못한 즐거움 따위의 것이 만개하길 내심 바라본다.  

그렇게 별것도 아닌 내 존재에 의미를 부여해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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