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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캬라멜 Sep 23. 2023

절대 안 잊혀지는 리듬의 힘

스타일(style) 살리는 법 - T : tone

예전에 학교 다닐 때 이른바 암기과목이라는 것이 있었다. 외우는 과목이라는 의미다. 그 시절에 선생님들은 왜 그렇게 외우라고만 하시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선생님들은 단지 외우라고만 하지 않았다. 외우는 방법까지 노하우를 전수해줬는데, 몇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머릿 속에 남아있는 것들이 있다. 감탄사가 나오는 몇 가지를 소개한다. 


scene 1. 국사 시간

"태정태세 문단세~ 예성연중 인명선~ 광인효현 숙경영정~ 순헌철고순"

- 이걸 저렇게 나눠서 노래처럼 외우지 않았다면 과연 외울 수 있었을까?

- 그리고 지금까지 머릿 속에 남아있을 수 있을까?

- 과연 다른 나라 국민들 가운데 자신의 나라 역대 왕이나 대통령을 이렇게 외우는 사람들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scene 2. 음악 시간

"프레스토 비바체~ 알레그로 알레그레토~ 모데라토~ 안단티노 안단테~ 아다지오 라르고~ 렌토까지 다외웠네"

- 중고등학교 시절 음악 시간은 자거나(클래식이나 가곡 감상), 억지로 부르거나(꿰밸라 꼬사 아유르나 따에 솔레~ 한글 가사로 써서 외웠던 '오 솔레미오'는 아직까지 기억이 난다), 리코더로 연주하거나(간혹 피아노로 시험을 치는 수준급의 아이들도 있었다), 아니면 음악 관련 이론을 외워야 하는 시간이 있었다.

- 이론 가운데 알아놓으면 평생 남들 앞에서 아는체 할 수 있다며 굳이 암기를 강요했던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이 음악 빠르기와 관련된 기호였다.

- 반짝반짝 작은별~로 시작하는 '작은별'은 "도도 솔솔 라라 솔 파파 미미 레레 도 솔솔 파파 미미 레 솔솔 파파 미미 레 도도 솔솔 라라 솔 파파 미미 레레 도"로 끝난다.

- 이 노래에 저 기호를 얹어서 외우라고 음악 선생님이 그랬다. 그렇게 외웠던 기호는 지금까지 남아있다.


scene 3. 과학 시간

"현숙씨 같이 안살래유~ 반드시 섬마을에서 화목하게 살아유~"

- 중학교 시절에는 물상, 고등학교 시절에는 지구과학이었던 과목 시간에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돌(암석) 가운데 화산의 마그마가 만들어낸 돌의 종류를 선생님은 이렇게 가르치셨다.

- "백두산, 한라산이 뭐야. 화산이지. 지금은 아니지만 예전에는 용암이 분출됐지. 뭐가 나왔겠어? 그래 마그마가 나오지. 식으면 뭐가 돼? 돌이야 돌. 이걸 뭐라고 한다? 화.성.암, 자자! 지금부터 6개 돌을 외운다. 어두운색에서 밝은색 순서이고, 위에서 아래는 결정이 작은 것에서 결정이 큰 정도다. 현무암! 안산암! 유문암! 반려암! 섬록암! 화산암!"

-  6개 밖에 안되는데 정말 어렵다. 이름도, 순서도..

- 선생님은 마음에 드는 여성에게 프로포즈하는 시골 총각의 말을 리드미컬하게 만들어 내고 이걸 외우게 했다. 그렇게 외운 이 문장은 아직까지 머릿속에 남아있다.

- 현(현무암)숙씨 같이 안(안산암)살래유(유문암)~ 반(반려암)드시 섬(섬록암)마을에서 화(화산암)목하게 살아유~


scene 4. 화학 시간

"수헬리베 붕탄질~ 산프네나마알~ 규인황염 아칼카~"

- 고등학교 화학시간에 넘어야 하는 가장 힘든 고비는 일찍 찾아왔다. 바로 원소기호와 주기율표!

- 선생님은 매 시간 수업을 시작할 때마다 무작위로 몇 명이 호명되어 외우는걸 시켰다. 운이 좋아서 몇 번을 피해갈 수는 있어도 결국 안 외우고 넘어갈 수는 없었다. 어떻게?

- 선생님은 저렇게 끊어서 외우도록 시켰다. 역시 리드미컬하게! 주의할 점은 마지막의 칼카(칼륨이 먼저고 칼슘이 뒤라는거).



말과 글은 두가지다. 리듬이 있는 말과 리듬이 없는 말. 시와 노래는 대표적인 리듬이 있는 글과 말이다. 특히 힙합. 물론 리듬에 없게 읽을 수도 있지만, 시나 노랫말을 쓰는 시인이나 작사가들이 소리내는 말을 염두에 두고 창작을 해 그냥 읽다보면 리듬이 생긴다. 운율이나 라임 등의 장치들이 절묘하게 많이 놀아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글도 마찬가지다. 고수들의 문장은 잘 읽힌다. 말 그대로 술술 읽힌다. 말의 스타일(style)을 살리는 톤(tone)은 '리듬'에서 나온다. 리듬이 있는 말은 상대에게 주는 울림이 크다. 그리고 오래 남는다. 말이나 글의 내용인 '메시지' 만큼 '톤'이 중요한 이유다. 말에서 리듬이 힘을 줄 때 주고 뺄 때 빼는 강약 조절에서 나온다면, 글에서 리듬은 짧게 쓰는 것에서 나온다. 길게 쓴 만연체보다 짧게 쓴 문장은 독자에게 리크미컬하게 읽힌다.  


"Beanz Meanz Heinz"

<설득의 심리학, 2015>으로 유명한 로버트 치알디니 교수가 있다. 설득의 심리학이란 번역본의 제목도 좋지만 원저(Yes! : 50 Scientifically Proven Ways to Be Persuasive)의 제목은 더욱 솔깃하다. 과학적으로 증명된 남을 설득하는 50가지 방법, 이 책에서 저자는 사람들에게 yes를 이끌어내는 방법으로 말에 리듬감을 줄 것을 강조했다. 주로 광고 문구의 슬로건이 여기에 해당된다. 예를들면 하인즈 주식회사가 1869년 구운 콩을 광고하기 위해 매일 수많은 주부들이 구운 콘 통조림을 딴다면서 "Beanz Meanz Heinz"라고 CM송을 만든 것을 예로 들었다. 슬로건이나 상표, 모토 등은 이렇게 운율을 맞추면 사람들의 뇌리에 더 잘 남고 잊혀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유쾌 상쾌 통쾌""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고" 등 같은 단어로 끝나면서 운율과 리듬을 맞춘 광고가 있다. 외우려고도 안 했는데 좀처럼 옂혀지지도 않고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남녀노소 세대를 초월해 잘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If the gloves don’t fit, you must acquit!"

같은 책에서 1994년 미국 미식 축구선수 O.J. 심슨의 전처 살인사건 당시 변호인이 했던 말도 사례도 나온다. 심슨의 변호사는 배심원들에게 "If the gloves don’t fit, you must acquit!"라고 말한다. 장갑이 맞지 않다면 무죄를 선고하라는 의미다. acquit는 무죄를 선고하다는 말이다. 보통 배심원단이 피고에게 무죄를 선언하다 이런 의미로 쓰이는데 fit와 acquit는 글로 써놓고 보면 많이 차이가 있어 보인다. 그런데 발음을 해보자. 리듬과 운율이 살아난다. 흡사 힙합의 라임처럼... 발음은 놀랄만큼 닮아 있다. 끝나는 모음이 비슷한 리듬과 라임으로 끝나는 이 한마디는 짧고도 선명했다. 만약에 심슨의 변호인이 이렇게 짧고도 울림이 있는 문장이 아닌 다른 말을 했다면... 배심원단의 머릿속에서는 감성의 회로가 아닌 이성의 스위치가 작동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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