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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캬라멜 Oct 26. 2021

스타일은 형식이다

탬플릿(template)으로 클리셰(Cliché) 극복하기

나만 보는 글 vs 남에게 보여주는 글

글을 써야 하십니까? 어떤 상황이신가요? 다양한 글쓰기 환경이 있는데요. 학교에서 시험 답안을 위한 글쓰기나 논술도 있고, 입사나 자격시험에 통과하기 위한 답안 작성도 있습니다. 정리해보면 글을 써야 하는 환경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눠집니다. 글쓰기 대상이나 주제를 내가 정하는 경우와 남이 쓰라고 특정 주제를 내주는 과제나 시험, 업무와 관련된 글쓰기입니다. 요즘에는 내가 쓴 글을 읽을 대상이 반드시 나에 국한되지는 않습니다. 디지털 모바일, SNS, 유튜브 댓글 등 다양한 글쓰기는 발행과 동시에 전 세계 모두가 잠재적 독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글쓰기의 중요성이 앞으로 더욱 커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글에 따라 나눠서 생각해보겠습니다.


먼저, 내가 어떤 주제에 대해서 글을 쓸 때입니다. 에세이형 글쓰기가 되겠죠. 그날 있었던 일이나 생각을 기록하는 일기도 있지만, 뭔가에 대해서 쓰고 싶다고 할 때는 그 대상이 되는 특정 소재가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지 않는 일기는 의식의 흐름대로 씁니다. 그저 생각의 흐름대로 쓸 뿐 두서도 없습니다. 그냥 쓰면 됩니다. 어떤 주제에 대해서 쓰고 싶다고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머릿속 생각을 내가 쓴 만큼, 나중에 읽어보더라도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됩니다. 몇 년, 몇십 년이 지난 일기장을 꺼내 읽어보면 글을 쓸 때 기억이 생생하게 나는 것은 글을 쓴 사람이 본인이기 때문입니다. 대상을 고려하지 않은 만큼 내가 쓴 글은 언제 읽어도 나에게는 이해가 됩니다. 글 쓴 당시의 배경과 맥락이 이해를 돕는 것이죠.


하지만, 남에게 보여줘야 하는 글은 얘기가 다릅니다. 특히 남이 글의 주제를 정해줄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글을 써야 하는데 처음에는 막막하기만 합니다. 내용을 잘 알거나 관련된 에피소드라도 있다면 첫 문장을 풀어나가기는 그나마 쉽습니다. 참신한 소재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학생이 논술 시험지를 받았는데 다행히 기출문제가 나왔다면 그동안 연습해온 것을 일사천리로 풀어낼 수 있습니다. 뉴스를 통해 봤거나 관련 책이라도 읽었다면 쓸 거리가 더욱 풍성해지겠죠.


다만, 내용을 안다고 해서 막 써댈 경우 신선함이 떨어지기 쉽습니다. 상투적이라고 하고 요즘은 클리셰라는 어려운 말이 자주 인용됩니다. 프랑스어로 Cliché 는 진부한 표현이나 고정관념을 얘기합니다. 소설이나 영화에서 클리셰는 독자와 시청자들을 멀어지게 합니다. 영상 콘텐츠를 만들 때 클리셰는 누구나 원하는 ‘구독’과 ‘좋아요’의 독입니다. 핵심은 말을 하거나 글을 쓸 때도 일단 글감(소재)을 선택할 때 신선해야 독자들을 머물게 할 수 있습니다.

 

나만의 글쓰기 탬플릿 만들기

하물며 써야 하는 주제나 소재에 대해서 모른다면 글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까요? 모든 글쓰기에서 적용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럴 때 필요한 것이 나만의 글쓰기 템플릿(template)입니다. 이때 템플릿은 일종의 습관입니다. 글을 풀어나가는 근육을 미리 키워놓는 겁니다. 운동선수가 시합에 앞서 루틴에 따라 움직이듯이 글을 쓸 때도 템플릿을 만들어놓는 것은 여러모로 유리합니다. 템플릿은 다양한 책에서 가져올 수 있습니다. 글쓰기 대가나 고전도 훌륭한 교과서가 됩니다. 


저의 경우를 예를 들면 전 칸트식 글쓰기법을 자주 사용했습니다. 칸트는 이런 글을 남긴 적이 있습니다.


내용 없는 사고는 공허하고,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이다. (Gedanken ohne Inhalt sind leer, 

Anschauungen ohne Begriffe sind blind) 말하자면, A 없는 B는 공허하고, B 없는 A는 맹목적이라는 명문장입니다. 칸트의 어려운 철학적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A와 B 자리에는 얼마든지 많은 개념을 적용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상과 현실이 차이를 보일 때나 한계를 가질 때 위의 표현을 자주 사용했습니다. 


만약 시험 문제가 주어졌다고 해보겠습니다. 같은 주제에 대해서 여러 사람들이 글을 써야 하는 상황입니다. 이 때는 내용으로 차별화해야 합니다. 어떤 제도나 규칙이 있고, 현실에서 그게 잘 지켜지지 않을 때 위와 같은 칸트식 표현을 뼈대로 얼마든지 글을 쓸 수 있습니다. 꼭 같은 표현을 쓰지 않더라도 개념을 적용할 수 있습니다. 법이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거나 현실을 너무 앞선 제도가 있을 때 그때에 해당합니다.

콘텐츠와 관객도 마찬가지입니다. 글을 쓰는데 읽어주는 독자가 없다면 어떤 상황일까요? 관객이 찾지 않는 콘텐츠는 공허하고, 별 내용 없는 콘텐츠가 불티나게 팔린다면 맹목입니다. 좋은 콘텐츠가 아니었거나 관객이 번지수를 잘못 찾았을 수 있습니다.

국회의원들이 만들어내는 법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장 최고는 법이 필요 없는 세상입니다.  굳이 규칙을 만들어서 지키라고 할 필요가 없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사회가 되겠지요. 그렇다면 어떤 법이나 제도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논하라고 하면 어떤 글을 써야 할까요? 내용을 알면 쓰면 됩니다. 그렇지 않다면 칸트식 표현을 빌려 이상과 현실을 구분해보면 됩니다. 그 제도나 법을 만들어도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가 없어 보인다고 생각되면 공허한 상태이고, 제도나 법이 없이도 얼마든지 가능할 때는 맹목적인 상황이 됩니다. 실제로 그런 게 많습니다. 


know-where의 시대... 스타일로 차별화하기

학창시절이 끝나면 글을 평가받을 일이 없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게 아닙니다. 지난 주말에도 몇 장의 글을 써서 내고 평가를 기다리는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반쯤 아는 내용이고 반은 모르는 주제에 대해 써야 했습니다. 나만의 독창적인 아이디어와 소재로 일필휘지를 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이지만 그게 그렇게 쉽지만은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들과 차별화하기가 어렵습니다. 정보가 많고, 오픈되어 있는 만큼 나만의 독창적인 아이디어나 소재가 다른 사람에게 발견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아는 한 교수님은 정보 과잉의 시대는 선택과 집중이라고 했습니다. 이제는 나만의 차별화된 방법인 knowhow가 아니라 know-where만 알면 되는 시대가 됐다고 했습니다. 

제가 내용보다는 방법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입니다. 내용으로 차별화하기는 여간 고수가 아니고서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나만의 스타일이 있어야 합니다. 이때 스타일은 나만의 것이며 상투적인 말과 글에서 넘처나는 클리셰의 대척점에 있습니다.


에필로그.

이제 AI도 글을 씁니다. 고전과 명문장을 머신러닝으로 학습한 AI가 쓴 글은 어색할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AI보다는 나은 글을 쓸 수 있기를 희망하며, '작가스러운 AI'가 책을 내는 순간이 빨리 오지 않았으면 합니다. 다음이 예상되는, 결론이 예상되는 '뻔한' 글이 되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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