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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캬라멜 Aug 27. 2023

포즈(pause; 쉼)도 메시지다

스타일(style) 살리는 법 - T : tone

TV를 본다.


scene 1. 홈쇼핑 톺아보기

홈쇼핑 방송을 보면 보통 두 명의 호스트가 방송을 한다. 메인과 서브 호스트가 방송을 하던지 게스트가 한 명 더 나와서 세 명이 방송을 하기도 한다. 

지금 두 명의 쇼호스트가 방송을 한다. 같은 역할을 하는 것 같지만 두 사람의 역할은 철저하게 배분되어 있다. 멘트의 내용이 다르고 주어진 역할이 다르다. 만약 1시간 동안 상품을 판다고 하면 1시간의 각본은 어떻게 짜여질까? 생각보다 철저하게 방송이 준비된다.


# 광고 시간 - 어쩌다 채널 돌린 시청자 낚기

홈쇼핑은 KBS와 MBC, SBS 등 지상파 방송 사이에 주요 홈쇼핑 채널이 차지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흔히 말하는 광고 시간 즉, 홈쇼핑 인근 채널의 프로그램이 끝나는 시간은 역설적으로 홈쇼핑 채널에게는 시청자를 잡아야 하는 시간대이다. 1시간의 홈쇼핑 방송에 시청률이 높은 프로그램의 시작과 끝이 몇 개 붙느냐에 따라 잠재적 고객인 시청자들을 잡을 수 있는 기회는 그만큼 커진다.


# 빌드업 - 적극적 시청으로 전환

사람들은 언제 상품을 사겠다고 결정할까. 처음부터 그 상품이 마음에 들 가능성은 낮다. 역설적으로 노련한 쇼호스트는 처음부터 ‘이게 좋아요’ ‘이걸 사세요’라고 하지 않는다. 목표는 한가지다. 지금 보고 있는 시청자들이 채널을 떠나지 않도록 붙들어 놓는 것이 목적이다. 본론에 들어가기 위해 빌드업(build-up) 해나간다.


# 스토리텔링 - 시청자에서 고객으로

용케 그 채널에 멈춘 시청자들이 아직도 해당 홈쇼핑 방송을 보고 있다면 호스트의 얘기에 감정 이입을 할 수 있도록 스토리텔링을 한다. 쇼호스트들은 주변 사람들의 얘기를 많이 한다. 진정성 있게 접근하기 위해서다. 자신의 경험은 물론 집에 있는 배우자, 가족, 자녀들의 얘기에서 상품을 팔고 있는 PD, MD의 경험까지 방송에서 가감없이 예를 든다.

 

# 그리고 포즈(pause) - 비어있지만 꽉찬 메시지

광고 시간이 유입된 시청자들을 빌드업을 통해 메시지를 추가하고, 스토리텔링을 통해 시청 고객이 마지막 상품 구입을 위한 행동을 실행해 옮기려면 마지막으로 플러스 알파인 뭔가 하나더 필요하다. 그 부분이 바로 포즈다. 시청자가 다가오고, 호스트의 메시지가 전달되고, 호스트와 시청자의 거리가 좁혀지느냐 결정되는 순간이다.


scene 2. 두 호스트

이 OOO은 너무 좋아요. 한번 써 보시죠. 이렇게 바뀝니다. 이보다 좋을 수는 없어요. 게다가 오늘은 역대급 찬스입니다.   

OOO 많이 쓰고 계시죠? (포즈) 어떠세요? (포즈) 그동안 많이 사 쓰기는 했는데 속았다고 생각하신 적 없으세요?  

회심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 스토리텔링을 하고 빌드업 해왔는데, 그 포즈를 옆에 있던 동료가 치고 들어왔다. 그 순간 모든 것이 산산조각난다. 다시 멀어진다. 망쳤다. 아내에게서 배운다. 포즈도 메시지다.



짧게 말하고 짧게 써야 한다고 말하기, 글쓰기의 고수들은 얘기한다. 말이나 글이 짧아지면 그 사이는 무엇이 채울까? 


빈칸

빈칸은 단어와 단어, 문장과 문장 사이에 남은 공간이다. 우리 말에는 띄어쓰기가 있다. 띄어쓰기를 위해서는 맞춤법을 잘 알아야 하는데 어렵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하면 간단하다. 상대방의 이해를 돕기 위해, 내 말이 오해를 불러 일으키지 않기 위해 지키는 것이 띄어쓰기다. 내 고객을 위한 최소한의 말하는 이, 글쓰는 이의 배려다. 아버지가방에들어가신다. 

 

행간

빈칸이 줄바꿈 전에 문장에서 비어있는 공간이라면 행간은 줄과 줄 사이의 빈 공간이다. 줄바꿈은 왜 필요할까. 두 눈으로 볼 수 있는 단어의 양이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윈도우 메모장에서 줄을 바꾸지 않고 옆으로만 문장을 써보자. 문장을 읽을 때 얼마가지 않아 바로 직전의 내용이 기억나지 않아 다시 돌아가야 하는 수고를 해야 한다. 행간은 글 쓰는 사람이 재료와 양념을 바꾸는 그 순간이다. 


행간을 읽다(read between the lines)

이건 무슨 말인가? 문장과 문장 사이, 글이 없는 행간(行間)을 읽으라는 의미다. 이해는 글을 읽을 때가 아니라 한 줄을 읽고 난 뒤 다음 줄을 읽기 전, 문장을 듣고 다음 문장을 듣기 전에 찾아온다. 이게 중요하다. 말을 할 때 행간은 포즈(pause)로 드러난다. 


어원사전(www.etymonline.com)을 보면 포즈는 노래나 말하는 것의 일시적인 휴식이나 지연을 말하고, 정지, 중지, 중단을 의미한다. 의심이나 불확실성에서 비롯된 망설임을 뜻 할 때도 있다. 그래서 포즈는 불안하다. 뭔가를 기다리고 있는데 상대방이 말을 하지 않는다. 그때 집중이 다가온다. 화자의 얼굴, 입에 집중하게 된다. 눈이 클로즈업 된다. 가장 집중되는 순간이다.



역사는 재미없다. 지루하고 어렵다. 아는 인물과 내용이기 때문이다. 어릴 때는 위인전으로 어떤 사람인지 처음 접하고, 학창 시절에는 울며겨자먹기로 자의반 타의반 외우고 배웠고, TV에는 언제나 사극이 방송된다. 지금은 없는 사람들의 얘기, 글로만 접했던 과거의 얘기인 역사를 내 눈 앞에 살아 숨쉬게 한 것은 TV 사극이 아니었다. 최근들어 TV나 유튜브를 통해 역사를 강의하는 역사 교사, 강사, 그리고 역사학자는 아니지만 누구보다 역사 속 그날로 시청자들을 인도하는 작가, 학자, 인플루언서들이다. 내가 볼 때 그들은 대표적인 포즈의 달인이다. 비록 일하는 장르는 다르지만 또 배운다.

  

에필로그.

학교에서 수업을 듣거나, 학원에서 강의를 듣거나, 세미나에서 연설을 들을 때 유독 말이 빠른 사람들이 있다. 그 분야 전문가들은 쉬지 않고 끊임없이 메시지를 전달한다. 하지만, 나에겐 오지 않았다. 그분들의 메시지가. 대부분 난 이해에 어려움을 겪었다. 잘 가르치는 교수라고 했는데 막상 들어보면 아닌 경우도 많았다. 왜 그럴까 했더니 그냥 내가 따라갈 수 없었던 것이다. 많이 아는 사람들은 아는걸 쏟아내고 싶어할 때가 많았다. 나를 감동시킨 사람들은 그들이 아니다. 연설이나 말을 잘 하는 사람들을 살펴보고 그제서야 알았다. 명견만리든, 세바시든, TED이든. 나를 감동시킨 건 말을 잘 하는 것이 아니라 말을 멈출 때 잘 멈추고, 쉴 때 잘 쉬는 포즈의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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